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검진에서 폭탄선언을 받고 난 이후 며칠 동안 정신이 몸을 벗어나있었다. 가슴으로는 오진이기를 기도하고 또 기도하면서 정확한 진단을 받기 위해 수소문 끝에 서울의 대형병원을 알아보고, 너무 늦은 검진일을 하루라도 당겨보기 위해 지인들, 특히 연세가 있는 고객들에게 소문 아닌 소문을 냈다. 고객의 선배분의 지인이 원무과에 근무하는 덕에 검사일정을 조금은 앞당길 수 있었고 직장에도 병가가 아닌 남은 휴가를 쓰기로 했다. 오진이면 출근할 생각이었고, 당연히 오진일 거라 생각했다.
조직검사를 하기에는 위치가 나쁘다고 했다. 심장과 너무 가까워 잘못하면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다고 했다. 수술하면서 조직검사를 해봐야 될 것 같다는, 영상을 보면 암일 확률이 99%라고도 했다. 1%의 희망은 왜 남겨놓는 것인지.. 수술날짜를 잡아주겠다 했다. 얼떨결에 질문 한번 못해보고 모든 걸 받아들여야 했다.
문제는 직장이었다.
'지점장'이라는 조직의 자리를 공석으로 둘 수 없었다.(당연히 그런 줄 알았다. 나중에 안 사실은, 병가 기간 동안 공석도 가능하더라는 거다. 동료지점장이 공석으로 비워둔 자리에 복귀해서 근무만 잘하더라..)
서둘러 본부장을 찾아가 일련의 상황을 보고 했고, 별 일 아닐 거라며 검사 잘 받고 오라고 했다.
보고를 하고 이틀이 지나 인사명령이 있었다. 새로운 지점장이 내가 있는, 정신은 제자리가 아니었지만 몸은 제자리에 있는 내 자리로 발령이 난 것이다. 휴가기간이 끝나고, 결과를 기다려 주리라 예상했던 나는 어리석고 조직의 생리에 대해 너무 모르는 바보천치였다. 정신없는 내가 정신없이 내뱉은 말을 본부장은 추측도 곁들여 상세히 보고를 했던 것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고? 뭐가 어떻게 된 거고?" 대도시에 근무하는 선배가 놀란 목소리로 전화를 해왔다.
짧은 동안 있었던 긴 이야기를 짧게 들려주었다.
자세한 얘기는 만나서 하자며 다음 날 내가 있는 곳으로 오겠노라 했다. 관용차를 타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을 테니 내가 가겠다 했다.
차 가지러 왔는데 언제쯤 갈까요?
다음 날, 점심시간에 맞춰 출발한 차가 도착지 톨게이트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무렵 지점의 총무담당 직원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서울에서 관용차를 회수하러 직원이 왔다는 것이다. 사전에 전화 한 통, 메일한번 없이 바로 쳐들어온 것이다. 두세 시간 양해를 구해보라고 말하고 목적지로 향하는 순간, 차를 회수하러 왔다는 직원의 전화가 온 것이다.
"외부에 나와 있는데 시간이 좀 걸려요. 두 시간 후에 지점으로 오시면 안 될까요?"
난색을 표하는 직원의 말투에, 바로 가겠다 하고 전화를 끊었다. 선배에게는 지점에 급한 일이 생겨 복귀해야 하니 다음에 연락드리겠노라 전화를 했다. 그 사이 차는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돌아가는 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갑자기 앞이 보이지 않았다. 봇물이 터진 것처럼 눈물이 흘렀고 수술도 하지 않은 가슴이 송곳으로 찔린 듯 아파왔다.
차를 보내고 내 자리를 둘러보았다. 정리하지 못한 책이며 서류들이 이곳저곳에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서둘러 짐을 정리하고, 이미 떠나야 하는 사람임을 안다는 듯 어색하게 앉거나 엉거주춤하게 인사하는 직원들의 눈빛과 마음은 미처 정리하지도 못한 채 허우적대며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늘 마음이 쓰이던 청소담당여사님과 로비매니저(청원경찰)가 끝까지 따라 나오며 눈시울을 붉혔다.
" 제 차로 집까지 모셔다 드릴게요." 한 해 후배인 ○부지점장이 뒤늦게 따라 나왔지만,이 모든 상황을 듣고서도 미리 헤아리지 않은 후배가 원망스러운 나는,택시를 호출해 놓았음을 핑계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잠시 후 도착한 택시에 서류박스 하나를 구겨 넣으며 난, 뒷좌석에 까무러치듯 무너져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