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가 많이 좋아지셨어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by 제이식

사내 피트니스 센터의 요가 클래스는 화요일과 목요일 주 2회 수업을 한다.

피트니스 회원이라면 누구든지 언제든지 참석할 수 있고, 싫다면 안 가면 그만이다. 그러다 보니 한번 호되게 매운맛을 보고 다음부터 얼씬도 안 하는 사람들도 있고, 꾸준하게 참석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나는 다행히 후자에 속한다. 처음에는 낯설고 힘들고 어색했지만 어느덧 시간이 흘러 요가 클래스의 고참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요가 클래스에 참석하기 위해 언제나처럼 수건 한 장 목에 감은 채 터벅터벅 GX룸에 들어서자 익숙한 얼굴들이 눈에 띈다. A 아저씨는 요가 클래스의 에이스이다. 나처럼 항상 나오시는 분인데, 몸도 유연하지만 근력이 탁월해서 어려운 동작도 잘 소화해낸다. 인사과 B 사원은 오랜만에 왔다. 안면은 있지만 서로 인사를 나눌 만큼 가까운 사이는 아닌데, 유연성 하나는 정말 좋은 편이다. C 아저씨는 항상 중앙 1열에 앉는다. 언제나처럼 '인싸' 분위기를 풀풀 내며 몸을 풀고 있다. 잘하기도 하지만 자신감도 넘치는 타입이다. 만약 MBTI 검사를 하면 나랑 정반대 성향이 나올 것이다.


수업 시작 전 각자 몸을 푸는 시간이다. 나도 매트를 꺼내서 자리를 잡는다. 요가 클래스가 많이 익숙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나는 선생님과 눈을 마주치며 인사하는 1열은 아니다. GX룸의 가장 끝열, 끝행 그곳이 나의 지정석이다.


자리에 앉으면 우선 목에 감고 있던 수건을 한쪽 옆에 내려놓고, 신발과 양말을 벗어 그 옆에 가지런히 놓는다. 그다음 상의를 하의 속으로 밀어 넣는데, 요가하다가 상의가 거꾸로 뒤집어져 탐스런 똥배가 홀라당 밖으로 드러나는 일이 없도록 꼼꼼하게 해준다. 옷매무세 정리가 끝나면 간단히 몸을 풀어준다. 난 주로 허벅지 쪽 대퇴사두근과 내전근 스트레칭을 한다. 특별히 이 부위를 신경 쓰는 건 아니고 그냥 남들이 가장 많이 하는 스트레칭이라서 그렇다.


요가 선생님이 언제나처럼 밝은 표정으로 들어오며, 1열의 '인싸'와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오디오 세팅이 끝나고, 잔잔한 물결이 연상되는 음악이 흘러나오면 두 손을 합장한 채 다 같이 인사를 하고 수업은 시작된다.


먼저 자리에 앉은 상태에서 스트레칭부터 시작한다.

양발을 벌리고 앉은 채 허리를 숙여 왼쪽 오른쪽 번갈아가며 손끝을 발가락을 향해 뻗는다.


"숨 내쉬면서 조금 더 내려가 보세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손 끝에 온 신경을 집중한 채 숨을 천천히 내뱉으면 마치 '원피스의 루피'처럼 손가락이 한마디 더 내려간다. 내 몸이지만 참 신기하다. 호흡을 거듭할 때마다 조금씩 손끝이 발끝에 가까워진다. 물론 아직 맞닿으려면 한참 남았지만 말이다.


스트레칭이 끝나면 본격적인 요가 수련이 시작된다.

언제나 시작은 '수리야 나마스카라(태양경배자세)'이다. 수리야 나마스카라는 태양을 숭배하는 12가지 동작이 우아하게 이어지는 요가의 기초이다. 고수들에게는 본격적인 요가 수련 전 워밍업(warming-up) 같은 것이지만, 누구에게나 그런 것은 아니다. 나 같은 초급자들에게는 결코 만만한 동작이 아니다. 처음에는 '수리야 나마스카라'만으로도 땀으로 샤워를 하곤 했었으니깐.


수리야 나마스카라는 정면을 바라보고 선 채 양팔을 편안히 내린 상태에서 시작한다. 먼저 호흡하는 방법부터 익힌다. 코로 가슴 깊이 숨을 들이마시면 횡격막이 부풀어 오르며 어깨가 으쓱 올라간다. 길게 숨을 내쉬면 어깨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한 번의 들숨과 날숨만으로도 하루 종일 쪽쪽 빨리기만 했던 기운들이 다시 돌아온 느낌이다.


