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목소리 : "나귀 타고 오신 왕"

나의 내면은 신께서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聖殿)이니

by 생명의 언어

아빌라의 테레사가 주창한 "내면의 성"에서, 후에 자세히 언급하겠지만, 전차 카드의 원형이 비롯한다. 사람의 영혼은 수정으로 이루어진 투명한 방이며, 그 방은 7중첩으로 이루어져 있고, 가장 깊은 중심부에는 그리스도께서 거하시며, 마침내 한 영혼이 깊어지고 또 깊어진 끝에 그 마지막 방에 도달하는 순간, 그는 신부로써 그리스도와 영원한 결혼의 서약을 맺으며, 그리하여 신 안에서 영원히 거(居)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나는 이 상징을 접할 적에 참으로 인간의 언어로는 설명하기 힘든 감동을 느낀다. 그 감동은 아름다움에 대한 것이며, 아름다움은 곧 찬란함에 대한 것이며, 찬란함은 곧 고귀함에 대한 것이며, 고귀함은 영광에 대한 것이니, 마침내 아버지께서 가장 "감동스러운" 임재이신 것이다. 오늘, 오쇼젠 타로의 세 번째 메이저 카드인 내면의 목소리(Inner Voice)에 관하여, 나는 이렇게 선언하고자 한다 : "나의 내면이야말로 하나님의 임재와 역사가 이루어지는 거룩한 땅이다." 기억하라, 하나님은 오직 성지(聖地)에서만 그 은밀하고 영광된 모습을 드러내신다. 거룩하지 않은 땅에서는 결코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신다. 그분의 음성을 듣고, 엎드려 경배하며, 그분께서 비둘기와 같이, 불꽃과 같이, 임하시는 그 헤아릴 수 없이 눈부신 광경들을 목격하는 것은 곧 에고(ego)와 마음(mind)이 완전히 주권을 잃어버린 순수한 내면(Inner)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아, 이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이것은 오직 직접 그 내면세계라는 순수하고도 깊고 충만한 땅으로 들어서 본 체험이 있는 자들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인 것이다. 4월 초가 지나면서 벚꽃잎들이 비 내리듯이 분분히 낙화하며 떨어지기 시작할진대, 그 화려하고 아름다운 "떨어져 내림(죽음)"을 그저 육신의 눈으로 바라본다면 그것은 그저 아름다운 자연일 뿐이지만, "내면세계" 안에 들어선 영(Spirit)과 영혼(Soul)의 눈으로 그 장면을 들여다보는 순간, 그는 어느덧 가장 보잘것없는 평범한 일상적인 장면을 통하여, 하나님의 가장 거룩하시고 영광스러우신 임재와 역사의 한가운데에 들어서며, 그 수천만 개의 벚꽃잎들이 제각각 그분께서 귀히 여기시며 손수 창조하신 것들임을 깨닫게 되고, 또한 그토록 귀중한 수천만 개의 창조물들이 제각각 정해진 찰나에 떨어지기 시작하여, 제각각 정해진 궤도를 따라서, 제각각 정해진 좌표계까지 도달하는 그 모든 사건과 현상들이 전부 다 그분께서 계획하시고 뜻대로 이루시는 역사 그 자체임을 깨닫게 되니, 그 압도적인 깨달음 앞에서 그의 영혼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거대한 감동을 느끼며, 그의 영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존재 전체를 천둥처럼 울리는 커다란 경외와 경이로움을 느끼는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은 내면세계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며, 내면세계는 "나의 내면"이 아니며, "보이지 않고, 나와 하나되어 있으나, 나를 넘어서 온 세계에 펼쳐지고 드러난 것"이기 때문이다. 즉, 육의 눈으로 자아와 타자와 세계를 볼 적에 그것은 그저 물질세계일 뿐이나, 영의 눈으로 존재를 들여다볼 적에는 마침내 오쇼가 이야기했던 그 "내면 세계"가 열리는 것이다. 