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의 75%는 문제 정의다
‘기획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수많은 정의와 다양한 관점이 있다.
나는 다음과 같이 정의하는 편이다.
기획이란
인간의 ‘문제의식’과 ‘해결본능’의
아날로그 사고작업
인간은 문제를 만나면 해결하려고 하는 ‘본능’이 있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고’라는 걸 한다.
결국, 기획의 본질은 인간 고유의 ‘문제해결 사고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기획은 P코드(Problem)와 S코드(Solution)의 ‘인간의 생각 코딩 작업’이기도 하다.
나는 ’플래닝코드(PlanningCode)’라고 부른다.
이 심플한 2개의 플래닝코드는 우리의 기획을 획기적으로 변화시켜줄 핵심 비밀코드다. 세상을 바꾸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었던 수많은 창의 기획자들은 공통적으로 플래닝코드를 활용했다. 다행히 플래닝코드는 오픈소스다. 그들의 전유물은 아니다. 누구든 이 비밀코드를 활용해 사고한다면 탁월한 기획자가 될 수 있다.
“비밀코드라고? 기획자라면 모르는 사람 있나?”
“기획은 문제해결이라고? 기본 아닌가?
라고 반문할 수 있다. 기본 맞다. 하지만 기본이 안된 기획자도 많다. 문제해결 코드는 누구나 알지만 아무나 활용하진 못하는 흥미로운 역설의 코드다.
사실,
내가 말하는 ‘문제해결’이란
’문제——해결‘이다.
‘문제해결’과 ‘문제—해결’은 다르다. 하이픈(-) 하나의 차이가 아니다. 하늘과 땅의 차이다.
‘문제해결’은 사실상 ‘(문제)해결’이다. ’해결‘에 방점이 있다. ‘문제’의 사고 과정이 휘발되고 ‘해결책’의 발상만 부각되는 절름발이 기획 패턴이다.
반면, ‘문제—해결’은 ‘문제‘와 ‘해결‘ 각각에 방점이 있다. ‘문제’와 ‘해결‘의 타당한 분리다. 문제정의의 과정과 해결방안의 사고 과정이 독립적으로 존재하여 기획적 사고 프로세싱의 균형을 이룬다.
우리는 일을 할 때, 본능적으로 문제의 사고과정(P코드)을 소흘히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일하는 과정에서 모든 관심과 신경은 해결책 발상(S코드)에 쏠려 있다.
흔한 회의실 풍경을 떠올려보자.
우리들의 회의는 리더의 이 말로 시작된다.
“자, 다 모였지? 그럼 각자 생각한 아이디어 까봐.”
한 사람씩 (주로 막내부터) 돌아가며 아이디어를 깐다.회의가 잘 되지 않는 회의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 다른 사람이 아이디어를 말할 때 잘 듣지 않는다. 다음 내 아이디어를 말할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타인의 생각은 관심없다. 내 아이디어가 옳다. 결국 각자 아이디어만 말하다 끝난다. 결론은 없다.
‘평행선 회의’라 불리는 이런 비생산적인 회의는
문제를 규정하지 않은 채 해결책부터 논했기 때문이다
구성원 간의 ‘문제 정의’의 공감이라는 과정이 없이
어떻게 옳은 ‘해결방안’이 도출될 수 있을까.
P의 주파수가 맞춰지지 않았는데,
S의 과정이 제대로 이루어질 리 만무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현장에서 기획이란 걸 할 때 ‘문제규정’ 보다 ‘해결책 제시’에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노력과 에너지를 투여한다. 문제규정(P코드)은 아예 하지 않거나 대충 하거나 잘못한다. 모든 문제는 거기서 벌어진다. ‘진단’이 잘못됐는데 ‘처방’이 제대로일 리 없다.
창의 기획의 힘은
S코드가 아닌 P코드에 있다.
이것이 누구나 알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창의기획의 비밀 원리다. 남다른 기획자와 평범한 기획자의 결정적 차이다.
축구 감독도 기획자다.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2002년 히딩크 감독이 대한민국 축구의 세계 4강 신화를 만든 비결은 ‘남다른 해결책’이 아닌 ‘남다른 문제 규정’이었다. 당시 축구 관계자와 전문가들이 생각한 한국 축구의 문제점은 ‘기술’이었다. 하지만 히딩크의 문제 규정은 달랐다. ‘체력‘이었다. 4강 신화의 P코드였다.
정부의 정책도 기획이다. 사회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세먼지 문제에 대한 정부의 대책은 ‘고등어를 굽지 말라’였다. 어린이집 폭행사건에 정부가 내놓은 답은 ‘CCTV 설치‘였다. 서울시는 저출생 대책 중의 하나로 ‘쪼이기 댄스’를 제안했다. 이런 황당한 대책들이 나온 까닭은 각 기획 과정에서 ’문제 규정‘의 과정을 간과한 채 ‘S코드(해결책 발상)‘에 치중한 결과다.
