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획자 이형식 May 31. 2024

책은 도끼다. 독자는 망치다

나의 망치가 되어주신 2형식 독자님들


책을 내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두 부류로 나뉜다.


내 책을 읽은 사람과 안 읽은 사람. 더 솔직하게는 내 책을 산 사람과 안 산 사람. 날마다 기도한다. 내 책을 읽으신(사신) 독자님들 오늘도 행복하시고 복 받으시라고. 나의 독자님들은 이 세상 최고의 지성이고 선인이다.


10년 전 「기획은 2형식이다」를 냈을 때의 기쁨과 감사를 잊을 수 없다. 떨리는 마음으로 인터넷에서 반응을 검색한다. 혹여 좋게 읽으셨다는 독자평이라도 발견한다치면 마음으로 큰절을 올렸다. 한분 한분 동그란 안경의 표지 인증샷이 늘어날 때마다 세상을 다 얻는 기분이었다.


2형식 독자님들의 인증샷


윤종신님과 2형식 독자님들의 피드


악평은 안 본다. 정신 건강에 해로우니까. 코드가 맞는 독자님들과 교감하고 소통하는 시간도 부족하다. 무엇보다 이 책으로 그룹 스터디를 하는 독자님들도 가끔 계시는데, 경의를 표한다. 역시, 책은 한권으로 돌려보는 물건이 아니다. 이 책을 매개로 기획에 대해 논의하고 토론하는 광경을 목도하면 기쁨과 감사를 넘어 감동과 보람을 느끼곤 한다.


그룹 스터디도  기획은 2형식이다


사실 내 책에 공감해주시는 2형식 독자님들은 귀한(?) 분들이다. 내 책은 대중적이지도, 친절하지도 않다. 대중적이지 않은 자기계발책을 좋아하는 독자들은 별로 없다. 우리나라에서 인기있는 자기계발책들은 독자의 편의(?)를 위해 내용을 친절하게 공식처럼 정리해서 독자들에게 떠먹여주는 식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나는 내 능력상, 성향상 그렇게 할 수 없다. 기획에 관한 내 소신 때문이기도 하다. 기획이란 ‘사고방식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공식처럼 제단된 방법론을 전수하는 방식은 옳지 않다고 믿기 때문이다. 대단한 신념은 아니지만 굳이 바꿀 필요도 없다.


그런데 기획에 관한 관점이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책을 내고 알게 되었다.


카프카는 말한다. 책은 우리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고. 내 책이 그분들에게 도끼는 아니어도 작은 면도칼이라도 되어 드린다면 더없이 행복할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내 책을 읽고 혹시라도 나를 만나고자 하는 독자님이 있다면 거절하지 않고 직접 만나뵙고 인사 드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분들을 만나면서 예상치 못한 흥미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되었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라는 말이 있다. 내가 독자님들과 만났던 경험으로 치환하면 ‘작가는 책을 만들고 독자는 작가를 만든다‘라는 말로 살짝 교정할 수 있다. 내가 만난 독자님들은 한마디로 ‘망치’였다. 한방 크게 맞고 한방 크게 배웠다.


이른바 내가 만난 멋진 망치 독자님들 중 특히 인상적이었던 세 분을 소개하려 한다.



1

첫 번째 독자님은 홈쇼핑 채널에서 일하시는 마케터였다. 이 분의 사연은 이렇다. 내 책을 읽고 뽐뿌를 받아 서랍 안에 묵혀 두던 기획안을 꺼내 무모하게 다음날 바로 사장님께 올려드렸다고 한다. 그런데 이게 어찌 어찌 한방에 통과가 되고 사회적 이슈가 좀 되더니 대통령 표창까지 받는 빅 프로젝트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일명 ‘아이스팩 수거 캠페인’. 쓸 땐 편리하지만 쓰고나면 처치 곤란한 아이스팩을 모아 자사(홈쇼핑)에 보내주시면 그 고객에게 적립금을 드리고 여기서 모인 아이스팩을 협력업체에 무상으로 전달하여 재사용하는 일종의 친환경 캠페인 프로젝트였다. 독자님은 이 성공적인 기획의 시발점이 내 책이었다며 너무 고마운 마음에 나를 꼭 만나야겠다고 결심하셨다고 했다.