선생님의 구령과 함께 다시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두 손을 하늘 위로 뻗는다. 시선도 손끝을 향한다. 손끝이 찬란한 태양이 아니라 회색 천정을 가리키고 있어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오래간만에 뒤로 젖혀진 목은 아주 시원하다.


날숨에 상체를 숙이며 두 손은 바닥을 향한다. 무릎을 살짝 구부려 손바닥으로 땅을 짚은 다음 다시 숨 들이마시며 허리를 편다. 다시 한번 두 손바닥 짚고 두 발 뒤로 보내면 플랭크 자세가 된다. 이 상태에서 푸시업을 하듯이 내려갔다가 상체만 들어 올린다. '업 독'이란 자세이다. 허리가 활처럼 뒤로 젖혀지며 시원하게 스트레칭이 된다. 다음은 '다운 독'이다. 숨을 내쉬며 엉덩이는 하늘을 향하고 발바닥 전체로 바닥을 꾹 눌러줘야 한다. 지금까지 물 흐르듯이 동작이 이어졌지만 '다운 독' 상태에서는 잠시 멈춰 다섯 번 길게 호흡을 한다.


우연히 앞자리에 있는 사람의 다리가 보였다. 발뒤꿈치는 땅에 닿지 않고 다리는 부들부들 떨리고 있다. 못 보던 사람인데 아마 오늘 처음 온 듯하다. 사실 저 순간의 기분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1초가 1분처럼 느껴지고 선생님의 구령은 왜 이리도 느린지 한탄스러울 것이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하고 피식 웃음이 난다.


이제 다음 구령에 양발을 다시 앞으로 가져오고, 상체를 일으키면 처음 자세로 돌아오며 1세트가 끝이 난다. 보통 '수리야 나마스카라'는 2 set를 이어서 진행하고 다음 수련으로 넘어간다.


그다음은 아쉬탕가 요가 동작들 중에서 초보들도 할만한 쉬운 것들 위주로 골라서 몇 가지 동작들을 수련한다. 아쉬탕가 요가는 다른 요가들에 비해 근력이 많이 요구되는 요가이다. 그래서인지 분명 쉬운 것들만 골라서 가르치고 있을 텐데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다. 그중에서도 가장 힘든 건 '할라아사나(쟁기자세)'이다. 누운 상태에서 두 다리를 머리 위로 넘겨 발끝이 바닥에 닿도록 한 뒤에 다시 허리와 다리를 꼿꼿이 세워 발끝을 하늘을 향해 뻗어야 한다. 처음에는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온 몸이 부들부들 떨릴지언정 발끝을 하늘을 향해 올릴 수 있게 되었다.


'사바사나(시체자세)'를 끝으로 모든 수련을 마치고 처음과 같이 두 손을 합장한 채 인사를 하면 이제 집에 돌아갈 시간이다. 평소 같으면 바로 샤워를 하러 내려갔겠지만, 이 날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조금 더 연습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밖에 있는 매트에서 혼자 좀 더 수련을 했다. 짧은 연습을 마치고 계단을 내려가는데 요가 선생님이 보였다. 퇴근길에 누군가를 만나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 중인 거 같았다. 그냥 지나칠까 했지만 요가 선생님이 먼저 나를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나도 가볍게 인사를 하고 지나치려 할 때, 선생님이 나에게 말했다.


"요즘 자세가 많이 좋아지신 거 같아요."


"하하(어색하게)~ 아 정말 인가요?"

"네 그럼요, 요즘에는 제가 수업 때 그쪽 자리로 잘 안 가잖아요."


그러고 보니 언제부턴가 선생님이 자세를 잡아주는 일이 드물어졌다.

'하긴 처음에는 워낙 엉망이었으니, 그때에 비하면 정말 좋아졌겠지.'


선생님의 칭찬을 곧이곧대로 듣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런 칭찬이 듣기에 나쁘지는 않았다. 아니 사실 좋았다. 계단을 내려가는 발걸음이 갑자기 가벼워졌고, 나도 모르게 샤워를 하며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집에 가는 차 안에서 내내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라 불렀다.


역시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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