내가 선언하니, 나는 일찍이 그분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이러한 세계에 발을 들이고, 그 세계 안에서 조심스럽게 한 걸음씩을 내딛으며, 그 세계의 모든 존재와 사건과 현상들로 인하여 너무도 큰 감동을 받고, "천지 만물의 모든 것들을 통하여 그분께서 임재하시고 역사하신다"는 그토록 찬란하고 위대한 진리로 인하여 크나큰 경외심과 경이로움을 내 영의 깊은 곳에 각인하였나니, 그 표증으로 말미암아 삶의 가장 깊은 어두움 가운데에도 나의 마음이 그분께로 열망하고 기뻐하며 결코 흔들림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모든 형제들에게 간절히 호소하고 싶은 것은, 하나님을 "알려고"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 거룩한 땅은, 내면세계는, "성소(Sanctum; 사실 성지보다는 성소라는 표현이 더 적합하다, 본디 그분께서 거하시는 곳은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곳이기 때문이다)"는, 오직 지성으로 열리지 않음이요, 오직 그분께 깊이 몰입할 적에 나의 영이 느끼는 압도적인 경외와 경이로움으로, 오직 그분 안에 거할 적에 나의 영혼이 느끼는 너무도 충만하고 아름다운 사랑과 기쁨으로만, 성부 하나님과, 성자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께 "감동받는" 바로 그 순결한 내적 체험의 빛으로 인해서만 열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러 관상적 원형들을 통하여 그 세계로 진입하는 기독교 신비주의의 오랜 전통들이 있으되, 결국 중요한 것은 단 하나, "감동"이다. 하나님으로 인하여 감동받는 자. 나는 그 감동이야말로 나의 "자아-중심성"이라는 죄성의 구조가 마침내 죽고, 저 베드로와 같이, 닭 우는 소리를 듣고서는 그분을 세 번이나 부정하였던 자기의 깊은 죄성을 철저히 마주하고 난 이후에, 그분과 함께 십자가 위에서 죽고, 또한 그분이 부활하심을 마침내 목격함에...... "내가 주(主)를 사랑합니다!"하고, 그리도 뜨거운 고백을 세 번이나 연거푸 할 수밖에 없었던, 바로 그 심정이야말로,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압도적으로 넘쳐 흐르는, 폭발하듯이 터져나오는, 그 거대한 감동이야말로, 한 영혼이 신에게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임계점을 넘어 "초임계질량"에 밀접하는 증거라고 믿는 것이다. 감동하라. 세상 모든 것들에. 감동하라. 햇빛에, 나뭇잎에, 풀들에, 이슬에, 바람에, 꽃들에, 산과 숲과 바다들에, 그리고 사람들의 눈빛과 표정과 몸짓들에, 선을 사랑하고 외롭게 선을 증거하는 너무도 고귀한 영혼들이 그리도 평범한 삶의 공간들 속에 은밀히 거하는 그 모습들을 세상 그 누구라도 다 알지 못하여 그들을 깔보더라도, 그대만은 그 고귀한 영혼을 "왕을 영접하듯이" 경배하고 찬양하라("너희는 너희 중에 가장 가난한 자를 대할 적에 나를 영접하듯이 하라"고 하셨던, 그분의 말씀처럼). 영혼이 신과 정렬되었음을 아는 가장 강력한 표증이야말로 감동이기 때문이다. 신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진리를 이해할 수 있고, 진리에 감탄할 수 있고, 진리를 소유할 수는 있고, 진리로 인하여 온 세상을 재단할 수는 있으되, 진리 그 자체로 인하여 깊이 감동받을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러나 신을 사랑하는 자는, 마침내 "너의 지혜와 깨달음마저도 나를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다 버리라"고 하셨음에, 내가 두렵고 또 무서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 내가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당신만을 사랑하는 바보가 되겠나이다!"하고 기쁘게 순종할 수 있는 법이다. 그리하여 그는 마침내 "소유"의 범주를 넘어선다. 그는 말씀을 알지 못한다. 그저 말씀 안에 거할 뿐이다. 그는 그리스도를 알지 못한다. 그저 그리스도 안에 영원히 살 뿐이다. 그는 성령을 알지 못한다. 그저 성령께서 그를 통하여 임재하시고 역사하시는 것에 기뻐하며 함께할 뿐이다. 그는 마침내 성부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 그는 성령의 인도 하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살아서 아버지와 영원히 하나되어 살 뿐이다. 나는 이 모든 것들이 단 하나의 절대적인 "영과 영혼의 진동수"로 말미암는다고 믿는다 :


