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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는 사람 가탁이 Jan 18. 2023

'암'을 '앎'

잊을 수 없는 그날,  나의 이야기

벼랑 끝에 서 있었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날 난 벼랑 끝에서 까치발을 한 채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한마디 말에 등을 떠밀려 아득하게 떨어지고 말았다.


"모양이 좋지 않아요 암인 것 같습니다.
진단서 끊어드릴 테니 큰 병원으로 가보시죠"


그날,

매년 하는 건강검진을 받기 위해 직장에서 정해준 검진기관 중 하나인, 대도시의 영상의학과에 갔다.

매년 가던 곳이어서 몇 년 치 자료가 있었으니까..

그곳을 택한 이유는 그것뿐이었다. 나중에서야,

얼마 전 거액의 최신 장비를 들였고, 그 거액 덕에 주거래 하는 지점인 선배지점장의 점포 성적이 좋아졌다고 들었다.


"금액 때문에 CT 한 가지 더 선택하셔야 되는데 어떤 것으로 하시겠어요?"

간호사의 친절한 안내에,

"뭐 해볼까요? 추천 좀 해주세요" 나는 빙글거리며 다시 물었고

"저희 병원에서 폐 CT 한 번도 안 하셨네요
폐 CT 한 번 찍어보시죠"

간호사는 조금 의아한 추천을 해주었다.

"담배도 안 피우고 우등한 전업주부가 아니라서 요리를 많이 하는 것도 아닌데요?"
"네 그래도요"

간호사도 빙긋 웃으며 얘기했다.

"그러지요, 처음이니까 참하게 찍어주세요"


이것저것 기본 검사를 마치고 CT실로 갔다.

먼저 끝난 남편에 비해 유독 길어지는 시간.. 그러다

"다시 한번 찍을게요 뭐가 보이는 거 같아서요"

기계 탓이려니 했다.

'최신 장비가 맞나 보네. 쓸데없는 것도 보이는 거 보면..'


"이따 내과 과장님 상담하시고 가세요"

몇 번의 만세삼창 자세를 시키고, 느낌이 좋지 않은 조영제를 투여하고, "숨 참으세요. 숨 쉬세요"를 반복연습, 실전참여를 시키던 담당자가 나를 똑바로 보며 얘기했다.

불안함이 엄습했지만 40대 중반이 넘어가면서 검진결과표 종합의견이 길어지기 시작했으니 그러려니 했다.


"여기 보이시죠"

폐의 어디쯤 희끗한 부분을 짚으며 의사가 말했다.

마치 대단한 걸 발견한 듯 조금은 들떠 보이는 의사의 설명에 남편과 나는 의자를 바짝 당겨 앉았다.


"모양이 좋지 않아요. 암인 것 같습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화면 속 영상은 TV 의학프로의 한 장면이고, 어느 환자의 사진을 보고 있는 듯했다.

반응이 없는 내게 의사는 목소리를 키웠다.

"환자분, 제가 지금 환자분께 감기 걸렸다고 얘기하고 있나요?"

어느새 나의 호칭은 '환자분'이 어있었다.


검진받느라 수고했다고 받은 식권을 들고 골목 안 한식집을 찾았다. 아무 일 없다는 듯 된장찌개를 주문하고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남편과 나는 미동도 없이 앉아있었다.

'에이 돌팔이의사 같으니.. 그깟 사진촬영으로 무슨.. 아무것도 아니기만 해 봐라 내가 고소하고 말 테다. 멀쩡한 사람 겁주고 협박(?)했다고..'

씩씩거리면서도 어느새 내 손은 아내가 대학병원 수간호사로 근무 중이라는 선배의 전화번호를 검색하고 있었다.

국물 한 숟갈도 지 못하고 머리만 바쁘던 순간,

내가 왜? 내가 뭘 잘못한 거지?

잘한 것, 잘 해온 것보다

잘못한 걸 짚어보기 시작했다.


"당신 때문이야"


급격하고 엄청난 스트레스를 준 남편을 원망했다. 그러다,

나보다 더 놀랐는지 위로조차 건네지 못하는 남편을 보며 갑자기 측은한 마음이 드는 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여보 미안해요! 건강하지 못한 마누라 만나서..'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 엄마의 남편으로, 동생들의 아버지로 살아야 했던 맏이의 책임감과

시골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해 대기업에 입사하며 성공본보기가 되어버린 후배들에 대한 의무감으로,

하고 싶지 않은 것 하기 싫은 것도 최선을 다했는데..

잊히지도 않는 2018년 4월 21일


그날 난 태어나 처음으로 '죽음'을 생각했고,

다시 '살아감'을 생각했고,

오로지 나를 위해 살아가기로 마음먹었다.


진흙에서 핀 연꽃이라..

#그날#암진단#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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