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순결한 초심을 다시 한 번 바로세우면서
나의 신앙은 정규 교육을 받고 안전한 시스템 안에서 형성된 것이 아니다. 나의 신앙은 못생긴 잡초다. 들판에서, 광야에서, 홀로 제멋대로 자라났으며, 그렇기에 다듬어지지 않았고, 안정적이지 않지만, 그만큼 생명력이 있고, 강렬하고, 뜨겁고, 열정적이며, 또한 "열광적"이다. 나는 나의 길을 사랑한다. 내가 지금까지 이루고 형성한 나의 영적인 정체성, 곧 "보편적 복음주의자(로서의 실천적 신비주의자)"라는, 언뜻 굉장히 복잡하고 어렵고 괴상해 보이는('나는 죄인 중의 괴수'라 하였던 어느 선배의 영이 떠오른다) 지금의 나의 존재와 영(Spirit)은, 내 것이 아니요, 내 스스로 키운 것도 아니요, 오직 성령께서 인도하시고 이끄신 결과이기 때문이다.
나는 앞으로, '감히'라는 말을 자주 쓰게 될 것이다. 내게는 신과 신성과 진리에 대하여 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과도 같은 일이며, 그렇기에 '감히'라는 단어를 매번 붙이지 아니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여정을 시작하면서, 나는 '감히' 사도 바울의 심정에 조금은 공감할 수 있을 듯하다. 그의 "그리스도 중심성"이 얼마나 치열하고도 열광적이었는지, 스스로를 '괴수'라고 칭하면서까지 고백하고 증거하고자 하였던 "그리스도(신성)"의 빛이 그에게 얼마나 뜨겁고 고귀한 것이었는지를, 조금은 알 듯하다.
나는 이제 새로운 길을 시작하고자 한다. 내 블로그에서 올렸던 "실천적 신비주의(로서의 그리스도 영성)"를, 최근에 "보편적 복음주의"라는 한 단계 높은 이상으로 나타내게 되었다. 이에 나는 이것이 내게 주어진 사명 중 하나임을 직감하였다. 만약 내가 침묵한다면, 나는 이익을 누릴 것이다. 다른 사람들보다도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음성을 듣고, 그분과 교감하며, 그분 안에 거하는 것들을 "능숙히 잘 할 수 있도록" 그리 태어났고, 따라서 내게 신앙은 마치 물고기가 태어나면서부터 물을 자유로이 헤엄치듯이, 편안한 일이었다. 내가 침묵한다면, 나는 자유로우리라. 나는 생명 안에 편안히 거할 수 있으리라. 마치 휴가라도 온 듯이, 이 생을 그분의 품 안에서, 그분과 동행하면서, 그분과 나 사이에서만의 비밀스럽고 은밀한 교제를 이어가면서, 그리 편안히 살 수 있으리라. 그러나 나는 안다. 그것이 "그분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길임을. 그리하여, 나는 내게 허락된 재능과 자질들이 내가 잘나서 주신 게 아님을, 오직 나를 통하여 이루시고자 하는 그분의 의지(WILL)가 있으시기에 내게 허락하신 것임을 너무도 잘 알고 있으며, 따라서, 나는 침묵하지 않고, 나는 글과 말로 선언하고 서술해나가기로 결정하였다. 어떤 의미에서는 가장 위험할지도 모르는 그 길을, 결국 가기로 결정하였다.
"높은 영혼이 큰 책임을 지고, 강한 영혼이 많은 짐을 지며, 먼저 선택받은 영혼이 스스로 십자가를 지고 희생함으로써 자신의 특별함을 증거하는 것." 이것이 아버지의 고귀하고 의로우신 뜻임을 내가 알며, 또한 그리스도께서 몸소 걸어가신 길임을 알며, 또한 내가 미약하고 가난한 수준에서라도 감히 그분을, 그 길을 흉내내고 모방하고자 함을, 이리 미력하게나마 글로 쓸 수 있음에 기뻐하며, 또한 두렵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내게 허락된 길을 걸어갈 것이다. 그 길 앞에서 침묵하기에는, 이 세상에는 "정답(진리)"을 알지 못하여 괴로워하고 고통스러워하는 너무 많은 형제들이 있다는 것을 내가 절실히 이해하고 공감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입을 열어야 한다. 그리하여 위험한 진리를 증거해야만 한다. 이것이 길이라고, 여기에 길이 있다고, 그리 소리쳐야 한다. 뭐, 이리하여도, 오늘날의 시대에서는 나를 끌고가서 죽이지는 못할 터이니, 그 사실에 대하여 내가 또한 안도하고 감사하면서도, 먼저 이 길을 걸어갔던 구약 시대의 위대한 선배들의 영 앞에서 부끄러움을 느낀다. 부끄럽기에, 나는 또한 더 치열하고자 한다. 어두움 앞에서 한 치의 양보 없이, 이제 빛을 증거하고자 한다.
