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족의 운명을 바꾼 소년보호처분 이야기

특수상해라는 비극 앞에서 처벌 대신 가족의 회복을 선택한 법원의 결정

by 대표변호사 이환권


변호사로 살아오며 수만 장의 서면을 썼지만, 문장마다 스며든 삶의 비명은 여전히 낯설고 무겁다. 가장 사적인 공간인 ‘집’의 문턱을 넘어야 하는 사건일수록 키보드 앞 내 손 끝은 더 자주 멈추게 된다.


걱정이 통제로 변하고, 훈육이 폭력으로 치닫는 그 찰나의 순간을 법률 용어로만 재단하기엔 삶은 너무나 복잡하지 않은가.





통제가 일상이 된 집, 날 선 정적이 깨지다


평범한 일요일 밤, 날카로운 유리컵이 정적을 깼다. IT 업계에서 성공한 전문가로 불리던 아버지는 아들에게 유독 엄격했다. 늦게 귀가했다는 이유로 시작된 꾸지람은 "앞으로의 일정을 엑셀 파일로 정리해서 보고하라"는 통제로 이어졌다. 또한 "잘 때 방문을 열어두고 자라"고 명령하며 아들을 압박하기도 했다.


사춘기 끝자락에 서 있던 중학생 아들은 그 무게를 이기지 못했다. 찰나의 순간, 소년은 식탁 위에 있던 가위를 들어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던 아버지의 등을 수차례 찔렀다. 119 구급차가 도착했고, 아들은 특수상해라는 무거운 죄명과 함께 소년분류심사원에 보내졌다.





자책이라는 가장 깊은 흉터


상담실에서 만난 아버지는 몸의 상처보다 더 깊은 흉터를 가슴에 지니고 있었다. 그는 가해자가 된 아들의 처벌을 원하지 않았다. "자식이니까요"라는 짧은 대답에서 절박한 부성을 읽었다. 아버지는 아들을 훈육의 대상이 아닌, 자신의 엄격한 원칙 안에 가둬야 할 존재로만 보았던 시간을 처절하게 자책했다.


하지만 법은 부모의 눈물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위험한 물건을 사용한 특수상해는 성인이라면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질 수 있으며, 미성년자라고 해도 소년원 송치까지 고려되는 중범죄에 해당한다.


나는 이 가족에게 관계의 근본적인 회복이 시급함을 직시했다.





기록에서 찾아낸 소년의 진심


변호사로서 소년의 삶 전체를 복기했다. 기록 속 소년은 지각이나 결석 한 번 없는 성실한 학생이었다. 학업 성적이 우수하고 학교생활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던 모범생이었다.


이번 사건은 내면에 쌓였던 우울과 불안이 우발적으로 터져서 벌어진 결과였다. 우리는 온 가족이 함께 심리 상담과 교육을 받으며 변화를 약속하는 양육 계획서를 법원에 제출했으며, 생활기록부와 담임선생님의 탄원서를 통해 소년의 평소 성정이 바르다는 점을 입증했다.





다시 일상을 향해 걷는 길


치열한 소명 끝에 법원은 소년에게 1호와 2호 처분을 내렸다. 소년원에 보내는 대신 보호자의 감호에 위탁하고 보호관찰소에서 40시간의 교육을 받게 하는 관대한 결정이었다. 특수상해라는 중범죄임에도 불구하고 가족의 양육 의지와 소년의 반성을 법원이 받아들인 결과다.


소년보호재판 처분.png


처분 결정이 내려진 날, 소년은 비로소 아버지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갔다. 무너졌던 부자 관계를 다시 쌓아 올릴 소중한 기회를 얻은 셈이다.


아버지는 여전히 등의 상처를 치료 중이었지만, 아들을 탓하기보다 자신의 엄격했던 양육 방식을 돌아보며 아들과 함께 정기적인 심리 상담과 가족 교육을 이어가기로 약속했다. 가족 모두가 서로의 상처를 외면하지 않고 마주하기 시작하면서, 거실을 가득 채웠던 서늘한 정적은 조금씩 일상의 온기로 채워질 것이다.






사람과 법 사이 그 애매한 틈에서 이야기를 씁니다.

법무법인(유한) 이현, 대표변호사 이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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