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보면서

바닥의 의미

by 조이

변화는 저절로 오지 않는다. 성장을 위해서는 고통도 필요하다. 인생이 마카롱 맛처럼 달콤하지만은 않다. 고통을 겪어야 기쁨이 무엇인지도 안다. 성장과 변화를 위한 고통의 과정이 있다.

바닥을 쳐야 비로소 변화가 시작된다. 바닥은 길을 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터널 같은 곳이라고 할 수 있다. 바닥은 변화와 성장도 주고 현재를 살 힘도 준다. 눈물의 빵을 바닥에서 먹어보아야 비로소 인생을 이해하고 인간을 이해할 수 있다.

바닥이 무엇이냐고? 대부분의 청소년이 잘 치는 바닥이다. 가장 낮은 점수에 가장 낮은 성적, 거기다 나에 대한 가장 낮은 평가 등이다. “나는 바닥을 잘 쳐요.”라고 말하고 싶은 심정일지도 모른다. 청소년만 바닥을 치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바닥을 친다. 나무도 바닥에 몸을 두고 서 있다. 나무는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다. 너무 친숙한 존재라고 나 할까. 내가 녹색을 좋아하는 이유는 나무가 주는 싱그러움 때문이다. 우리는 나무와 사계절을 같이 지내면서 살고 있다.

나무는 사계절을 겪으면서 나이테를 더하고 더 높이 자라지만 항상 좋은 날만 보내는 것이 아니다. 봄에는 4월의 잔인한 꽃샘추위를 몸으로 다 맞고 겨우내 언 몸을 풀기 시작한다. 여름에는 장마철 태풍도 만나고 비바람 속에서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은 시간을 통과의례처럼 겪는다. 가을에는 주렁주렁 열매를 맺는다. 그러나 모든 것이 다 떨어지는 냉랭한 겨울에는 그냥 꾹 버텨내는 수밖에 없다.

나무의 사계절을 보면서 내 인생의 사계절을 떠올려본다. 나무가 치는 바닥도 그려본다. 나무는 하늘을 향해 좀 더 높이 나아가지만 뿌리는 바닥에 닿아 있다. 땅이라는 바닥에 붙어 사계절을 보낸다. 땅이라는 바닥에서 겪는 고통 속에서 조금씩 나이테를 늘리면서 몸집도 커지고 키가 자라면서 우람해진다.

나 또한 고난이라는 바닥에서 나의 모난 성격이 깎이면서 성숙해간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유행가 가사처럼 내가 아픈 만큼 남이 얼마나 아픈지 느낀다. 또한 모멸감을 느끼면서 사람을 존중하는 법도 배운다. 내가 공감받지 못하고 배려받지 못하면서 공감과 배려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낀다. 사소한 것에서 타인을 배려하는 태도와 행동도 배운다. ‘먼저 사람이 돼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는다.

오늘 공공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화장지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청소하시는 분을 위해 화장지를 쓰레기통에 넣었다. 별것 아니지만, 작은 나의 행동 배려라고 생각한다.

나이만 어른이 아니라 조금씩 행동도 성장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사회 생활 속에서 여러 사람을 만난다. 타인에 대한 배려가 없는 많은 사람을 겪었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어떤 사람이 나를 밀고 내 앞을 지나간다. 내가 앞 사람과 거리를 두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가면 그 사이를 새치기하면서 들어 온다. 빈 좌석이 생기면 주위에 어르신이 계시든지 말든지 자신이 앉기가 바쁘다.

나는 이런 모습을 겪으면서 지하철에서 타인에게 양보하고 조금 늦더라도 최소한 지켜야 할 기본적인 예의와 질서를 지키기로 했다. 내가 이렇게 살기로 작정한 것은 바닥을 쳤기 때문이다. 바닥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을 지키는 삶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뼛속 깊이 깨달았기 때문이다.

우람한 자태로 하늘을 향해 뻗은 나무를 보면 바닥에서 고통을 겪으면서 인내로 버텨온 세월이 그려진다. 그리고 나무에게 왠지 모를 동질감을 느낀다. 나 또한 고난 속에서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바닥인 상태라도 너무 좌절하지 말자. 바닥을 치고 나면 이제 올라갈 일만 있다. 바닥 속에서 거친 말투와 막말도 조금씩 버리면서 가자. 말은 마음에서 나온다. 사람들이 싫어하는 모습은 조금씩 바꾸면서 가자. 냉소적인 모습이 자랑도 아니고 본인에게 별로 좋을 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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