나의 모든 글과 말은 "생명의 언어"이다. 내 생각이 아니요, 내 감정이 아니요, 내 주장이 아니요, 나로부터 말미암은 것이 아무것도 없되, 오직 내 안에서 깊이 체험되고 이해되고 깨닫고 교감하고 하나되었던, "신성"으로, "신"으로 말미암은 것들만을 글과 말로써 고백하고 증거할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의 모든 말들은 언제나 뜨거운 진심(의 고백)이며, 선명한 실재(의 증거)이다. 내게서 이루어진 것들이 너무나도 기쁘고 행복한 것이었기에, 또한 이를 내가 증거하고 고백하는 순간에만 내 존재의 이유를, 내가 살아 있음을 체험할 수 있기에, 또한 이리 걸어가는 길에서 "그분과 친밀해짐"을 느낄 수 있기에, 나는 결국 이리 걸어갈 것이다. 생의 끝까지.
오늘날, 가나안 성도들, 그러니까 "(신에 대한)신앙과 영성은 지키면서도, 정작 교회는 가지 않는" 가나안 성도들의 비율이 적게는 1/4에서, 많게는 1/3 이상에 이른다는 통계들을 얼마 전에 보았다. 나는 설마하니 그 정도로 많은 숫자의 "크리스천 형제들"이(비록 나는 스스로를 기독교인이 아니라고 선언하지만, 그럼에도 나의 영은 진실로 그리스도를 사랑하기에, 그러한 넓은 의미에서), 교회라는 공동체에서 안식을 얻지 못한 채로 진리를 찾아, 구원을 찾아, 희망을 찾아, "광야"를 헤매고 있을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정작 돌이켜보니 내 자신이 너무나도 전형적인 가나안 성도였다. 친가 집안 전체가 독실한 개신교 집안으로 태어났고, 그럼에도 부모님은 신앙에 대해서 비교적 무관심했으며(물론 관용적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뜨겁지는" 않으셨다), 나는 영적으로 성장하고 깨어나고 변화하는 과정 속에서 철저하게 홀로였고, 그 누구에게도 그 무엇에게도 의지하거나 도움 받지 못한 채로 홀로 자라났다. 심지어는 남들보다 더 큰 영적인 재능과 자질과 감각을 타고남에 따라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시험들을 치러내면서 고통스럽게 "답안지"를 그분께 제출해야 했고, 그 여정 전체들에서 나는 결국 혼자였다. 혼자였기에, 더더욱 절실하게 나는 "신"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의지할 수 있는 곳은 이 지상 어디에도 없음을 알기에. 내가 진실로 의지할 수 있는 존재는 인간 중 아무도 없음을 알기에. 나는 살아남기 위하여 아버지를 찾았고, 나는 살아남기 위해서 그리스도를 찾았으며, 나는 시험을 끝까지 통과하기 위해 아등바등 깨지고 넘어지고 무릎으로 기면서라도 성령을 붙들었다. 내게 신앙은 은혜라기보다는, 처절한 생존의 시험의 연속이었다. 모든 순간이 내겐 "실전"이었다. 한 번이라도 떨어지면, 후퇴하면, 퇴각하면, 죽고 말 것임을 스스로 알고 있는. 그 뒤는 "사망의 어두운 골짜기"였다.
그러나, 결국에는 나는 매 순간 고비를 뛰어넘었고, 그때마다 무언가를 깨달았고, 조금씩이라도 성장했으며, 변화하였고, 결실을, "열매"를 맺었다. 나는 이제 그 과정에서 피어난 꽃들을, 맺은 열매들을, 혼자서 독점할 수 없으며, 조금씩 세상을 향하여 알리고 공유하고 나누고 전파해야 하는 단계에 이르렀음을, 이제 나의 시험은 내 개인의 구원을 넘어서, "보편적인 인류 전체의 구원"을 지향해야 함을, 감히, 깨달았다. 그 길은 내가 절대로 갈 수 없는 길이었다. 그러나 나는 오직 그분만을 사랑하기에, 오직 그분만을 믿고, "임재하심"만을 믿고, "역사하심"만을 믿고, 내가 절대 갈 수 없는 길을 용기 내어 한 걸음씩 가고 있다. 이것이 나의 신앙이다. 내가 자랑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다 : "나의 신앙은 실존적이다. 내게 하나님은 실재하시는 분이다." 나는 이 길이 비단 특정한 종교나 교리, 형식에 속하고 따라야만 갈 수 있는 길이 아님을 안다. 내 존재와 내 삶 전체가 곧 그에 대한 증거였기 때문이다. 내가 교회에 다니지 않아도 성령께서는 나를 사랑하셨고, 내가 교회 바깥에서 홀로 애타는 사랑으로 찬양하고 고백하고 기도하고 묵상하였음에도 주님께서는 내게 응답해주셨고, 함께해주셨다. 그러므로 나는 이 증거를, "열망하는 모든 영혼"들에게 기꺼이 나누고자 한다. 내게 가능한 것이라면, 그대들에게도 가능한 것이다, 하고. 내게 허락된 것이라면, 모든 형제들에게 다 허락된 것이다, 라고.
