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성목표’와 ‘과제목표’를 구분하라
기획에서 ‘목표’는 이른바 ‘Z-code‘로 불린다.
목표란, 일의 종착점(Z)에서 기획자가 그리고 싶은 마지막 이미지(End image)인 동시에, 기획자가 문제를 인식하고 정의하는 기획의 시작점(Zero)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기획의 Z코드로서의 ‘목표’는 크게 두 종류로 구분된다. ‘달성목표(goal)’와 ‘과제목표(objective)’가 그것인데, 이 두가지 목표를 구분하는 것이 기획의 첫번째 이슈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달성목표(goal)’란, 말 그대로 일의 최종 달성 수준과 기준을 의미한다. 골(goal)이란 용어 그대로 축구경기에서 골을 넣고 이기는 것이 최종목표(End Image)인 것과 같다.
반면에, 과제목표(objective)란 그 골(goal)을 달성하기 위해 수행해야 하는 구체적 과제 업무, 즉 이정표(milestone)를 말한다.
물론, 달성목표(goal)는 중요하다. 일을 함에 있어서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할 최종 지점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실무다. 현장에서 실무자들을 움직이려면 일의 목표가 구체적이어야 한다. 인간은 구체적인 목표가 주어질 때 능동적으로 움직인다. 달성목표는 상대적으로 구체적이지 못하다. 실무자를 움직이는 건 달성목표가 아닌 과제목표다. “기업의 목표는 이윤추구다.”라는 사장님 말씀은 너무 맞는 말이라서 틀린 말이다. “우리 부서의 이번 분기 목표는 전년 동기 대비 20% 매출 신장이야. 각자 신박한 기획안들 제출해봐!”라는 업무 지시는 어떠한 영감도, 아무런 동기부여도 주지 못한다. 실제 일을 수행하는 이들에게 달성목표만 강조하는 것은 하나마나한 이야기만 지루하게 늘어놓는 꼴이 된다. 과제목표가 아닌 달성목표 하에 기획을 하게 되면 뇌없는 전략이 나오는 이유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농구계 전설로 전해오는 모 감독의 유명한 무뇌 전략이 있다.
“자자, 막히면 패스하고 뚫리면 슛해.”
감독이라면 다음과 같이 기획할 줄 알아야 한다.
농구가 아닌 축구경기로 예를 들어 보자. 두가지 목표의 차이를 알 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ㆍ 달성목표(goal) - 더비전에서의 무실점 승리
ㆍ 과제목표(objective) - 미드필드 싸움에서의 승
ㆍ 기획(strategy) - 미드필더를 4명 배치해 수적 우위 점유
일반적으로 고객이나 상사가 주는 과제는 구체성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달성목표(goal)자체를 과제목표(objective)로 설정해서 주는 경우도 많고, 설사 감사하게도 달성목표가 아닌 과제목표를 준다 해도 선명하지 않고 두루뭉술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들을 탓하진 말자. 첫째, 그것이 현실이고, 둘째, 그 현실은 앞으로도 바뀌기가 힘들고, 셋째, 구체적인 과제목표를 재설정하는 것도 과제를 수행해야 하는 실무 기획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달성목표(goal)’란,
일의 최종 달성 수준과 기준을
수치로 명시한 목표
실무 기획자는 상대방의 과제 목표를 구체적으로 리프레이밍해야 한다. 유능한 기획자와 무능한 기획자를 판별하는 결정적 지점이다. 리프레이밍한다는 자체가 전략적인 개념이 들어간 목표라고 할 수 있다. 즉 진정한 Objective는 그 일을 수행하는 기획자의 Perspective가 들어있는 ‘전략 목표’인 것이다.
과제목표(Objective)란,
실무 기획자를 주체적으로 움직일 수 있게
리프레이밍된 제한적 목표
달성목표와 달리 과제목표란 구체적 목표인 동시에 제한적 목표다. ‘구체적’이란 것은 곧 ‘제한적’이라는 의미와 상통한다. 어떤 사람들은 제한성을 부정적으로 말하기도 한다. 한계를 두고 제한을 하면 인간의 창의성에 해가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계와 제한이 오히려 인간이 창의성을 발휘하는 데 유용한 울타리가 되기도 한다. 인간의 뇌가 가진 재미있는 성질 때문이다.
A : 하얀 것을 한번 말해보세요.
B. 음… 눈... 밀가루… 또 뭐가 있지?
A. 하하 괜찮아요. 범위가 너무 넓기 때문에 퍼뜩 떠오르지 않는 거죠. 이번엔 ‘냉장고 안에 있는 하얀 걸’ 한번 얘기해 보세요.
B : 음... 백김치, 달걀, 치즈, 무, 참외, 우유, 두부…
A : 다양하죠? 냉장고 안이라는 한계를 설정했을 때 더 빠르게 여러 가지가 떠오르는 이유는 뭘까요? 두뇌는 제한을 설정해둘 때 좀 더 집중적으로 가동되는 출력장치기 때문이에요. '경계선'이라고 하는 것이 오히려 거기서부터 시작할 수 있는 '출발선'이 되어주는 거죠.
B : 그러네요. 우리가 무한정의 가능성이 주어진다고 해서 반드시 창의적이 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 <힘빼기의 기술> 김하나 작가 인터뷰 중
예산이든 시간이든 콘텐츠든 범위가 정해져 있을 때, 거기에서부터 아이디어가 생겨나기도 한다.
토스가 기획한 유튜브 콘텐츠, <B주류 경제학>은 ‘제무제표’와 ‘덕후’를 절묘하게 믹스하여 색다른 맛을 선보인 크리에이티브한 기획이다. 어떻게 이러한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었냐는 물음에 콘텐츠를 기획한 김창선 PD는 ‘토스 = 숫자, 제무제표’라는 제약조건이 오히려 새로운 기획을 할 수 있었던 출발점이 되었다고 말했다.
기획자는 목표를 구체화하고 제한하고 좁히는 사람이다. 달성목표(goal)를 과제목표(objective)로 리프레이밍할 수 있는 사람이다.
즉, 복잡한 다차원의 방정식을 심플한 1차 방정식으로 만들어 목표로 제시하는 것이 기획자의 일이다.
일상에서 작은 훈련을 해 보자.
당신은 친구들과 내기 부루마불 게임을 한다. 부루마불의 목표는 ’이기는 것(goal)’이 아니라 ‘서울을 사는 것(objective)‘이다. 따라서 팀 리더인 당신이 팀원들에게 찐 동기부여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우리의 목표는 이기는거야! 화이팅!”이라는 하나마나한 말 보다는 “서울을 사는 게 목표야! 가즈아!”라고 구체적으로 말해야 한다. 팀원들은 당신을 따를 것이다.
그 안에는 ‘부루마불 게임 = 누가 서울을 사느냐의 문제’라고 재해석한 당신의 통찰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