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절을 당하지 않기 위해

지나가는 생각

by 원하나

성인이 된 이후로, 거절의 횟수가 늘어났다. 당연하게도 어린 나이보다 나이가 들수록 선택지가 많아지니 그만큼 거절의 수도 함께 늘어나는 것이 당연하다. 많은 거절을 당해도 이상하게 무뎌지지 않는 게 신기하다. 다만, 기대는 낮아지고 시도의 횟수는 늘어난다. 시작점에서 떠올렸던 성공의 확률은 점점 낮아지는 덕분에, 한 번의 시도가 그리 특별하지 않아 진다.

누군가 두 사람의 마음이 같은 사랑은 '기적'이라고 하던데, 요즘 무수히도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문장이다.

사랑에 수많은 거절들이 오가면서 나만의 도착점을 찾기 위해 다양한 마음과 시간들을 쓴다. 너무 많이 쓴 마음과 시간을 때론 아쉬워하기도 하고, 요즘은 더욱더 사랑에도 가성비를 찾게 되는 시기가 온 거 같기도 하다.

내가 상대를 좋아하나? 보다 상대가 나를 좋아하나?를 먼저 살피게 되는 마음이 거절 신호를 감지해서 아닐까 싶다. 거절을 당할 때, 또는 헤어짐, 아님 탈락, 여러 가지 내가 아니라고 말하는 신호들은 이유를 잘 알려주지 않는다. 단순히 결과만을 통보할 뿐...

그럼 무수한 물음표들을 머리에 띄우면서 생각한다. 그리고 다음은 거절 또는 실패하지 않기 위해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되었을까를 복기한다. 사랑은 참 이상하다. 사람마다 그 기준이 너무 달라서 도대체 한 명의 사랑을 했다고 해서 그게 경력이 되질 않는다. 물론 센스나 눈치는 생기겠지만, 나의 배움이 새로운 사람에게 그대로 적용될 확률은 그리 크지 않다.

거절당하는 마음이 무서워서, 가능성을 많이 열어둔다. 참 웃긴 말이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패가 많아지면 하나의 탈락이 그리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냥 다음 순서를 기다리는 거에서 그친다. 예를 들면, 취업준비를 하는 상태에서 6개의 기업 결과가 남은 상태에서 1개의 결과가 탈락인 것과, 1개의 결과만이 남았는데 그게 탈락인 것은 마음의 타격감이 확연히 다르다.

사랑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물론 조금은 다른 게 사랑은 마음의 크기로 그게 결정 나는 경우가 많다. 너무 사랑하면 관계가 무서워지듯이 사랑의 크기에 따라 거절의 회복성이 달라진다. 그래서 너무 많은 사랑을 주면 손해라느니, 사랑에도 갑을이 있다느니 그런 말들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다만, 그 문장들은 사랑이라는 단어에서 너무 멀어 보여서 '진정한'이 빠진 느낌이다.

거절당하는 아픔을 알아서 미리 거절에 대비해 두는 상황, 상태. 마음에 솔직해지지 못한 거 같아 별로라는 생각이 들지만 나를 위해서는 관성처럼 그렇게 경우의 수를 만들어 놓는다. 사랑은 나에게 아주 큰 기쁨을 주지만, 동시에 제일 큰 아픔을 줄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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