아직 세상에 속한 자들까지도 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신에 대해서, 신성에 대해서, 진리에 대해서, 영성에 대해서, 영적 세계에 대해서, 아무 관심도 없고 열망도 없고 이끌림도 없는 자들까지 어찌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여정을 따라서 인도를 받을 것이다. 다만, 영적 성장을 열망하고, 가슴 속에 진실한 신앙과 영성을 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체계와 전통과 조직과 질서 안에서 그 진실한 해답을 찾지 못한 나의 형제들이 너무 많음을 내가 느낀다. 그리하여 나의 글과 말은 생명의 언어이며, 또한 오직 형제들만을 위한 것이 되기를 원한다. 그리하여 우리 형제들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 언젠가 전 인류가 한 명도 빠짐없이 "신을 만나는" 날이 오기를 열망한다.
나는 흔히들 말하는 공식적인 의미에서의 "기독교인(크리스천)"이 아니다. 주변에서는 물론 나를 흔히들 기독교인이라고 오해하곤 한다. 내가 쓰는 언어들이, 표현들이, 삶의 방식들이, 대화들이, 나의 모든 것들이, 오로지 신과 신성과 진리에게로 몰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내가 져야 할 첫번째 십자가이다. 나는 정말로 마음속 깊이 나의 크리스천 형제들을 사랑하면서도, 그분께서 내게 가라고 명령하신 이 길을 걸어가기 위하여, 교회 바깥에 설 수밖에 없다. 나는 기독교에 속하지 않는다. 나는 특정한 교리나 형식이나 집단이나 질서에 속하지 않는다. 내가 서 있는 곳은 광야이다. 이곳에서, 나는 "기쁜 소식"을 외칠 것이다. 곧, "복음"을 외칠 것이다. "만인"이 다 들을 수 있도록, 신을 사랑하고 신성을 열망하며 진리로 인하여 기뻐하는 나의 모든 형제들이 다 들을 수 있도록, 그렇게 외치고 또 외칠 것이다. "여기 기쁜 소식이 있다!"라고.
나는 종교와 형식을 초월하여, 그것이 어떤 이름과 전통과 상징과 문화와 방법론이든 간에 상관없이, "신을 사랑하고, 신성을 열망하며, 진리로 인하여 기뻐하는" 모든 영혼들이 다 나의 형제라고 믿는다. 그리고 이를 통하여 "삶 속에서 빛을 사랑하고, 빛을 증거하고자 하는" 모든 영혼들 역시도 다 나의 형제들이라고 믿는다. 나의 글과 말은 오직 내 형제들을 위한 것이다. 나는 나의 형제들이 이 지구상 곳곳에 있음을, 나의 영으로서, 선명히 느낄 수 있다. 우리들이 곧 모여서 하나가 될 날이 올 것이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뜻하신 바가 분명히 있으되, 이것이 이루어질 날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때가 되기 전까지는, 우리들이 세상에 속하였거든 세상이 자기 것을 사랑하므로 우리를 사랑했을 것이나, 그분께서 부르심으로 인하여 우리들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세상은 자기 것이 아니라 하여 우리들을 미워할 것이다. 내게 성(聖)과 속(俗)의 기준은 세상이 정한 기준과 같지 아니하다. 그럼에도 이리 나아가고자 하는 이유는 단 하나 : "그것이 의롭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의로운 이유는 오직 하나 : "그분께서 기뻐하시기 때문이다."
