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흰>을 읽으며
하얀 눈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이미지는 어떤 게 있을까. 최소 백석 시인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이 나온 1938년부터는 겨울날 나리는 함박눈을 낭만과 포근함의 상징으로 여기지 않았을까. 겨울은 세상이 하얗게 변하는 계절이라 흰 입김을 내뱉으며 사랑하는 이와 손잡고 눈밭을 뽀득거리며 거닐 때면 마음에도 때묻지 않은 순수함이 스며들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한강 작가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과 흰 눈은 달랐다.
<흰>은 대부분의 소설과 달리 수필처럼 짧고 비연속적인 장면들로 만들어져 나에게는 이야기보다는 작가의 일기장처럼 느껴졌다. 그렇기에 더욱 작가와 비슷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으며 그가 가진 오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장면들을 다시 나의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문학가들이 가진 오감에 대해 조금은 알 수 있었다.
모두가 칼로 긁어쓴 것 같은 숫자 301이 써있는 문을 보며 '앞으로 살아야 하는데 어떻게 고치지, 난감하네'라고 마음속을 내뱉을 때
문학가는 301 모양의 칼자국이 가진 서슬퍼럼을 보고 낡은 스위치 옆의 검은 얼룩이 눈에 들어온다. 짖지 않는 강아지를 보며 그가 묶인 사슬이 내는 소리가 시퍼렇다고 느끼며 따뜻한 봄냄새를 맡으며 아직 오지 않은 겨울을 떠올린다.
그렇게 예민한 오감과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 감정과 경험을 글 속에 녹여낸다. 굳이 보지 않아도 될 곳을 향해 서서 바라보고 집중하지 않아도 될 소리에 골몰하며 서서이 병들어가는게 작가가 된다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