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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준 Feb 07. 2022

아는 게 전부인 사람

올해는 유독 눈이 많이도 내렸다. 얇게 흩날리던 눈은   베란다에서, 펑펑 쏟아지던 함박눈은 성수동 거리 한복판에서 맞았다. 금세 쌓여버린 눈은 어느새 신발 밑창을 포근히 감싸 안았다. 아무도 밟지 않은 길을 골라 걸으며 곳곳의 손때가 묻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의 눈은 올해도 내 손에 닿지 못했다. 단순히 차갑다는 이유로 눈을 만지지 않은 게 대체 몇 년째인지. 금세 녹아 없어질 걸 알기에 소중하다면 소중할 테고, 영원하진 않지만 분명 또 찾아올 것 또한 알기에 딱히 아쉬움은 생기지 않는다. 막상 내 손바닥 안에 새하얀 눈덩이들이 하나 둘 뭉쳐지면 유형의 무언가와 보는 이로 하여금 따뜻한 온기 또한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난 이렇듯 말할 수 있는 것들에 입을 닫고 주머니에 양손을 쑤셔 넣은 채 하나의 계절도, 눈이 녹아 없어지는 시간도, 그보다 더 짧은 순간의 촉감까지도 가만히 흘려보낸 채 앞으로만 걸어갔다.



겨울바람이 꽤나 차다. 이 바람을 그리워하진 않을 것 같지만 이 무렵에 내린 눈은 가끔씩 생각이 날 것 같다. 어느새 봄이 오고 여름과 가을을 지나 또 겨울은 올 것이다. 미래는 알 수 없지만 지금의 나에겐 겨울이나 눈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 영원한 건 없다는 것, 그리고 가끔이라도 생각나고 그리워할 것들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만은 확실히 알 수 있다. 알고 있음에도 주머니에서 손 빼는 건 영 쉽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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