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20대의 새해는 아마도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얼굴들과 맞이했다. 밤새 알코올에 흠뻑 취한 뒤 난 여느 때와 다름없이 출근을 했고 각자 서로의 생활패턴을 따라 현관문을 나섰다. 해와 달의 유무와는 상관없이 허전한 길거리에선 도통 감흥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8에서 9로 한자리 넘어간 것뿐인데 이젠 정말 끝자락에 서있는 기분이 든다. 사실 정말 끝이 맞기는 하다. 20대, 청춘, 젊음 뭐 이런 식상하고 푸릇한 단어들에 한해선. 시야를 넓게 보고 살자고 생각하며 지내온 결과 전에는 크게 보지 않았던 주위가 시야에 자연스레 들어오게 되고, 그로 인해 자연스레 자꾸만 시야 안의 이들과 비교하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축축이 땅이 덜 마른 평지에서 보름 정도 걸었다. 한 발자국 씩 걸을 때마다 신발에 진흙이 묻어 나왔다. 어떤 날은 푹 페인 진흙에 발이 파묻히기도 했다. 장화를 갖추어 신었어야 하는 걸 알았으면서도 귀찮음과 스트레스 따위에 굴복해버렸다. 그 후 성수동의 한 새로운 카페에 오픈 멤버로 일을 시작했다. 음 뭐랄까 분명 기대하고 맛있는 디저트를 먹은 건 맞는데 목이 턱 막힌 느낌이랄까.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왠지 알 것만 같은 뭐 그런 느낌이 살며시 든다.
메모장의 올해 버킷리스트 목록을 열어본다. 여러 목록 중 달성한 것들을 수치로 내보니 22.2%밖에 이루지 못했다. 1년 중 한 계절의 양보다도 높지 않지만 그렇다고 실패한 해라고 말할 순 없다. 새로운 것에 도전했고, 그로 인해 버킷리스트엔 있지 않았던 생각지도 못했었던 기회들을 얻어 결과로 입증한 것들도 있었기에. 매년 그렇긴 하지만 짧다고 느낀 시간도 천천히 돌아보면 참 느긋이 흘렀다. 올해는 유독 일 년이라는 시간이 길고 나지막하게 느껴졌다. 그 사이에 새로운 좋은 인연들도 많이 알게 되었고.
오늘은 몇 년 전에 다녔던 아파트 단지 내 헬스장을 다시 등록했다. 관리사무소의 직원분께서 나이를 물어보셔셔 스물아홉이라고 말하니 어려 보이셔셔 학생인 줄 알았다고. 액면가를 어릴 적 미리 먹어둬서 이제야 조금씩 제 자리를 맞춰가나 보다. 포춘 쿠키를 열어보았다. ‘새해에는 쉬지 말고 움직이십시오 움직인 만큼 보답이 돌아오게 되니 가장 큰 기쁨이 여기에 있습니다“ 내 마지막 20대는 바쁘게 흘러가보는 게 좋겠다. 사실 보답과 기쁨은 어디에나 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