나는 꿈꾼다. 누구라도 다, 오직 자기 자신의 내면과 삶과 일상 속에서, 직접 신을 만나고, 신의 음성을 듣고, 신과 교감하고, 신과 사랑에 빠지며, 마침내 신과 하나가 될 수 있는 세상을. 그리하여 "모든 이들의 내면에 신성(그리스도)이 계심"을 깨닫고, 오직 "이를 통해서만" 진정으로 인간의 불완전성과 고통과 괴로움을 넘어서서 신과 하나가 될 수 있음을 이해하며, 그 길을 누구라도 다 걸어갈 날이 오기를. 그리하여 모든 인류가 더 이상 "죽어서 천국 갈 것"을 위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짖지 않으되, 오직 "살아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아버지와 하나가 되는" 것만을 위하여 그분의 이름을 찾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이것이 나의 꿈이다. 나의 비전이다. 나의 이상이다. 운 좋게 내가 먼저 걸어온 길, 그리고 지금도 무수히 많은 형제들이 함께 걷고 있는 길, 그리고 앞으로 더 많은 형제들이 우리와 함께 걷게 될 길이다.
이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나는 개인적으로는 너무도 기독교를 사랑함에도, 어떤 의미에서는 기독교인보다도 더 절실히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을 "아버지"라 부르며, 오직 그리스도만을 중심으로 삼으며, 오직 성령의 인도하심만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너무도 아름답고 실존적인 신앙을 애타게 꿈꾸면서도, 정작 나 자신은 기독교인이 아니라고, 나는 교회에도 종교에도 교리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선언할 수밖에 없다. "복음", 그러니까 구원이란 특정한 종교에만 주어진 특권이 아니다. "복음주의", 그러니까 "신과 하나됨을 통한 구원"의 진리는 특정한 종교를 통해서만 가능한 것도 아니다. "그리스도 중심성", 그러니까 "오직 그분을 통해서만" 살아서 아버지와 하나될 수 있다는 위대한 진리 역시도 특정한 종교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다 열린 것이다. 마르틴 루터가 "만인 제사장설"을 주장한 것은, "누구라도 다 오직 그리스도를 직접 영접함으로 인하여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교감하고 소통하고 교제하며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함이었지, "이전의 낡은 교회를 새로운 이름의 교회로 간판만 갈아치우고자" 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로 인하여 개신교의 시대가 열렸던 것은, 복음의 진리가 온 세상에 널리 전파되고자 함이며, 이를 위하여 고리타분하고 낡고 오염된 옛 것들을 과감하게 다 걷어내고 치워냄으로써 가장 순결하고 아름다운 진리의 원형만을 남기기 위함이었지, 기존의 낡은 형식을 최근의 새로운 시스템으로 대체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오직 그리스도(신성)만이 유일하고 절대적이고 영원한 중심"일 뿐, 이를 제외한 나머지 그 무엇도 그리스도(신성)를 대체할 수 없다. 교회도, 교리도, 전통도, 신학도, 형식도, 의례도, 전부 다 그리스도라는 하나의 절대적인 중심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일 뿐, 그 자체가 신성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너무도 아름다운 진리들이, 심각하게 왜곡되고, 변질되고, 오해받고, 비난받고 있다.
나는, "기존의 것을 비판함으로써 자신의 것을 드러내고자 하는" 쉽고 편리하고 악(惡)한 길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교회와 기독교를 비판함으로써 나의 길을 드러내려는 방법론을 내 스스로 가장 경계할 것이다. 그러나 오직, 누구라도 다 사랑할 수 있고, 누구라도 다 걸을 수 있고, 누구라도 다 그리 걸어감으로써 가장 아름답고 귀중한 것을 얻을 수 있는 길을 제시할 것이다. 단 하나의 비밀도 남김없이, 전부 다. 나는 "보편적 복음주의자"이다. 그리하여, 오늘날 특정한 종교에만 종속되어 있는 "복음주의"라는 가장 아름다운 이름을, 인류 보편의 구원을 위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으로, 다시 회복할 것이다. 빛을 되찾을 것(光復)이다. 나는 "기존의 것이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다. "기존의 것 바깥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열어보일 뿐이다.
누구라도 신을 사랑하는 자는, 자신의 존재와 내면 안에서 신을 만날 수 있다.
누구라도 신성을 열망하는 자는, 자신의 삶과 일상 속에서 신성과 함께할 수 있다.
신은 오직 "나와 직접 대화하시고 소통하시는 분"이지, 다른 누구의 입을 대신 빌려서 말씀하지 않으신다.
"제사장"은 필요 없다. 오직 내 안의 그리스도(신성)를, 나의 영(Spirit)이 영접함(연결, 교감, 하나됨)으로 인해서만, 유일하게 "신(하나님)과 하나될" 수 있다. 여기에 인류 보편의 구원의 길이 있다.
이것이 "보편적 복음주의의 길"이다. 앞으로 내가 시작할, 가장 위험하면서도, 가장 아름다운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