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와 다를 것 없이 퇴근을 하고 역 근처 골목 흡연구역에서 담배 한 개비를 폈다. 꽁초를 툭툭 털어버린 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 전철을 탔다. 운 좋게 자리에 앉아 가고 있는데 1시 방향에서 누군가가 내 쪽을 힐끗힐끗 쳐다보는 느낌이 들었다. 원체 밖에서 사람을 잘 쳐다보지 않는 나라서 시선이 느껴져도 그냥 무시하고 마는 편인데 그 찰나의 시선에선 이질감이 전혀 느껴지질 않았다. 왔다 갔다 마치 택견을 하듯 움직이는 동공의 실타래를 따라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는 듯, 눈동자를 돌려 올려다본 곳에서 난 굉장히 낯익은 얼굴을 마주쳤다.
재작년 4월. 지금이 1월이니 정확히는 1년 9개월 전, 연인과의 아름다운 헤어짐이란 말이 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전부 따분한 몽상 속의 핑곗거리에 불과할 뿐 그런 건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분히 당황스러운 헤어짐에 난 내 성격을 온전히 반영하여 차분하게 받아들였지만 몇 시간이 흘렀을까 채 하루가 지나지 않아 다시 울린 카톡 채팅창의 알림은 차분한 내 성향에 여러 개의 금을 그었다.
다시 꽤나 길고도 짧은 시간이 지나가면서 어느 정도의 기억들은 미화되어갔다. 오전에 가끔씩 울리는 앤 드라이브의 알림이 한몫했음은 분명하다. 아주아주 가끔이지만 종종 그냥 한 번 길을 지나다 마주쳤으면(물론 인사라든지 아는 척은 하지 않겠지만) 하는 생각이라든지, 한 번쯤은 잠시 스쳐 지나가며 그때의 공기를 보고 싶다든지 하는 생각은 있었다.
지하철 같은 칸 길어봐야 불과 2미터의 간격은 생각보다 길었고, 재작년의 관계를 회상하는 속도보다 당장 내려야 할 종착역에 가까워짐이 더 빨랐다. 확실한 건 띄엄띄엄 자리 잡았던 생각이 희미하지만 분명하게 자리 잡혀 있었다는 것. 힐끗힐끗 날 쳐다보던 그 시선과 내 시선이 나란히 한 줄에 걸쳐졌을 때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나도 반대쪽도 황급히 가장 가까운 줄을 끊었다. 시선도, 공기도, 간격도 모든 게 동시에 끊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