우리의 비즈니스 현장에서도 다르지 않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기획을 잘하는 진짜 일잘러들은 예상 외로 ’해결책‘에 별로 관심이 없다는 것을. ‘해결책‘ 보다 ‘문제 정의’를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란 것을.
강의에서 누군가 날카로운 질문을 했다.
“P코드와 S코드를 분리해야 하고, P코드가 S코드가 더 중요하다는 건 알겠어요. 그런데 P코드가 정량적으로 얼만큼 더 중요한가요? 즉, 실무를 할 때 P코드와 S코드에 각각 얼만큼 중요도를 배분해야 하는지 궁금해서요”
오, 너무 좋은 질문인데 현장에서 바로 답변하진 못했다. 그것까진 미처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충분히 가치있는 질문이라 시간을 들여 생각해 보았다.
일감, P코드의 지분은 50% 정도는 되는 듯 했다. ‘기획은 문제정의가 반(half)이다’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좀 더 구체적인 수치로 정의하고 싶었다. 미국의 16대 대통령 에이브라햄 링컨의 명언에서 힌트를 얻었다. 대통령이 되기 전 한 때 그의 직업은 목수였다.
“나에게 나무를 벨 시간이 8시간 주어진다면 6시간을 도끼의 날을 가는 데 사용하겠다.”
멋진 말이다. 역시 링컨은 고수다. 보통 사람들은 8시간 주어지면 8시간을 도끼로 나무를 찍는 데 사용할 텐데, 링컨은 그 반대로 생각한다.
P코드는 도끼고 S코드가 나무가 아닐까.
링컨의 명언을 플래닝코드적으로 각색해 보았다.
“나에게 기획을 할 시간이 8시간 주어진다면 6시간을 P코드를 정의하는 데 사용하겠다.”
8시간 중 6시간은 사분의 삼, 75%. 나는 링컨의 가르침대로, 기획에서 P코드(문제규정)에 시간과 에너지를 75% 투입하라고 말한다.
그 말은, 해결책에는 25%만 쓰라는 얘기다. 그 말은, 기획을 시작하고 75% 까지는 S코드로 생각하지 말라는 얘기다. 지난 20년여년 현장 경험의 실제 통계에 의거해봐도 이 수치는 놀랍게도 거의 일치한다.
잊지 말자.
P코드에 75% , S코드에 25% .
한 프로젝트에서 기획자의 노력과 시간의
투입 할당량이다.
그러나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지식도 까먹고 약속도 까먹고 결심도 까먹는다. 중요한 것들을 수시로 까먹는다. 잊지 않기 위해 수시로 반복된 자극이 필요하다. 그래서 인간은 ‘의식’이란 걸 기획한다. 교회에선 월간으로 떡과 포도주를 먹는 ‘성찬식’이란 의식을 한다. 예수가 우리를 위해 죽었다는 것을 까먹지 않기 위해서다. (떡과 포도주는 예수의 살과 피를 상징한다)
기획에도 성찬식이 필요하다. 장담컨대, 현장에서 정신없이 일하다 보면 ‘문제—해결’을 망각하고 관성적으로 ‘문제해결’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기획의 핵심코드인 P(문제)와 S(해결)의 분리를 틈날 때 마다 상기하는 의식이 필요하다.
나는 플래닝코드를 까먹지 않기 위해
‘기획의 성찬식’을 기획했다.
혹시 아래의 추억의 광고를 기억하는가. 던킨 도너츠의 ‘커피&도넛’ 광고다. 한 손에는 커피, 다른 한 손엔 도넛을 들었다. 커피도넛(커피맛 도넛)이 아니라 커피 그리고 도넛이다. 커피와 도넛을 분리했다.
‘문제’와 ‘해결’을 빗대는 재미있는 메타포.
‘A’와 ‘B’를 분리하는 직관적인 포즈.
기획의 성찬식으로 제격이다.
자, 양손을 들고 이렇게 읊조려 보자.
“커피—— 도넛, 문제 —— 해결”
왼손이 ‘문제’, 오른손이 ’해결‘이다.
안 까먹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느껴지지 않는가?
자, 다시 한번 양손을 들어,
“커피—— 도넛, 문제 —— 해결”
기획을 시작할 때,
기획이 잘 안 풀릴 때,
기획을 다 한 후 확인할 때에도
“커피—— 도넛, 문제 —— 해결”
아, 특히 회의하러 들어가기 직전에
이 기획의 성찬식을 거행하면 매우 효과적이다. 강추!!
단, 약간 이상한 사람으로 보일 수 있다
그래서 예전 회의실 이름도 ‘커피&도넛’이었다.
결국, 기획의 본질은
문제 ——해결이다.
인간의 망각은 생각보다 힘이 세고
인간의 관성은 생각만큼 질기다.
한달에 한번,
잊지 말자 기획의 성찬식.
“커피—— 도넛, 문제 —— 해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