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고 또 기도하며

by 생명의 언어


사람이 완벽하게 절망적인 상황을 맞이하면, 감정적인 절망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사방이 막혀 퇴로가 전혀 보이지를 않고, 단 하나의 가망조차도 없는 완벽히 절망적인 상황을 맞이하게 되면, 그때는 불안과 공포조차도 항복한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내 손에 쥔 한 줌도 안 되는 돌멩이들을 쥐고서 그 수를 헤아리며, 손 안에 든 이 돌들을 어떻게든 잘 던지면 눈앞의 골리앗을 해치울 수 있을 것이라고 믿으면서, 돌 하나를 던지니 빗나가고, 또 다시 하나를 던지니 빗나가면서...... 그렇게 하나씩 사라져갈 적에, 또 어딘가에서 돌을 찾아 모아야 하나? 도대체 어디까지 가야 하지? 도망치면 벗어날 수 있나? 나의 전력질주와 골리앗이 나를 쫓아오는 속도를 비교한다면? 그의 힘과 나의 돌팔매질의 힘을 비교한다면? 눈 앞의 상황을 어떻게든 통제하려고 온갖 어지러운 생각들을 다 한다. 계획을 세우고, 상황을 분석하고, 밤새 뜬눈으로 지새며, 되지 않는 것들을 끝까지 고집하려고 들며, 그 가운데에서 단 한 숨도 편히 쉬지를 못한 채로, 그리 살았다.


그러나 이번에 확실히 알았다. 손 안에 든 것이 아무것도 없었고, 이제는 내 힘으로 상황을 감당하려고 바깥에 나가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으며, 과거는 완벽하게 무너져버렸고, 살 길을 도모하였던 모든 경우의 수는 차단되었다. 안과 밖이 모두 막혀서, 나는 결국 두 손을 완전히 내려놓는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그렇게 되니 편안했다. 골리앗은 힘이 세니 나를 고통 없이 보내줄 수 있겠구나, 하면서.


한국어 <순종>에는 인간 무의식의 근원적인 어두움, 곧 두려움, 공포, 불안과의 처절한 사투 끝에 결국 스스로 엎드려 항복하게 되는 그 실존적 결단의 뉘앙스가 실리지 않는다. 그것은 영어 단어 Surrender에만 온전히 담기어진다. 나는 지금껏 내 힘으로 이 길을 걸어온다고 여겼던 적이 단 한 순간도 없었다. 그것은 자랑이 아니라, 나의 이 짧은 생애는 주기적으로 반복해서 나를 찾아오는 동일한 패턴의 업보 앞에서 매번 동일한 방식대로 도망치고 숨고 외면하는 역사였다. 괜히 그분께서 내게 외면의 죄를 영으로 체험하게끔 하신 것이 아닌 것이다. 그리하건대 나는 지금까지 걸어온 이 길고도 힘겨운 과정들 중 어느 하나라도 내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그랬더라면, 나는 아마 애진작에 멀리 도망쳐서 가족도 친구도 소중한 사람들도 다 배신하고는 홀로 숨어서 허망하게 생을 마쳤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오늘도 이 길 위에 서 있다. 두렵고 무섭고 불안할지언정, 어떻게든 한 걸음씩이라도 나아가고 있다. 이 자체가 내겐 증거이다. 나의 힘으로 여기에 서 있지 않다는 증거.




자아(ego)는 절망적인 상황 앞에서 발악하면서 외친다 : "정신 차려! 어떻게든 상황을 통제해야지, 빨리 분석하고 판단하고 계획을 세우고 대처하고 행동해야지!" 그래, 너의 말에 동의한다. 나도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잃어버린 탓에 이제는 고통조차도 없는 그 기묘한 평화 가운데에서, 내 스스로도 이건 미친 짓이라고 생각했다. 가만히 손 놓고 있는 것 자체가 미친 짓이었고, 나는 그 가운데에서 기묘한 평화를 느끼는, 제대로 미친 정신병자였다.


