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 거짓말처럼 꽃이 터졌다.
밤 사이 누가 흰 물감을 허공에 풀어놓은 듯,
온 세상이 문득, 벚꽃이다.
흐드러지게 강생하사.
가지들은 무게를 못 이겨 휘청인다.
지나치게 희고, 지나치게 많은 꽃잎들.
현기증이 날 만큼 아찔한, 흰의 폭발.
바람이 불 때마다 꽃잎은 눈처럼 흩날려
어깨 위에도, 말 없는 아스팔트 위에도
소리 없이 쌓인다.
아름다워서, 오히려 비현실적인 풍경.
저토록 일제히 피어나
한순간 절정을 이루는 생.
얄궂은 겨우내 잉태한 과실이다.
텔레비전 화면 속, 익숙한 얼굴이 흐릿하게 지나간다.
소리는 껐다.
입술 모양만으로도 충분한 말들.
광장을 메웠던 어떤 함성들, 낮게 가라앉은 분노들,
마침내 하나의 방향으로 모아지던 그 무수한 색색의 빛깔들.
창밖엔 꽃잎이 분분하다.
하얗게 부서지는 저것들은 무엇의 끝인가, 시작인가.
세상은 때로, 가장 연약해 보이는 것들로
가장 단단한 벽을 허문다.
흰 꽃잎 하나가 손바닥 위에 내려앉는다.
종이처럼 얇고 차갑다.
가만히 손을 오므린다.
부서질 듯 위태로운 그 흰 숨결 속에서,
나는 어떤 흔들림 없는, 씩씩한 결의를 본다.
보라,
저 눈부시게 위태로운 흰빛의 절정을.
그리고 그 너머,
반드시 올 수밖에 없는 어떤 끝을.
떨어져 쌓인 꽃잎들이 만들어낼,
결연한 흰 길을.
사월,
모든 것이 끝나고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되려는 듯,
벚꽃은 저리 눈부시게, 흐드러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