이 분을 만나고 난 알 수 있었다. 그 기획의 성공은 내 책 때문이 아니라 독자님 본인 때문이라는 것을. 그는 시종일관 재잘재잘 자기 이야기를 했는데 그동안 성공했던 일, 실패했던 일, 일하며 느꼈던 어려웠던 점과 배웠던 점, 일하는 철학 등등 자기 일을 찐으로 사랑하고 주도적으로 일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심지어 본인의 회사를 너무 사랑한다고 말하는 희귀종(?)이었다. 망치를 한 대 제대로 맞았다. 그의 일상은 성장의 욕구와 열정으로 가득차 있었다. 일 뿐 아니라 삶에서도 매일 매순간 크고 작은 기획들을 실행하고 있었다. 기획자의 태도와 습관이 훈련을 통해 온몸에 배어있는 분이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며 많은 것을 반성하고 느끼고 배웠다. 궁극의 기획력은 실행력이라는 것을. 실패해도 긍정의 에너지로 다시 시도하는 태도야 말로 기획의 가장 중요한 덕목임을. 그 인연으로 지금도 서로 영감을 주고 받는 기획 동지로 지내고 있다.



2

두 번째 독자님은 모 대기업 대표님이셨는데, 어느날 페북 DM으로 불쑥 연락을 주셨다. 책을 좋게 읽었는데 혹시 강의를 해줄 수 있겠냐고. 그런데 처음부터 범상치 않았다. 일반적인 강의 요청이 아니었다. 보통은 저자가 말하고 청중은 듣는 ‘일방향식 강의’를 요청주시는데 반해, 이 분은 ‘쌍방향 토론식 강의’를 제안하셨다. 본인이 청중에게 내 책을 사전에 배포하여 읽게 한 후, 청중 각자가 본인의 현업 프로젝트에 직접 적용해 보고 강의 당일 저자에게 직접 피드백을 받고 토론하는 방식이었다. 이런 방식은 처음인데 매우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책을 사전에 수십권 구매ㆍ배포하는 방식이 너무나 훌륭(?)하셨고, 책에서 말하는 내용을 눈으로만 보는 게 아닌, 몸으로 체험해 보게 하는 시도가 무척 창의적으로 느껴졌다. 무엇보다 참여자들도 강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그분들과 살아있는 논의와 피드백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청중에게도, 강사에게도 유익한 방식, 내가 바랐던 이상적인 강의에 가까웠다. 처음부터 망치를 제대로 얻어 맞은 느낌이었다.


두 번째 망치는 강의 후 뒷풀이 술집에서 맞았다. 독자님이 말씀하시길, 사실 본인이 기획책을 쓸 계획이셨다고 했다. 집필을 준비하며 몇몇의 기획책들을 모니터링하던 중 우연히 내 책을 보게 되었고 기획책 쓰기를 그만두기로 하셨다고 한다. 본인이 평소 기획에 대해 하고 싶었던 말이 내 책에 다 들어가 있고, 그 이야기들을 이 책 보다 더 잘 쓸 수 없다고 판단하셨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미 너댓 권의 책을 내신 저자이셨다.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과찬에 대한 감사함과 민망함 때문이기도 했지만 대표님의 단단한 내공의 망치를 맞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말은 높은 자존감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잘 안다. 그리고 이어진 대화에서 이렇게 물어 보셨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이 뭔지 알아요?“, ”글쎄요, 어떤 부분이실까요?“ 진심 궁금했다. “기획력은 재능이 아니라 태도라는 말이요. 내가 후배들에게 진짜 하고 싶었던 얘기거든. 나라면 책 제목을 ‘기획은 태도다’로 지었을 것 같아요.” 뜻밖이었다. 큰 기업의 CEO라면 성과창출의 기획 메커니즘이나 문제의 본질을 보는 통찰력 함양 등의 내용이 좋았다고 꼽아주실 줄 알았는데 ‘기획은 태도다’라는 일을 대하는 자세와 접근에 대한 내용을 꼽아 주셨다. 물론 나도 당연히 기획의 태도나 자세를 너무나 중요하게 여겨 쓴 것이기도 했지만 같은 말도 최고경영자 독자님이 진심을 담아 전하시니 돌망치처럼 묵직하게 다가왔다. ‘사장의 시각’이 아닌 ‘리더의 시각’이랄까. 물론 지금 준비중인 「기획은 2형식이다」 개정판의 제목을 바꿀 생각은 없지만, 독자님을 통해 ‘기획은 태도다’라는 것이 내 책의 중요한 메시지 및 부제임을 알게 되었다. 나에게 망치를 두 번이나 내리치신 참 고마우신 독자님, 생각난 김에 오랜만에 연락 한번 드려야겠다.