감동(感動).




1. 주관과 객관, 안과 밖의 망상적 개념을 넘어서

절대 다수의 사람들은 "내면"이라는 것 자체를 오해한다. 대단히 심각하게 오해한다. 이것은 주관과 객관으로 나뉘어지며, 안과 밖으로 나뉘어지며,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으로 나뉘어진 채로, 외부세계를 마주보고 있는 그 반대쪽의 "안"이 아니다. 그건 마음(Mind)이지, 내면이 아니다. 그건 여전히 에고(ego)라는 죄성을 중심으로 한 망상적 실체 안에 갇혀 있는 의식과 무의식의 장난질일 뿐이다. 내면은 애초에 안과 밖을 "넘어서" 있다. 주관과 객관 양자보다 "더 위에" 있다. 왼쪽에는 주관이 있고, 오른쪽에는 객관이 있으되, 내면은 그 위의 꼭지점이 되어 "신성한 삼각형"을 형성한다. 중용은 용기와 만용의 중간 지점이 아니다. 양자 "위"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쇼가 이 카드의 이름을 "내면의 목소리(Inner Voice)"라고 하였으되, 사실 이것은 대단히 오해의 여지가 큰 말이다. 이리 설명하면, 절대 다수의 사람들은 이 내면이 그 내면인 줄 착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영혼의 목소리"라고 하는 게 훨씬 나았을 것이다. 영혼은 사람들의 망상적 의식 구조 안에서의 마음, 즉 "안"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할 것이기 때문이다. 안과 밖에 대해서, 차라리 나는 다음의 새로운 기준을 세울 것을 권장한다. 오쇼가 "안으로 들어가라", "안"이라고 할 적에, 그것은 "체험, 느낌, 직관, 몰입, 순수, 침묵, 고요, 현존......"의 상태이며, 오쇼가 "밖"이라고 할 적에, 그것은 "생각, 사고, 마음, 분별, 논리, 이성, 합리성, 분석, 지식, 관념......"의 상태인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생각 속에 빠져 있을 때, 나의 의식은 "밖"에 있는 것이요, 내가 현존 가운데에 깊이 몰입할 때는 "안"에 있는 것이다. 물론, 이 자체가 "내면세계"는 아니다. 내면세계로 향하는 올바른 방향을 확인하는 "나침반 보는 법"을 알려준 것뿐이다. 그러므로 항상 나의 정신과 의식의 상태를 점검하라. 늘 깨어 있으라. 의식이 또 다시 생각과 분별 속에 빠져드는 것을 경계하고, 언제나 깨어 있으며, 언제나 몰입하고, 언제나 깊이 체험하며, 언제나 현존하라. 이때, 현존이라는 단어를 오해하지 말라. 그것은 과거 현재 미래의 선형적 시간 구조 속에서의 중간 지점을 말하는 것이 아니요, 과거와 미래보다 "위"에 있는 것이다. 오직 나의 의식이 에고와 마음의 작동에서 벗어나 깊고 순수하게 몰입할 적에, 그것이 현존의 상태이며, 또한 그 현존 가운데에서만 "내면세계"가 열라며, 그 내면세계에서만 하나님의 임재와 역사가 이루어지니, 결국에는 현존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요, 현존을 통하여 하나님을 영접하고자 함이 궁극적인 목적임을 알아야 한다. 모든 공부의 본질은 결국 "초점을 정확히 잡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대단히 설명하기 힘든 것이다. 차라리 이렇게 이야기하면 될까. 마음과 에고의 세계관은 "수평적, 분리적"이다. 주관이라는 영역과 객관이라는 영역이 세계라는 수평적 공간 안에 펼쳐져 있으며, 이것이 국경분계선과 같이 갈라서 있고, 양 진영의 군인들이 총칼로 무장한 채로 서로를 대치하는 그 상태이다. 그러나 내면세계, 곧 "존재 자체"는 "수직적, 다층적 차원"이며, 온 세계가 다 하나이되, 그 하나인 차원이 여러 개로 중첩되며 수직선을 형성하되, 수직선의 가장 높은 곳에는 아버지께서 계시고, 가장 낮은 지점에는 "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온 세상이 다 아버지요, 온 천지만물이 다 "나"인 것이다. 내면세계는, 바로 이러한 "위에서와 같이 아래에서도"를 진정으로 체득한 상태에서, 자아와 타자와 세계를 하나로써 깊이 들여다볼 적에, 육의 차원에서의 존재와 현상과 사건들 그 자체는 여전히 감각되어지되, 그 육의 감각들을 통하여 육 너머의 순수하고 높은 "보이지 않는 수직선의 상위 차원"들을 영의 눈으로 보고 듣고 느끼는 것, 바로 이것이 내면세계인 것이다. 말로써 설명하니 또 이상한 헛소리가 되어버린다. 그러나 이것은 유감스럽게도 어찌할 길이 없다. 이 자체가 결국, 언어의 한계다. 언어를 버려라. 언어를 버리고, 무장해제를 하고, "신을 벗고"(출3:5), 그분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그분 안에 들어서는 마음으로, 한 걸음을 내딛어라.


