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병원 진료 때 의사는 나에게 "더 이상 달리기를 하지 말라"하며, "정 운동이 하고 싶으면 수영을 하라"라고 충고를 했다. 수영이 허리 상태를 호전시켜 주는 걸까? 아니면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할 수 없다면 허리에 무리가 가지 않는 운동으로 대신 힘을 빼라는 걸까? 정확히 무슨 의도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의사의 추천대로 당분간은 달리기 대신 수영을 해볼 생각이다.
수영을 배운건 6년 전이다. 회사 근처의 수영장으로 저녁마다 일을 마치고 강습을 받으러 갔는데, 그때는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꽤나 열정적으로 수영을 배우러 다녔다. 수영강습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일주일에 무려 5회나 되었는데, 수업을 거르는 일은 거의 없었다. 저녁 수영강습 시간까지 일이 끝나지 않았다면 수영을 하고 다시 회사로 돌아올 정도였으니까. 물론 혼자가 아니라 죽이 잘 맞던 동료가 있어서 그랬던 것도 있지만, 이유야 어쨌든 뭔가에 홀린 듯 수영의 매력에 푹 빠져있던 시기였다. 하나하나 배울 때마다 실력이 늘어가는 것도 재밌었고, 강습을 마치고 나올 때마다 불어주던 시원한 바람도 좋았다.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도록 수영을 하고 나면 집에 돌아갈 때는 잠시나마 회사생활의 시름도 잊을 수 있었다. 그렇게 넉 달을 즐기며 수영을 배운 덕에 자유형 정도는 여유롭게 할 수 있고, 접영도 대략 흉내를 내며 25m 정도는 갈 수 있게 되었다.
토요일이자만 오전에는 회사에 출근을 한 뒤, 오후에 회사 근처 실내수영장을 찾아갔다. 토요일 오후의 수영장은 자유수영을 하는 사람들만 몇몇 있을 뿐이었다. 어색한 동작으로 대충 어깨와 팔을 풀어준 뒤, '풍덩'소리와 함께 물속으로 몸을 던졌다. 오랜만에 만난 수영장 물은 조금 낯설었다. 여름이지만 수영장 물의 온도는 약간 차갑게 느껴졌고, 특유의 염소 냄새가 강하게 코를 찔렀다. 수모가 끝까지 잠기도록 물속에 머리를 담근 뒤 벽을 두 발로 사뿐히 밀어 앞으로 나아갔다. 오랜만에 팔과 다리를 물속에서 저어 본다. 머리가 아니라 몸이 기억하고 있던 동작들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면서 물을 유유히 갈라낸다.
25m 레인을 한번 왕복한 뒤 제자리로 돌아와 주변을 둘러보았다. 내가 있는 레인은 반대편에 쉬고 있는 사람이 한 명 있을 뿐 아무도 없었다. 기회다 싶어 50m를 전력으로 수영한 뒤 기록을 확인했다. 50초 정도 걸렸다. 오랜만에 수영을 해보는 거지만 나쁘지 않은 기록이다. 다만, 담배를 많이 펴서 그런지 가뿐 숨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천천히 몇 번을 왕복했다. 살만해지니 이번에는 1500m에 도전하고 싶어졌다. 30번을 왕복하면 된다. 마지막으로 이 거리에 도전했을 때 35분이 조금 넘게 나왔었는데 이번에는 어떨지 궁금했다. 스마트 워치를 세팅하고 'start'버튼을 누름과 동시에 터치판을 힘차게 박차고 출발했다.
