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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는 사람 가탁이 Jan 18. 2023

첫 경험을 하다 - 요양병원

잊을 수 없는 거기, 그 사람들, 그리고 나의 이야기

처음 며칠은 잠들지 못했고, 가끔은 소리 없이 울었던 것도 같다. 수술부위의 고통 때문에..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하는 외로움 때문에.. 삼십여 년 동안 멀쩡하게 다니던 직장을 쉬고 있다는 현실 때문에.. 

그러다 눈에 익숙해지듯 마음도 몸도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태어나 처음 지내본 곳 '요양병원' 더구나 '암 전문 요양병원'


잠들지 못하는 고통과 그 고통을 함께할 수도, 함께 해주지도 못하는 가족에 대한 원망 그리고 눈에 보이면 내버려 두지 못하는 성격 덕분에 몸이 아우성치고 있었다. 무엇보다, 큰 수술의 후유증 때문인지 오래 서있지도 못할 만큼 어지럽고 숨이 찼다. 바로 누워 잠들 수도 없었다.

직장후배의 조언으로 후배의 어머니가 계신다는 '암전문요양병원'이라는 곳을 알게 되었고 상담이라도 받아보고 싶었다. (처음에는 병원이라는 말에 내키지 않았다. 폐까지 파고드는 알코올냄새와 파리한 형광등 불빛 그리고 알 수 없는 비릿함까지.. 생각만으로도 코끝이 시큰거리며 속이 부대낄 만큼..)

병원 코디네이터형식적이고 무뚝뚝한 상담 태도나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나였다면 토닥이는 말을 해주며 환자나 가족의 불안한 마음부터 쓰다듬어 주었으리라. 그리고 표정도 최대한 온화하게, 또한 말투는 중저음 정도로 조금 천천히.. 이 경험으로 병원 코디네이터 공부를 마음먹기도 했다. ) 먹고, 자고, 움직이는 것에 대해 내 의지만 필요할 뿐이겠다는 생각에 다음 날 입원을 하겠노라 해버렸다. 그리고는 집에 오자말자 가족들에게 "한 달만 쉬고 오겠노라" 하고 캐리어를 챙기기 시작했다.


한 달이 아닌 계절을 보냈다.

입원 첫날, 계단을 하나 오를 때 터질 것 같던 호흡에 난 무릎이 꺾이고 말았다. 내가 왜 이래? 내가 왜..

체력하나는 자신 있었고 감기조차도 잘 걸리지 않던 내가,

밤새 일하고 다음 날 샤워만 하고 출근해도 멀쩡하던 내가..


거의 매일 뒷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처음 일주일은 병원 옆 골짜기 걷기부터 시작해 매일 거리를 넓혀나갔다. 마치 걸어서 하늘까지 닿을 만큼 걷고 또 걸었다. 걷기라도 해야 살 것 같았고, 걸어야 살 수 있었다.

매일 오를 수 있는 산이 있어 좋았고, 이해관계가 없어도 서로 위로하고 토닥여주는 사람들이 좋았다. 거기에서 난 잘할 필요도, 너그러운 척할 필요도, 괜찮은 척할 필요는 더군다나 없었다. 그래서 좋았다. 오롯이 나만 생각하고, 내 몸만 챙기고,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면 되었으니까.. 그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보험회사와 싸우는 일이었다. 내 일은 아니었지만 모르는 분야가 아니었기에 주삿바늘 놓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핏줄이 터져버린 그들을 위해 그들의 목소리가 되어 보험회사와 대응할 원고를 작성해 주며 통화하게도 했다.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사람들이 생겼다.. 그곳에서 만난..

아픈 사람들이라고는 상상이 안될 만큼 건강해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몇 달 전, 아니 며칠 전까지도 같이 웃고

같이 호흡했던 사람들이었다. 

식사 시간에 물도 마시지 못할 만큼(물비린내가 난다..) 항암 치료의 고통을 보며 먹을 수 있을 때 뭐든, 먹을 만큼 먹어도라는 조언도 해주며 서로를 토닥거렸다.

시월의 마지막 날에는 환자들에게 금지된 막걸리로 서로의 건강을 위해(?) 건배를 하며 카메라를 보고 V자를 그리고, 크리스마스이브에는 복고풍 댄스곡을 틀어놓고 오늘이 세상 마지막 날인 듯 엉덩이를 흔들며 박자와 어긋난 막춤을 추고, 새해 첫날에는 먹고 죽기야 하겠냐며 매운 떡볶이와 엄청 큰 치즈케이크를 먹고.. 그랬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내 꿈에 곱고 정갈한 모습으로 환한 미소와 함께 찾아오면.. 여지없이 먼 길 떠났다는 소식이 연이어 들려오고..


이제 난 그들을 보내주려 한다. 내 기억에서..

함께 산을 올라 다람쥐가 숨겨두었을지도 모를 도토리를 훔쳐오고, 풀숲인가 헤쳐보면 똬리를 틀고 있는 뱀이 있어 혼비백산 줄행랑을 치기도 하고, 비명과 신음을 오가며 요가를 하고.. 그 모든 기억들을 보내주려 한다. 내 마음속에 오롯이 남아 있는 그들의 마음은 남겨두고..


누군가는.. 좋은 기억, 좋은 생각만 글로 표현해 보라고 한다.

난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 아팠던 시간을 이렇게 글로써라도 풀어내놔야 아픔으로 날 찌르지 않고 추억으로 날 쓰다듬을 테니까, 아팠던 오늘이 지나면 행복한 추억으로 날 채울 테니까.. 그래서 난, 부족한 글이라도 써보기로 했다.


그곳에서, 암환자뿐인 그곳에서 생각했다.

'그래, 가족 중 한 사람은 암환자가 되는 요즘이라면 남편도 아이들도 아닌 내가 암환자가 된 게 오히려 다행이야..'



싱그러웠지만 우울했던,
 조금씩 살고 싶어지던,
돌아갈 곳이 그리워지던,

#거기#그 사람들#요양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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