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원준 Mar 20. 2022

57.142857

잠들기  보통의 새벽과는 다른 느낌에 조금의 불안감을 안고 잠에 들었다. 서서히 죄여오는 통증에 눈을 뜨니 목구멍에 가시가 박힌  수면 아래로 살짝 가라앉아 있었다. 날씨는 꽤나 따뜻해 보이는데 몸은 삐뚤게 반항한다. 성가신  막대기는 구멍을  차례 들락거리며 속을 탐구하고 흔적을 묻혀  다른 흔적을 만들어 낸다.   줄의 선은 “ 아닌 “ 말하게 했고 “J‘들에게 기존의 계획을 그대로 유지할  있게 해주었다. 정류장을 걸어가는 발걸음이 가볍지 않다. 따신 날씨에 두텁고 무거운  코트를 입어서가 아님은 분명하다. 카드를 찍고 좌석에 앉는다. 옷매무새를 대충 정리하고 의자를 반쯤 뒤로 재낀  눈을 감아 본다.



눈을 뜨니 새로운 공간 속에 누워있다. 회색빛 사각형 속 하얗고 푸릇한 사각형 위에서 몸은 도통 말을 듣지 않는다. 쾌락을 넘어선 피로와 통증이 몸을 지배했고 그대로 무력하게 날 방치시켰다. 처음 아니 두 번째 보는 동네를 잠시나마 걸었다. 언제나 그렇듯 걷다 보면 익숙해지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익숙한 지점으로 돌아오게 된다. 오랜만에 느끼는 밝음 속의 괴리감은 전혀 반갑지 않다. 가장 편한 곳에서 가장 편해지고 싶어 무심하게 다시금 눈을 감았다.



수면 아래로 한참이나 가라앉아버렸다. 몸은 말을 듣지 않고 전혀 정상적이지가 않다. 좀 더 즉각적인 구멍으로 본 예상은 빗나갈 조금의 틈도 주지 않는다. 약간의 기대와 불안과 예상은 한데 뒤엉켜 점액이 되어 체념할 수밖에 없는 결과로 도출되었다. 한숨을 푹 쉬고 눈을 감았다.



하루아침에 가장 편해야 할 공간이 가장 피해야 될 공간으로 탈바꿈해 있다. 우선순위에 밀린 아침 식사는 그저 차갑기만 하다. 여전히 날씨는 좋고 나는 여전히 춥다. 밖으로 나와 어젯밤에 본 것과 같은 선들을 마주했다. 이것 역시 충분한 내 예상범위 안의 상황이었고 그리하여 큰 타격은 없었다. 집으로 오는 손이 조금 무거워졌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회색 고양이 한 마리를 만났다. 나한테 슬그머니 오는가 싶더니 작은 틈새로 재빨리 달아나버렸다. 그래 넌 도망갈 틈이 있구나.



방문을 닫고 침대에 잠시 누우니 문자가 오기 시작한다. sns에서만 보던 문자들이 이젠 내 이름을 언급한다. 제3자에서 수신자가 된 내 이름 석 자는 전혀 반갑지가 않다. 3500/4300의 작지도 크지도 않은 공간 안에 난 감금되었다. 가장 답답한 건 허리가 또 말썽이다. 이놈의 고질병은 잔잔히 모습을 비추다가 꼭 이럴 때만 크게 두각을 나타낸다. 중심이 무너지니 나는 고꾸라질 수밖에 없다. 확실한 건 오늘의 내가 할 수 있는 건 크게 없다. 불을 켜고 누워서 천장만 바라보다 그대로 잠에 든다.



말은 할 수 없고, 몸도 쓸 수 없다. 아주 조금씩만 내 의지가 반영된다는 걸 이미 뼈저리게 알고 있기에 서두르지 않는다.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정체되어 있다가 조금의 틈이 보일 때면 난 놓치지 않고 파고들었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벽을 허물어갔고 내 구역을 늘려갔다. 활동 반경이 늘어나니 여유가 생겼다. 침대에 누워있는 시간보다 의자에 앉아있는 시간이 늘어났고, 종종 방 안을 산책하였다. 창밖의 날씨는 흐리기도, 비가 오기도, 아주 맑기도 했다. 이 상황에서 날씨에 큰 영향을 받진 않지만 그래도 맑은 날이 좋다. 창문을 활짝 열어 환기를 시키고 바람 내음을 맡아본다. 참 시원하다.



어느덧 절반이 지나간다. 또 그 절반의 하루는 해가 져 어두컴컴해졌다. 방 안 조명의 색깔을 따뜻하게 바꾸었다. 이젠 청소기와 운동기구 그리고 펜과 노트가 사정거리 안에 들어온다. 다른 것들을 신경 쓸 새가 없었지만 이젠 언제나 그랬듯 여러 생각들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생각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게 쉽지만은 않다. 한 가지에 몰두하는 걸 잘하진 못하기에 무엇을 하고 있든 이런 물음은 항상 근처에 따라온다. 사실 쉬고 싶었다. 그렇다고 이런 방법으로 돈도 건강도 잃어가며 쉬는 걸 원한 건 아니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서 쉬어간다는 게 내겐 썩 친숙한 일은 아니다. 내게 공허와 무의 상태는 불안과 초초함의 색깔을 띤다. 하얗고 빈 여백을 좋아하지만 내게 안정감을 주는 건 알록달록 정신없이 색칠 되어 있는 그림이다. 난 가해자다. 아무 죄 없는 이들에게 피해만 주고 있는. 부디 무사히 남은 절반이 지나고 더 이상의 확산은 없어야 할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난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감수해야만 할 것이다. 그런 색의 책임과 피해가 나를 거쳐가는 일은 없어야만 할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내가 없는 사진 속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