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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는 사람 가탁이 Jan 18. 2023

첫 경험을 하다 -휴직

경험으로 전하는, 직장에서 쉬어가는 이야기

○월 ○일자로 출근하시는 거지요?

요양병원 생활이 3개월쯤 지날 무렵 인사담당 부서에서 전화가 왔다. 이건 무슨 말인가? 아직 밤마다 뒤척이고 수술후유증으로 숨이 차오르는데, 네가 내 몸 상태를 안다고?

"제가 지금 맹장수술을 하고 요양 중입니까? 암 수술을 했다고요."

벽에 대고 얘기하는 듯, 같은 말만 되풀이하는 직원에게 소리 질렀다.

"인사부장님 연락처 알려 주세요. 사규(사내규정)에 암 수술하고서도 3개월 만에 복귀해야 되는 것인지 확인해 보게"

잠시 말하기를 멈춘 직원은 조용했다.

숨 고르기를 하고 나서 달래듯 물었다. 말로 천냥 빚은 못 갚을지언정 휴직 몇 개월 연장은 되지 않을까 싶었다.

"아직 치료 중이기도 한데 관련해서 연장시킬 수 있나요?"

그제야 약간 볼멘소리로,

"알아보고 전화하겠습니다" 했다.

말투에서 어쩌면 상사가 되었을지도 모를 연장자에 대한 배려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 존댓말은 무슨..

'그래 인사담당 부서에 있다 이거지 그 부서는 말단 직원도 영업점 수장인 관리자들 대하기를 자기보다 아래직원 대하듯이 한다더니..'

심장이 쿵쾅대기 시작했다.

본 병원 진단서와 의사 선생님 소견서, 향후 치료계획서 보내주고, 보내준 서류 확인 후, 3개월 연장됩니다.

이건 또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소리란 말인가!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소리 아닌가..

"본 병원 진단서는 병가 신청 시 제출한 서류가 유효기한이 없을 테니 참고하시면 될 테고, 의사 선생님은 절대 소견서 적어주지 않고(수술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한다고 생각하는지 진단서 적을 때 3개월 정도의 요양 기간을 적어달라 했음에도 딱 잘라 거부했다. 마치 암이 외과 수술의 하나인 것처럼..) 굳이 구색을 갖춰야 한다면 여기 요양병원 담당의사 소견서랑 치료계획서 보낼 테니 윗선에 보고해 보시고 안된다 하시면 다시 연락해 주세요" 

아프다는 것, 꿈에서도 짐작 못했던 아픔 때문에 직장에서 강제적인 쉬어감을 부여받았다는 것, 느낌조차 없는 약점 때문에 높임말까지 써가며 서글픔 반 노여움 반으로 전화를 끊고 나서는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억지가 아닌 억척스러운 휴직 연장이 조직에 미운털이 될 줄은 꿈에도 모른 채..(비슷한 상황을 두 번이나 겪고 9개월 정도의 휴직이 가능했다.)


희한하게 그날 고객으로 알고 지내던 국내 굴지 대기업 노조정책국장을 담당하는 분이 안부전화를 해왔다.

"소식 듣고 전화드렸습니다. 이게 무슨.. 저도 많이 놀랐지만.. 괜찮으신 거죠? 늘 너무 건강해 보이셨는데.."

짧게 이런저런 얘기를 마칠 무렵,

"관리 잘하시고 건강해지시면 출근하시는 거지요?"

당연하다는 듯 묻는 말에

"수일 내로 출근해야 될 수도 있습니다." 대답했다.

"네에? 암이 무슨 외과 수술도 아니고 무슨 그런 경우가.. 제가 그 회사 노조위원장, 아니 금. 노 위원장을 잘 아는데 얘기해 볼까요?"

"하이고 아닙니다. 얘기해도 제가 하겠습니다. 잘못된 부분이 있어도 제가 바로잡아 보겠습니다."


아무리 얘기해도 달라지는 부분이 없었다. 갈수록 암발병률이 높아지는데 언제 규정지어진 것인지도 모르는 관련 복지혜택(?)은 전혀 바꿀 기미가 없었다. 오죽하면

"가족 중에 암환자가 있어도 똑같이 얘기할 겁니까?"라며 울부짖듯 항의해보기도 했다.


아픈 직원에 대한 처우가 두 대기업 사규는 정반대의 입장이었다.

한 곳은, 건강함(건강하게 근무할 수 있는 상태임)을 확인받는 소견서나 진단서가 필요하고, 다른 한 곳은 건강하지 않음(더 치료가 필요할 만큼)을 확인받는 소견서나 진단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볼 때마다 허리를 제대로 펴지도 못하고 파리한 얼굴빛을 지닌 채, 눈은 산 허리 어드매쯤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때의 그는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미래와 가족들, 특히 너무 어린 아이의 미래가 흐린 날 산 허리에 걸쳐진 구름빛을 닮아버릴까 미리 아파하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30대 중반이 채 안돼 보이는 얼굴이었다.

갓난아기가 한 명 있다 했고, 국내 대기업 서열 1위 기업에 다닌다고 했다. 위암 초기 진단을 받고 치료 후 3개월 만에 복직을 했다고 했다. 과장 승진이 눈에 보일 무렵이라 했다.

그 후 1년 만에 여러 곳에 전이가 되었고 결국 내가 있던 암 전문 요양병원까지 오게 되었다 했다.

본인이 아닌 어머니에게서 전해 들은 말이었다. 거의 매일 병원을 찾아오시는 게 궁금해 관계(?)를 여쭤보니 속앓이로 묻어두었던 얘기를 내놓아주셨다. 억울하신 듯 울먹이시며..

그 마음이, 눈앞에 승진을 앞두고 갓난아기를 둔 가장이 어떤 생각을 하고 복직을 했을지 상상이 되었다. 그런 그에게 암은 그저 외과 수술의 하나라고, 더군다나 초기라고 하니 수술만으로 완치되었다고 스스로 결론을 내리고 서둘러 복직을 했으리라.. 아니면 회사 사규에 병명과 상관없이 병가기간을 정해놓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입원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부터 식사 시간마다 물도 넘기지 못하더니 급기야 병원 어느 곳에서도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호스피스병동으로 갔음을 알게 된 며칠 후, 그의 사망 소식이 들려왔다.



혹자는 대기업에 재직한 사람들의 배부른 넋두리라 할지도 모르겠지만 많은 대기업 직원들은


매달 받는 급여의 크기가 딱 그만큼의 목숨 값이다.

최소한,

나는 그랬다..


비가 막 멈춘 인공호수와 인공섬

#휴직#목숨 값#미운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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