그러나 나의 영혼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 발버둥쳐봤자 결국 상황은 통제를 더욱 벗어나게 될 것이며,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고, 겉잡을 수 없이 악화되기만 할 거라는 것을. 내 방식대로 내 계획대로 내 판단대로 하면 모든 것이 다 나아질 것 같지만, 정작 그리 선택하고 실행했을 때, 해결되는 것은 하나요, 악화되는 새로운 문제들은 열 이상이 된다는 것을. 어디에도 답은 없었고, 어디에도 희망은 없었으며, 그 무엇도 허락되지 않았다. 전진하는 것도 후퇴하는 것도 심지어 가만히 있는 것조차도 허락되지를 않았다. 그러면 땅으로 꺼져야 하나, 하늘로 솟아야 하나? 도대체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이지? 내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나를 어디로 인도하시고자 한단 말인가? 나는 정말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본디 사람이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고 한들, 최소한 굶어 죽게 생긴 마당에 당장 코앞의 일에 대해서 나아갈지 물러설지는 말씀해주셔야 하는 것 아닌가...... 정말로 그리 생각했다.


자아의 판단과, 영혼의 순종은 결이 다르다. 일찍이 그걸 자주 느꼈다. 자아는 지금의 상황이 엄청나게 위중하고 위험하며, 그 즉시 비상경계 태세에 들어가야 한다고 발광한다. 그래, 내가 진심으로 동의한다니까. 나는 자아의 편이다. 그런데 나의 영혼은 나의 자아보다 힘이 세서, 나를 자꾸만 "반대편"으로 데려간다. 당장 지푸라기라도 붙잡아야 하는데, 나의 영혼은 고요한 가운데에서 거닐고 산책하고 묵상할 것을 전한다. 따뜻한 햇빛과 기분 좋은 바람 가운데에서 평화를 회복하라고 말한다. 눈앞의 산적한 모든 문제들을 다 손에 놓고서, 다만 그리하라고 말한다. 진실로 말하건대, 그 음성 앞에서 자아는 미치고 팔딱 뛸 노릇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아에는 답이 없음을 안다. 답은 영혼에 있다. 그리하여 나는 더 이상 미칠 수도 없는 그 상황 한가운데에서, 영혼의 이끌림을 따른다. "멈춰서서, 내려놓고, 쉬어라." 그래, 멈추는 것도 엄청나게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진심으로" 멈춰서는 것, 말이다. 결국, 그 상황 가운데에서 내게 허락된 유일한 것은, 내가 늘 해오던 일이었다. 영적인 글을 쓰고, 나의 진심을 타인에게 전하며, 내가 사랑하는 진리를 말하고 또한 내가 열망하는 신성을 증거하는 것, 지금 하고 있는 이것 말이다. 또한 은밀한 가운데에서 임재하심으로 몰입하며, 기도하고, 기도하고, 기도하는 것...... 기도하고 또 기도하는 것, 결국 이것만이 허락된 일이었다. 내게 글쓰기는 그 자체로 기도이자 찬양이었고 또한 예배였으며, 내게 허락된 유일한 것이 이것 하나였으므로, 자아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미친 짓"이었지만, 나는 영혼의 이끌림에 따라서 그 미친 짓을 했다. 눈앞의 현실이 전혀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가운데에서, 다만 그 미친 짓 하나만을 계속했다. 그리 하루를 살고, 또 하루를 살며, 새벽의 시간들을 감당하고 받아들이고 통과했다.


다만 이것이 지난 수 년간의 나의 삶이었다.




문득 갑자기 그분께서 내게 말씀들과 간증들과 설교들을 보내시기 시작했다. 내게 신앙은 평생에 걸쳐서 끝까지 수행해야 하는 사명이었고, 사람이 언젠가 반드시 죽어서 아버지 앞에 설 것이되 그 앞에 설 준비를 하는 일이었다. 내게 신앙이 한 번도 가벼웠던 적이 없었다. 내게 신앙은 늘 슬픔이었다. 불안과 공포와 두려움 가운데에서도 목숨을 거는 일이었다. 당장 도망쳐도 그 누구도 욕하지 않고 오히려 이해할 만한 그런 상황 가운데에서도 "함께하시는 것을" 진실로 믿고, "뻗대는" 일이었다. 그 뻗대는 것 하나에 내 존재 전체를 걸어야 했다. 한때, 그분께서 형편없는 수준이나마 나를 들어올리셔서 쓰실 적에는 내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크나큰 사명을 지우셔서 이를 매일매일 감당하기 위해서 어떻게든 기어서라도 본능적으로 그분께로 가까이 나아갔던 시간들이었고, 불과 서른도 되지 않는 주제에 부모뻘인 학생들을 데리고 뭘 안답시고 설쳐대고 은혜를 베푼답시고 우스운 꼴을 보였으며, 결국 그마저도 응당 맞이했어야 할 결말을 맞이하게 만들었다. 그래, 결국 그게 내 실체였다. 그리고 또한 나를 낮추실 때에는 그 낮아지는 것이 정말이지 숨을 쉬기 어려울 만큼 고통스러웠다. 일어난 불안은 불안이 아니요, 일어나지 않았음에도 당장 일어날 것처럼 느껴지는 불안이야말로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는 것을 절실히 알았다. 높아지는 것도, 낮아지는 것도, 어느 쪽도 다 쉽지가 않았다. 높아질 때는 당장 떨어져 죽지 않기 위해서 목숨 걸고 순종해야 했고, 낮아질 때는 짓눌려 압사당하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든 아등바등 메달려야만 했다. 그것이 내 신앙이었다.


