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빛나던 추억의 계절
나는 어린 시절, 세상에 두려움이란 게 없었습니다.
동네 친구는 많지 않았지만, 몇 안 되는 친구들과 골목길을 달리며 숨바꼭질을 하곤 했습니다.
해가 저물어도 집에 들어가기 싫어, 엄마의 부름 소리를 애써 못 들은 척하며 더 오래 놀고 싶어 했습니다.
봄이면 집 앞의 큰 나무에 연둣빛 새순이 돋았습니다.
나는 그 나무 아래에서 친구나 동생들과 함께 모여 놀곤 했습니다.
큰 나무는 언제나 우리의 약속 장소였고, 작은 놀이터이자 쉼터였습니다.
여름이면 달궈진 시멘트 바닥 위를 맨발로 달리며 고무줄놀이를 했습니다.
발바닥이 뜨겁게 데어도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그 고통을 금세 잊게 만들었습니다.
과수원 사이를 달릴 때면 달콤한 과일 향이 코끝을 간질였고, 바람에 실린 흙냄새는 우리를 더 멀리 달려가게 했습니다.
가을이 오면 하늘은 더욱 높아 보였습니다.
큰 나무 사이로 보이는 파란 하늘은 끝없이 깊었고,
나는 그 아래에서 친구와 동생들과 바람을 맞으며 세상이 얼마나 넓고 자유로운지 느꼈습니다.
겨울이 오면 놀이터는 또 다른 무대가 되었습니다.
입김이 하얗게 피어오르는 추운 날에도 우리는 눈사람을 만들고, 눈싸움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작은 눈덩이가 친구나 동생의 어깨 위로 튕겨 오르면, 웃음소리는 추위를 단숨에 몰아냈습니다.
우리 집은 언제나 북적거렸습니다.
부엌에서는 김치찌개의 냄새가 퍼지고, 거실에는 TV 소리와 동생들의 웃음이 뒤섞였습니다.
저녁 무렵이면 누군가는 밥상을 차리고, 누군가는 장난을 치다 엄마의 눈치를 살폈습니다.
그 소소한 움직임들이 모여 집안 가득 따뜻한 온기를 만들었습니다.
그 한가운데엔 언제나 엄마가 있었습니다.
스무 살 갓 넘은 나이에 일찍 어른이 되어야 했던 엄마는 힘든 날도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앞에서만큼은 늘 웃음을 지으려 애썼습니다.
어린 마음에도 나는 알았습니다.
그 웃음이 집안의 공기를 밝히고, 내 어린 날들을 지켜주는 등불 같았다는 것을.
아침이면 누군가의 부름에 눈을 뜨고, 저녁이면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잠들었습니다.
집안 구석구석에는 사랑과 작은 규칙들이 스며 있었고, 나는 그 속에서 안전함을 느끼며 세상을 배우는 법을 조금씩 익혀 갔습니다.
햇살에 달궈진 시멘트 바닥, 바람에 실려 오는 흙냄새, 손끝에 스치는 나뭇잎의 촉감까지
모든 것은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어졌습니다.
작은 모험을 끝내면 집으로 돌아와 숨을 고르고, 하루를 되새기며 마음속에 작은 기록을 남겼습니다.
그 모든 날들은 내게 세상을 알아가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때, 나는 믿었습니다.
세상은 언제까지나 밝고 안전할 거라고.
그리고 내 마음 한편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불꽃이 살아 있었습니다.
그 불꽃이 나를 어디까지 이끌어 갈지, 나는 알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평범하고도 작은 행복들이 내 하루를 채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열두 살 봄, 내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을 사건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예고 없이 찾아와서, 내 시간을 멈추게 만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