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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는 사람 가탁이 Jan 26. 2023

알 수 없지만 알 것 같은 이유

몸도 마음도 말랑하지 못했던, 나의 이야기

숨을 쉴 수 없었다.


직장에서,

집에서,

친정엄마까지..

무엇하나 제대로 숨을 쉴 수 없게 만들었다.


그래서 내가 아팠던 거구나..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해서, 제대로 말하고 소리치지 못해서 속이 썩어가고 있었구나..


금융기관은 생각보다 더 보수적인 집단이다. 아직도 승진 등 성별에 대한 차별이 곳곳에 숨어있다. 담당하는 업무도 남성과 여성의 갈길은 거의 정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출발선은 비슷한 위치에 놓여 있었으나 가다 보면 어느새 좁힐 수 없을 만큼 벌어져 버리는 것이다.

'전문성'을 볼모로 한쪽 업무(수신업무-주로 예. 적금 등 개인업무)만 오랜 세월 집중하다 보니 전체를 볼 수가 없었다.(지점장이 되고 나서는 괴리감이 엄청났다.)

책임감이 커진 만큼 스트레스도 몸집을 키워나갔다. 굳이 모든 업무를 상세하게 알아야 되는 게 아니었음에도, 한눈에 파악이 되지 않는 부분들은 조금씩 내 목을 조여왔다.

무엇보다 나이가 연장자인 팀장은 '여성지점장'인 나를 알게 모르게 무시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해 왔던 것처럼 한 부분(수신-예금 등)을 책임지면 나머지는 본인이 알아서 하겠다고까지 했다. 선배 대접보다 교통정리가 더 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짚을 건 짚고 가야지..


책임자회의에서 은근히 무시당한 어느 날,

"○팀장님은 저랑 차 한잔 하시고, 다른 팀장들은 나가보시죠" 약간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문 닫고 오시죠"

"무슨 일 있습니까? 오늘 안색도 나쁘고.."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파악한 건지 시선을 탁자 위로 옮기며 ○팀장이 물었다.

" 우리 지점의 지점장이 누구입니까? 지점장은 '나'입니다. 지점장의 할 일이 한쪽업무만 책임지고 파악하면 된답디까? 그리고 사전업무보고는 왜 안 하는 겁니까? 일이 커진 다음 알고 뒤처리하는 게 지점장입니까?"

말 그대로, 나는 지점장이고 너는 부지점장이야.. 명확한 구분선을 알려줘야겠다 작심하고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속 좁은 여자가 하는 일이 다 그렇지"


○팀장이 사전 보고 없이 진행한 일 때문에 타 지점 선배지점장과의 오해가 있어 바로잡아야겠다 싶었으나 ○팀장의 휴대폰으로 보내온 문자를 전달받고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팀장에게 선배지점장에게 보낼 문자를 작성해 보내주면서 사과전화도 드리라고 했다. 아무런 변명은 하지 말고, 내가 속 좁은 사람이 되겠노라 하고..

때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오해를 키우지 않기도 하니까.. 오해란 놈은 숨만 쉬면서도 몸짓을 부풀려 나가니까..

오해가 풀리기까지의 시간 동안 가슴속 헤어진 자리에 청양고추를 발라놓은 것처럼 아프긴 했지만..


선배지점장에게는 시간이 한참 지나고 편한 자리에서 편한 마음으로 얘기했다. 그때는 오해였음을, 속 좁은 여자가 한 일은 아니었고 미리 알았으면 진행하지 않았을 거라고.. 선배지점장이 빈 잔에 술을 따라주며 말했다.

"내가 오해해서 미안타. 그때 바로 말하지 그랬노"

그러게요 그때 바로 말씀드릴걸 그랬네요. 그랬다면 긴 시간 동안 속에서 곪지는 않았을 텐데, 곪다 못해 썩어서 세상 무엇에도 깨지지 않는 바위가 되지 않았을 텐데..


○팀장이 거래처를 다녀오며 얘기했다.  학교선배이자 거래처인 □회장님으로부터 특명(?)이 있었다 했다.


며칠 동안 해결되지 않던 회장님의 제안을 막 결정짓고 오는 길이었다. 해결책이 아닌, 할 수 있는 '대안'을 가지고 협상테이블에 앉았고 □회장님은 한동안 침묵하시더니 "그랍시다" 해주셨고, 홀가분해진 마음으로 돌아오던 길이었다.


"너거 지점장 겉모양은 여자인데 속은 아이다.
니는 아직 멀었다. 잘 모시라."


별다른 모심(?)을 받은 기억은 없으나 그 후  ○팀장의 근무태도는 달라졌고 6개월 후 그는 지점장으로 승진을 했다.


속이 좁았어야 했다.

너그러운 척, 속상하지 않은 척할 수 없도록,

속이 말랑했어야 했다.

괜찮은 척, 대범한 척할 수 없도록,

아프다, 속상하다 소리칠 수 있도록!

목, 소, 리

마음이 아닌 목으로 아우성쳐야 했다.


#마음#직장생활#아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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