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975km를 향해

하프코스 마라톤을 준비하다

by 제이식

마라톤 대회 D-22


하프코스 마라톤은 21.0975km를 뛰는 경기이다. 처음엔 한없이 멀게만 느껴졌던 이 거리가 이제 손에 잡힐 듯 가까워졌다. 세 번째로 광교산을 찾았을 때는 20km를 뛸 수 있었다. 스마트 워치에 찍힌 20km라는 숫자는 보면서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내가 정말 이 거리를 뛰었단 말인가!'

생각보다 빠르게 거리를 늘릴 수 있었다. 불과 일주일 전 최고기록은 15km였지만, 이제는 20km이다. 처음부터 이 거리를 목표로 했던 것은 맞지만, 정말 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지난번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멀리 뛸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하려 했는데, 그만 20km를 뛰고 말았다.

이런 경험은 생소하다. 언제부턴가 무언가를 이뤄낸다는 것은 그저 남들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성취'라는 단어는 나와 상관없는 것 같았다.


그런 내가 20km 달리기에 성공했다!

비록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나만의 기록일지언정.

무언가를 이뤄냈다는, 계속 발전하고 있다는, 무한히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은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거대한 파동을 만들어 목덜미를 타고 올라와 양볼에 소름이 돋게 만들었다.



마라톤 대회 D-18


자신감은 활화산처럼 폭발했다. 마라톤에 대한 열정은 용암처럼 끓어올랐다. 거의 매 순간 달리기 생각뿐이다. 어떻게 훈련을 할지, 몸은 어찌 관리해야 할지, 대회 전에 준비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등등. 연습은 계속되었다. 부산으로 출장 갈 때조차 러닝화와 운동복을 챙겨갔다.


부산에서는 숙소 근처에서 뛰기 좋은 코스를 찾아냈다. 바다를 끼고 있으며 말랑말랑한 트랙이 1km 정도 이어진 길이다. 길이가 살짝 아쉽기는 했지만, 마라톤 연습을 하기에는 충분했다. 일을 마치고 훈련을 하러 나왔을 때는 해가 서쪽하늘로 많이 기운 상태였다. 소금기 가득한 바닷바람을 타고 부둣가 특유의 냄새가 전해졌다. 달리기를 시작하자 어디선가 갈매기가 날아와 페이스메이커가 되어주었다. 노을 진 하늘과 바다는 온통 붉은빛이다. 오랜만에 보는 석양이 마음을 간지럽힌다. 귓가를 스치는 바람도 기분을 좋게 해 준다. 잠시 이 분위기에 취해 스마트 워치로 페이스를 체크하는 것조차 잊고 달렸다.

하지만 금세 해는 저물고, 주변은 완전히 어두워졌다. 석양이 머물던 자리는 대신 가로등이 채워주었다. 전날 마신 술 때문인지 10km를 지난 이후에는 한번 왕복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점점 늘어났다. 페이스를 끌어올려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몸이 잘 따라주지 않았다. 이미 지친 상태였지만 정신력으로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계가 왔다. 16km 조금 지난 지점, 오른쪽 엉덩이 윗부분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광교산에서 아찔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바로 달리기를 멈추고 때마침 옆에 있던 벤치에 앉았다. 잠시 앉아서 숨을 고르고 스트레칭을 한 뒤 더 이상 달리지 않고 숙소로 돌아왔다. 걸어서 오는 길에 특별한 통증은 없었지만 불안한 마음은 진정되지 않았다.



마라톤 대회 D-13


지난번 부산에서 오른쪽 엉덩이가 아파서 달리기를 멈춘 일 때문에 마음 한구석이 찜찜하긴 했지만, 그래도 마지막 연습을 위해 다시 러닝머신 위에 올랐다.


언제나 달리기를 시작하면 어느 정도 몸이 달아오르기 전까지가 가장 고통스럽다. '21km는 못 뛸 것 같은데...' 계속 이런 생각을 하다가도 몸에 열이 오르기 시작하면 자신감도 같이 차오른다. 대략 4km 정도를 지날 때즘이면 몸이 완전히 풀려서, 페이스도, 호흡도, 팔을 흔드는 간격도 흐트러짐 없이 일정해진다. 이 상태가 되면 영원히 뛸 수 있을 듯한 착각마저 든다. 지루하긴 하지만 마지막 장거리 연습이니 긴장감을 늦출 수는 없다. 집중력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렇게 1시간, 1시간 반, 2시간을 달렸고, 러닝머신에 21km라는 숫자가 표시되었다.


드디어 목표 달성이다!

시작할 때는 뽀송뽀송했던 운동복은 완전히 땀에 젖어버렸고, 달리기를 멈추었지만 호흡은 정리되지 않았다. 다리 근육을 풀어주기 위해서 헬스장 안을 두 바퀴 걸었는데, 아직 뛸 때의 관성이 남아있는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두 다리가 움직였다. 마지막 장거리 훈련에서 실전과 똑같이 21km를 달리는 데 성공했다. 달리고 난 후 어느 정도의 근육통은 있었지만 심각하게 아픈 곳은 없었다.

탈도 참 많았던 하프코스 마라톤 준비과정도 이제 마무리를 해야할 차례이다. 남은 기간 동안에는 서서히 훈련량을 줄여나갈 것이다. 목표했던 연습과정을 모두 이뤄냈지만 왠지 기쁜 마음보다는 안도감이 좀 더 크게 다가왔다.



마라톤 대회 D-6


배번표와 기록칩이 도착했다. 훈련량을 줄이는 tapering 기간이라 가볍게 4.4km만 달렸다. 대신 평소보다 좀 빠른 페이스로 달렸다. 달리고 나서 왼쪽 무릎이 살짝 아팠지만 큰 문제는 아닐 듯하여 대수롭게 여기지는 않았다.



마라톤 대회 D-2


그냥 쉬어야 하지만 가만히 있자니 도저히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집에 오자마자 아파트 헬스장을 찾아 3km 정도를 달렸다. 며칠 전 아팠던 왼쪽 무릎도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약간 안심이 되었다.


이제 리허설은 모두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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