처음부터 너무 페이스를 빠르게 올리면 안 된다. 그렇다고 너무 쳐져도 안된다. 수영을 하면서 암산을 해본다. 목표는 35분이고 30바퀴를 왕복해야 한다. 한 바퀴에 1분 10초를 넘기면 안 된다. 후반에 페이스가 떨어질 걸 감안하면 초반에는 1분 남짓한 시간에 한번 왕복해야 한다. 1500m 수영을 하면 항상 첫 10번의 왕복이 가장 힘들다. 사실 몸보다 마음이 더 힘든 구간이다. 서너 번 왕복을 하면 힘이 부치기 시작하는데, 이제 겨우 서너 번 왕복했을 뿐이라 생각하면 앞이 캄캄하다. 여기서 참아내고 참아내고 10번 왕복을 넘기면 무아지경의 상태에 이르게 된다. 그냥 로봇처럼 아무 생각 없이 팔과 다리를 움직인다. 그래서 툭하면 몇 번이나 왕복했는지 잊어버리기 때문에 이 구간에서는 항상 속으로 몇 번째인지 중얼거리며 수영을 해야 한다. 20번째 왕복을 넘기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이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지만 지금까지 해온 게 있어서 포기할 수 없게 된다. 심장은 터질 듯이 뛰고 숨은 턱까지 차오른다. 미칠 듯이 힘이 들지만 그래도 팔과 다리를 움직여야 한다. 이때부터는 남은 왕복수를 세면서 수영한다. 마지막 3번, 2번 , 1번 그리고 마지막 터치. 당장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처럼 헉헉대면서도 기록부터 확인을 했다. 34분이다.
'야호! 신기록이다.'
월요일 아침 5시 30분.
어젯밤에 맞춰둔 핸드폰 알람이 1분 1초도 틀리지 않고 정확하게 울리는 순간, '괜한 호기를 부렸구나.' 하는 생각과 동시에 후회가 밀려온다. 다시 알람을 다시 끄고, 침대에 누워 생각했다.
‘30분만...’
하지만, 결국 30분이 아니라 2시간 뒤에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새벽에 일어나서 수영을 가겠다는 호기는 그냥 객기였을 뿐이다. 푹 잤으면 피로라도 풀렸을걸, 괜히 새벽에 잠을 깨서 그런지 몸만 더 무거워졌다. 겨우 일어나 종합비타민부터 찾는다. 한 알을 꿀꺽 삼키고 생각했다. '이게 과연 도움이 되기는 하는 걸까?' 아무런 변화도 느낄 수 없지만, 그래도 이 '루틴'을 아침마다 반복한다.
회사에 도착한 뒤에는 가장 먼저 인스턴트커피 2봉을 큼지막한 머그잔에 모두 쏟아 넣은 뒤 뜨거운 물을 한가득 채우고 자리에 앉는다. 비타민은 먹으나 마나 일지 몰라도 카페인은 확실히 다르다. 커피 한잔에 담긴 카페인은 직장인들이 가장 힘들어한다는 월요일 오전 시간도 너끈히 버틸 수 있는 힘을 준다.
점심시간이 지난 후에도 다시 한번 인스턴트커피 2봉으로 오후 일과를 시작한다. 그리고 가끔은 니코틴과 카페인의 밸런스를 맞춰줘야 할 때도 있다. 담배와 커피로 버텨낸 오후가 모두 지나면 새벽에 못 간 수영장에 갈 수 있다.
평일의 실내수영장은 자유수영과 강습을 받는 사람들로 항상 붐빈다. 사람들 틈바구니 속에서 기록을 재는 것은 엄두도 못 내고, 그저 앞사람의 페이스에 맞춰서 끊임없이 25m 레인을 왕복할 뿐이다. 유일하게 내가 정할 수 있는 건 운동시간뿐이다. '오늘은 월요일이니깐 30분만 하자.'라고 마음먹고 시작했지만, 어느새 1시간을 훌쩍 넘겨 버렸다. 새벽형 인간이 되겠다는 각오는 지켜내지 못했지만, 적어도 하루 종일 카페인과 니코틴에 찌든 몸을 조금이나마 가볍게 하고 나니 기분은 상쾌했다.
객기일지도 모르겠지만 수영장을 나오며 핸드폰 알람은 다시 새벽 5시 30분에 맞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