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로국밥이 되었다. 어른들이 마음은 청춘인데 하던 말들이 그들만의 넋두리가 아니었다. 잘살아보기 위하여 경주마처럼 질주 해왔는데 어느 사이 인가 몸과 마음이 따로 놀고 있는 시간을 마주하게 되었다.
얼마 전 우리 집에서 자동차로 딱 5분 거리에 살고 있는 성당자매의 병문안을 다녀왔다. 나보다 2살 아래인 그녀는 아직도 고상하고 아름다운 자태를 희미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삶의 끝자락에서 미혼인 두 아들의 염려와 걱정을 조용조용 서럽게 토해 내었다. 수의사였던 선하고 착하던 그녀의 남편은 췌장암으로 2년 전 먼 길 떠났고 바로 남편 따라 같은 병으로 2년을 투병하면서 생애의 끝자락을 가볍게 붙잡고 있었다.
슬픔을 나눈 들 무엇하랴. 애통한들 무엇하랴. 우리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까 라는 노래가사처럼 누구나 우리는 공동약속처럼 떠나고 있는 것을. 치유의 어머니 이신 파티마 성모님께 함께 두 손 잡고 간구했건만 마치 꼭 가야 할 길이었던 것처럼 떠나갔다.
건강하고 돈 만 있으면 천년인들 못살까, 만년인들 못살까. 정해진 시간만큼만 생존하거라 하늘이
그렇게 허락하였으니 몸 은 자꾸만 서둘러 조금씩 따로 놀자고 한다. 나는 아직, 우리는 아직 놀고 싶고 행복하고 싶다고 마음은 아우성치는데 서서히 순종밖에 길이 없음을, 텅 비어버린 국밥 은 내가 아닌 너로 계속 채워져 감을 깨달아 간다. 아무리 청춘 같은 마음을 붙잡으려고 해도 우리는 그렇게 사라져 간다. 잊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