2. 나귀 타고 입성(入城)하신 왕

이것은 자아와 마음이라는 낮고 열등한 차원이 죽고, 내면세계(영과 영혼과 순수의식)라는 높고 순수한 차원이 어떻게 열리는지에 대한, 가장 오래된 관상적 원형일 것이다. 나의 내면은 신께서 거하시는 성전(聖殿)이요, "나라"이되, 그 성(城)은 오랫동안 가짜 주(主)인 "나"(ego)에 의하여 다스려졌다. 그러나 그 에고라는 왕은 본래부터 정당한 계승자가 아니었기에, 주권을 제대로 쥘 자격이 없었고, 자격이 없었으되, 곧 가짜 주인에 의하여 통치되었던 그 통치의 역사 속에서 왕국은 언제나 불안했고, 두려웠고, 공포스러웠고, 쓸쓸했고, 외로웠고, 고통스러웠고, 아팠고, 괴로웠다. 왕국에 단 한 시라도 평화로울 날이 없었고, 나라 안팎에 단 한 순간잉라도 기쁠 날이 없었다. 늘 우울했고, 먹구름이 잔뜩 꼈고, 살벌한 공포 정치가 이어졌다. 묻겠다. "나"라는 왕국의 권좌에 내가 주인 노릇하며 앉았던 지난 수십 년의 삶을 되돌아보건대, 그 삶에 자유가 있었는가? 그 삶에 평화가 있었는가? 그 삶에 기쁨이 있었는가? 그 삶에 "영광"이 있었는가...... 그리하여 어느 순간 가짜 왕은 그동안 너무도 당연하게 "나"가 나의 주인인 줄 알고 살아왔으나, 자신의 거짓 통치 하에 무너지고 또 무너진 왕국(나의 내면)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동안 나의 마음과 의식과 정신은 처참할 지경이었다. 눈 뜨고 도저히 못 봐줄 만큼. 그는 처음으로 너무도 큰 슬픔을 느꼈다. 도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한 것인가? 쥘 자격도 없는 주권을 쥐고서는, 무슨 짓을 벌여왔단 말인가...... 그때, 그는 마침내 성문 바깥에서 그토록 오랜 시간 그 문이 스스로 열리기만을 기다려오셨던, 왕 중의 왕(King of King), 성부 하나님의 모든 권세와 영광을 거느리신 참된 주(主), 정당한 계승자, 그리스도께서 계심을 본다. 이에 그가 왕의 심판을 너무도 두려워하면서도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심정으로 성문을 열고 나가서는 그 정당한 왕 앞에 엎드려 죽음을 청하니, 볼품없는 나귀 타고 오신 주께서 가짜의 손을 잡고 일으키시며, "참으로 잘했다, 참으로 애썼다, 이제 내가 왔으니 너는 내 안에 거하라, 내가 너를 사랑하며,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며, 왕의 첫 "칙령"을 선포하시는 것이다. 그때에, 그는 마침내 자기가 목숨보다도 더 중히 절박하게 손에 쥐고 있었던 그 소중한 "나"라는 주권을, 기꺼이 고귀하신 왕께 넘겨드리는 것이다. 그리하여 왕국의 가장 깊은 곳의 권좌에서 내가 물러나매, 그곳에 본래부터 앉으셔야 할 참된 주(主)께서 왕관을 쓰시고, 정당한 통치를 시작하시니, 마침내 내게 진실로 자유가 있고, 내게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평화가 있고, 언제나 그분과 함께하는 기쁨이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내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으니,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의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갈2:20), 마침내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나의 중심에 내가 있지 않고, 태양계의 중심에 자격 없는 돌덩이에 불과한 행성이 있지 아니하고, 그 중심에 본래 계셔야 할 고귀한 "태양"께서 중심을 잡으시니, 마침내 나의 우주 안의 모든 질서들이 회복되고, 나의 세계 안의 모든 평강과 희락들이 제 궤도를 되찾는 것이다.




명심하라, 내면의 목소리는 "마음의 작동" 따위가 아니다.


그것은 영의 진동이다.

그것은 영혼의 울림이다.


내면세계는 신께서 임재하시는 거룩한 땅이며, 오직 성소에서만 신을 만날 수 있다.

깨어나라. 마음이 주권을 쥐지 말고, 영혼께로, 신성께로 주권을 넘겨라.

그리하면, 온 세상이 다 "신성" 안에 있다는 것을 능히 보고 듣고 체험하게 될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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