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재 Jul 13. 2024

생일 날 해보는, 생일에 대한 고찰

by 713

누구보다 생일에 집착하는 류의 사람이었다.


생일 일주일 전부터 메신저 상태창에서 D-day를 세고, 당일에는 '생일입니다. 축하해 주시죠' 따위를 올려 두었던. 7월 13일 00시가 되는 순간 생축 메시지가 쏟아져 들어오고, 도착한 선물 상자들을 한가득 쌓아 SNS에 감사 메시지를 올리고, 지인과 지인의 지인들까지 50명 넘게 참석한 대형 생파를 열기도 했던 나는 확실히 생일을 그 누구보다 만끽하던 사람이었다.


부정할 수 없는 서른 중반이 되어버린 오늘, 언제부턴가 사그라든 생일에 대한 집착에 대해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기로 한다. 이토록 한적한 생일이라니. 그리고 그게 싫지 않다니.




생일에 대한 나의 집착은 아주 어릴 때부터 시작되었다. 713. 그 숫자가 왜 그리 특별하게 느껴졌는지. 나의 절친이나 다름없는 가까운 사촌은 나와 생일이 하루 차이, 712이다. 그러니까 우리 엄마와 이모는 딱 하루 차이로 아이를 낳은 것이다. 우리는 서로를 712, 713이라고 부르며 생일에 대한 집착의 싹을 키워나가기 시작했다. 파블로 네루다와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학창 시절 가장 존경하고 열망하던 두 위인이었는데, 공교롭게도 두 사람의 생일이 모두 7월 12일이었던지라 나는 그들과 같은 탄생일을 차지해 버린 친구를 열렬히 질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생일에 대한 집착이 도가 넘었던 시절에는 하루 두 번, 7시 13분마다 나를 생각하고 축하 메시지를 보내달라고 주변 사람들을 들들 볶기도 했다. 새로 알게 된 사람의 생일이 8월 13일, 7월 14일 따위로 713과 조금이라도 유사성을 보이면 마음이 더 빨리 열렸다. 내가 태어난 13일은 마침 금요일이었는데, 생일날 메일함으로 날아들어오는 '13일의 금요일'과 관련된 광고 문구들마저 한층 더 그날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았다. 그렇게 기다리고 열망하던 7월 13일이 마침내 돌아오면, 00시부터 24시까지 모든 순간을 만끽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핸드폰을 확인할 때마다 뜨는 '7월 13일'이 어쩜 그리 기분 좋은지. 365일 중에서 오늘만큼은 온전한 나의 것, 나를 위한 날이었다.


매일매일이 생일이면 얼마나 좋을까? 물론 생일의 특별함은 1년 중 단 하루라는 것에서 온다는 것쯤은 알고 있지만.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사실 매일매일은 생일이기도 한 것이다. 내가 아닌 누군가의 생일들. 그래서 큼지막한 종이 달력에, 내가 아는 모든 지인들의 생일을 기록해 보았던 적이 있었다. 그렇게 365일을 누군가의 생일들로 꽉 채울 수 있다면, 모든 날이 특별한 날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나뿐 아니라 가까운 지인의 생일도 충분히 기분 좋은 날이 될 수 있으니 말이다. 물론 그 프로젝트는 중단된 지 한참이지만, 여전히 매력적으로 느껴지기는 매한가지다. 매일매일이 축하할 일로 가득 찬 달력이라니. 오늘이 누군가의 생일이라는 것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하루는 충분히 더 특별해진다.




생일날 많은 메시지와 선물을 받는다는 것은, 생일을 제외한 모든 날에 다른 이들의 생일을 그만큼 살뜰히 챙겼다는 의미이다. 생일임에도 꽤나 한적한 핸드폰을 내려다보면, 그동안 내가 뿌린 씨앗이 많이 줄었다는 것이 새삼 와닿는다. 섭섭한 마음이 아주 없다면 거짓이겠지만 그럼에도 꽤 괜찮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 세상의 중심인 것처럼 축하를 받고, 생일 초를 불지 않아도 충분히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잠시 지친 것인지, 나이가 든다는 게 원래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불과 몇 년 사이 일어난 변화가 여전히 낯설다.


거한 생일파티를 챙기지 않게 되었을 뿐, 사실 나는 여전히 생일에 집착하는 사람이다. 711인 남자와 가정을 꾸렸고 결혼기념일은 715가 되었다. 그렇게 '13일'은 '7월'로, '나'는 '우리 가족'으로 확장되었다. 이제 우리 가족에게 7월이 특별한 시즌이 되어버린 것이다.


내가 왜 생일에 그토록 큰 의미를 부여하게 되었는지 출발점은 찾기 어렵지만, 썩 나쁘지 않은 결과들을 안겨주었지 않나 생각해 본다. 매년 손꼽아 기다릴 수 있는 특별한 날이 있다는 것, 그 하루를 제대로 보내기 위해 더 설레는 날들을 보내는 것, 그날을 빌미 삼아 더 많은 이들과 안부를 묻고, 이 세상에 발을 디디게 된 것을 기꺼이 축하하는 것.




삶이 아무리 고되어도,

결국 태어난 것은 어떤 형태로든 축하받아 마땅한 일임을 되새겨본다.


태어나줘서 고마워, 생일 축하해.

Happy birthday to me.




매거진의 이전글 바퀴벌레에게 이름을 붙이면 생기는 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