솔직히, 이제는 이걸 신앙이라고 부를 수조차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나는 여전히 미친 짓을 하고 있다. 이 하나에 메달리고 있다. 자아의 외침을 듣지 않고, 다만 영혼이 이끌리는 대로 그리하고 있다.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 "의지의 방향성"이기 때문이다. 어두움 가운데에서도 어두움에 속지 않고, 더욱 빛을 사랑하고, 더욱 빛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 어두움보다 빛을 더 사랑하는 것.


한때는 내 안에 영적으로 자랑해 보일 만한 일들이 많았다. 자랑할 만한 그럴듯한 간증들도 많았고, 그럴듯한 역사들도 많았으며, 툭 치면 쏟아져나올 만큼 유려하고 화려한 그러한 것들이 많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열매가 맺어갈수록, 점점 더 그러한 자랑거리들을 내게서 거두어가심을 느낀다. 이제 내게는 자랑할 만한 역사가 없다. 나는 남들과 다르게 거창한 기적 같은 걸 일으키지도 못했고, 병자를 일으켜 세우지도 못했고, 진리를 널리 전파하지도 신의 이름을 제대로 증거하지도 못했다. "하나님을 눈으로 보는" 것 따위는 내게 애시당초 허락되지도 않았다. 그만큼 철저하신 보호 덕분에, 나는 그 어떤 것도 보지 못했다. 영적인 장님이요 맹인이다. 보이지 않는 채로 본다는 게 이런 감각일까 싶을 만큼.


이제 내가 자랑할 수 있는 것은 딱 하나 남았다. 이 지경이 되어서도 내가 진실로 그분을 믿기에 어떻게든 포기하지 않고 이 순간을 지나오고 있다는 것. 뒤로 돌아서서 도망치지 않고,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




그럼에도 내가 진실로 믿는 것은, 지금은 비록 낮아져 엎드려 있으므로 내 스스로가 이제는 한때의 그 영광스러웠던 빛들과 체험들과 임재와 역사들을 다 영영 잃어버린 것만 같지만, 이제 두 번 다시는 그때와 같은 일들을 행하지 못할 것만 같지만, "이제는 그분마저도 나를 떠나신 것만 같지만"......


그럼에도, 그분은 언제나 그렇듯이 "불현듯, 갑자기" 나타나신다는 것, 그리하여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나에게 다시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어 보일 기회를 주신다는 것, 그분의 뜻을 이룰 능력과 힘과 지혜를 허락하신다는 것, 그리하여 나의 영을 통하여 주의 영이 드러날 적에, 그 하나됨의 고유한 감각들을 내가 너무도 선명하게 다 기억하고 있다는 것, 나의 영혼이 자유로이 흐르며 그 흐름 가운데에서 빛을 드러내고 공유하고 전파할 적에, 내가 진실로 그 순간을 절실히 사랑하였으며, 내가 이 일 하나를 위하여 지음받고 태어났음을 확신하게 되며, 또한 그분께서 나의 손을 잡고 그분의 일을 이루시는 그 순간에 동참할 적에, 내가 무엇이든 다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그러한 믿음이다. 원래부터 나의 능력이 아니었고 나의 힘이 아니었고 나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었으므로, 그분께서 내게 잠시 멀어져 계시는 동안에 내가 낮아짐은 당연한 일이며, 또한 나의 절망과 무관하게 그분께서 다시 내게로 불현듯 가까이 오실 적에는 즉시, 한순간에, 내가 그리워하고 또 소중히 간직하던 그 모든 것들을 다시 복원하시고 되찾으실 거라는 것을, 믿는 것. 그리고 그 믿음 하나로 인하여, 자아의 시선에서 완벽하게 절망적이고 그 어떤 가망도 없는 그 한가운데에서도 다시 오실 날을 기다리면서 하루를 이어가는 것.


그러므로 나는 내게 유일하게 허락된 단 하나의 일, 기도하고 또 기도하며, 이 순간을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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