3

인상적으로 기억하는 마지막 독자님은 한 30대 여성분이었다. 최근 읽은 책 중 가장 유익했던 책이라고 말해주시며 본인의 현업에 적용해 작은 성공도 이루었다고, 감사의 표시로 식사 한번 대접하고 싶다는 메일을 받았을 때도 인상적일 건 없었다. 그런데 약속 장소에 나가 통성명과 명함 교환을 하는 순간, 대뜸 망치가 내 머리를 내리쳤다. 솔직히 놀랐다. 독자님은 유흥업소를 운영하는 분이었다. 이른바 ‘마담’이라 불리는. 그 분은 내 책의 내용을 내 앞에서 가장 디테일하게 이야기한 독자님이었다. 그 분이 내 책을 읽고나서 직접 적용하고 응용한 이야기를 재잘재잘 말씀하시는데 솔직히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강한 충격으로 정신이 없었던 것 같다.


나의 독자가 마담이라서가 아니라 마담도 내 독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나에게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당연히 기획력은 마담에게도 필요한 것인데 나는 왜 그리 놀랐을까. 선입견이 있지 않았을까. 모든 것이 기획이고 모두가 기획자라고 떠들고 다니던 평소 나의 소신은 진실되었던 걸까. 부끄러워졌다. 기획은 한마디로 ‘문제-해결’이다. 문제가 있는 이 세상 사람 누구나 기획자다. 문제를 돌파해야 하는 사람이 마담이 되어선 안된다는 법은 없다. 아니, 업태상(?) 오히려 더욱 창의적인 기획이 필요할 수도 있다. 단골고객을 쟁취하기 위해 한번도 시도되지 않은 멤버십 프로그램을 기획할 수도 있고 파격적인 상황별 맞춤 메뉴 패키지, 크리에이티브한 고객 서비스를 고안할 수도 있을 것이다. 독자님은 나를 통해 문제의 본질을 바라보는 시각을 배웠다고 말씀하셨지만 나는 독자님을 통해 기획을 바라보는 내 시각에 본질적인 문제가 있음을 깨달았다. 나는 그 사건(?) 이후로 기획자에 대한 선입견이 없다. 기획의 범위도 함부로 재단하지 않는다.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기획이다. 부끄럽지만 나는 그 때 배웠다.






책을 낸다는 것은 내 생각과 메시지를 세상에 전하는 것이 아니었다. 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나의 2의 생각과 독자의 2의 생각이 만나 16배, 32배…128배 이상으로 함께 성장하는 광장을 만드는 것이었다.


위에서 소개한 세 분 외에도 나에게 성장의 망치가 되어주셨던 2형식 독자님들이 많다. 그 분들 덕분에 오늘도 이 순간에도 배우고 성장한다. 감사한 일이다.


글을 쓰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멋진 망치 독자님들과 지속적으로 교류하고 영감을 나눌 수 있는 커뮤니티의 광장을 만드는 것도 꽤 괜찮지 않을까? …라는 작은 생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