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모처럼 작은 딸과 편입에 대해 얘기하다, 벌써 10년이 지난 기억에 혼자 큭하고 웃어버렸다.
어쩌다 내기까지 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이미 코를 자극하는 간장과 양념으로 단장을 마친 치킨을 앞에 두고 어느 팀(부모팀 대 딸내미 팀)이 먹게 될지 긴장모드에 들어갔다.
며칠 전, TV예능프로를 보는데 출연자가 아이의 성적표를 보며 “라테는 말이야 1등을 밥 먹듯이 하는 바람에, 오죽했으면 엄마가 밥 대신 간식만 주셨다고, 엣헴!”라며 진실을 왜곡시킨 협박을 하자 출연자의 자녀들이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고 출연자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못 믿겠으면 말고'라는 표정으로 웃기만 했다.그때 같이 TV를 보던 남편과 나를 향해 막 고등학생이 된 큰 딸이 대부분의 부모님은 저렇게 말을 하지만 사실은 본인들도 간절히 바라기만 했던 꿈이었을 거라 얘기하며 아니면 증명을 해 보이시라, 감히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때까지 가만히 눈치만 보던 초등학교 5학년 작은 딸은 아빠에게, 사실을 얘기한 팀이 먹을 수 있는 치킨을 요청하고야 말았다. 그것도 한 마리 가격으로 두 마리를 준다는 것을 양념반 간장반으로 두 마리씩이나...
"아빠 고등학교 때 성적이 장난 아니었는데 딸들 개안 캤나?"라며 남편은 나를 향해 잘 되지도 않는 양눈 윙크를 마구 보냈다. 급기야 큰 딸은 결과확인을 위한 사실증명을 요구했고 남편은 이 핑계 저 핑계 궁색한 핑계를 대고 화제를 돌리느라 진땀을 흘리기에 이르렀다. 당연히 남편의 고등학교 성적은 뛰어났을 테다. 지금의 특성화고등학교인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그 학교는 먼 곳에서도 많은 학생들이 지원할 만큼 인기가 높고 입학하기가 까다로웠기 때문이다. 단지 눈앞에 놓인 치킨 두 마리가 식기 전 증명할 방법이 문제였다. 그때, 얼마 전 방송통신대학 입학을 위해 발급받은 나의 고등학교 생활기록부가 떠올랐다.
"팩스로 받은 것도 인정해 주나?"
어느 정도 예상했다는 듯 큰 딸은 팩스용지로 출력된 서류를 구석구석 뚫을 듯 쳐다보고는 “이거 코팅해도 되지?”했고 막내이자 작은 딸은 귀속말로 큰 딸에게 심각하게 무슨 말을 속닥거리더니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녀들은 더 이상 입으로 얘기하지 않았고 눈으로 짧은 얘기를 나누더니 이내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 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딸들에게소리쳤다.
치킨 같이 먹자아~~~ 아빠랑 엄마만 먹기에 양이 많아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던 곳이 있었다. 인문계 고등학교로 진학해서 사범대학을 꿈꾸던 철부지 여중생이 있었다. 대학은커녕 인문계 고등학교 진학조차 사치였음을 깨닫게 해 주었던 열여섯, 그 아팠던 계절이 어느새 두 딸과 내 앞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있었다.
두 딸에게 공부하라고, 공부해야 한다고 말한 기억이 거의 없다. 큰 딸은 어릴 때부터 뭐든 혼자서도 잘하고 너무 잘 자라주어서 가끔은 날 아프게 했다. 어린아이가 아이처럼 자라지 않고 어른의 마음으로 커가는 모습이 그저 대견하고 기특하다고만 생각했다. 그 어리고 작은 가슴에 워킹맘으로 동분서주하는 엄마를 배려하는 커다란 마음이 깊게 자리 잡고 있었음은 뒤늦게 알았다.속으로 숨겨놓기만 하던 내 버릇을 큰 딸은 고스란히 물려받으며 자라온 것이다. 작은 딸은 뒤늦게(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야, 본인 말씀왈, 정말 원 없이 학창 시절을 즐겨본 후라서) 공부에 흥미를 보이고 관심을 둬서 날 설레게 했다. 그날 두 딸이 눈으로 나눈 대화내용은 아직도 모른다. 그날 이후 큰 딸은 원하는 대학은 아니어도 원하는 학과를 6년 만에 졸업을 했고 작은 딸은 원하는 학과는 아니어도 원하는 대학에 신나게 다니고 있다.
열여섯, 그 아팠던 계절 이야기는 본 메거진 첫 장, '잃어버린 소망' 편에 자리하고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