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이었지만 중간이 싫었다. '조금만 노력하면 위로 올라갈 수 있다'는 희망고문과 '자칫하면 아래로 떨어진다'는 두려움. 그 사이에서 아슬한 외줄 타기를 하며, 어디로도 편승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미웠다.
중간이 주는 안정감도 있다. 모두의 기대를 받지 않기에 부담이 없으며, 최소한 바닥은 아니라는 안도감. 어쩌면 이 두 감정이 지금껏 나를 중간에 머물도록 한 것일지도 모른다.
고등학교 1학년. 유난스러운 금반지를 낀 담임 선생님은 임시 반장을 선출해야 한다며 아이들에게 물었다. '중학교 때 반장 했던 사람, 손들어봐.' 얼핏 세어도 15명은 넘어 보였다. 그들은 염탐하듯 서로를 힐끗 쳐다봤지만 얼굴에는 감출 수 없는 우월감이 묻어났다. 내가 중간인 사실이 객관화되는 순간이었다.
과학시간. 아이들은 일제히 책상에 과학책을 올려놓고, 숨죽이며 선생님을 기다렸다. 출석 확인을 위해 내 이름이 불렸고, 유심히 나를 살피던 선생님은 '혹시 언니가 있니?'라고 물으셨다.
당황스러웠다. '아... 아니요.'
작년 학생회장과 이름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선생님의 일장 연설이 시작됐다. 얼굴도 모르는 학생 회장의 위대한 업적(?)을 칭찬하며 마지막에 이 말을 덧붙였다.
'000, 너도 기대할게.'
나를 쳐다보는 아이들의 시선이 따가웠다.
그리고 무서웠다.
중간고사 성적이 나오고 나는 확실한 중간이 되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