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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식 Jun 16. 2022

오후의 텃밭

6월 6일, 가끔은 게을러도 괜찮아!

6월 6일


고작 10평이 전부인 텃밭 주인일지언정 주말 아침이 되면 어느 부지런한 농부 못지않게 일찌감치 텃밭으로 달려가곤 했었다. 나이가 어느 정도 들고부터 새벽잠이 부쩍 없어진 탓도 있지만, 응당 농부라면 이른 새벽 출근이 기본이라 생각해서 그랬다. 하지만 오늘은 이른 아침부터 부슬부슬 내린 비 덕분에 출근이 늦어졌다. 비는 오전에 그치긴 했지만 뜨거운 햇살을 피해 해가 기울어진 오후가 돼서야 집을 나섰다. 평소와 다른 출근시간이 좀 어색하긴 했지만, 간만에 부린 게으름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오후의 나른한 기운 따라 마음도 느슨해졌다. 급할 것도 없는데 항상 득달같이 달렸던 길을 오랜만에 여유롭게 달려본다. 살짝 열어둔 창으로 들어온 바람이 살짝살짝 내 머리를 흐트러트리는 것도, 비 온 뒤 청량하게 개인 하늘을 바라보는 것도 좋다. 오후에 출근을 하니 모두 다녀가고 난 뒤인지 텃밭도 한가하다. 눈치 볼 것 없이 아무렇게나 차를 세워두고 트렁크에서 이것저것 챙겨서 밭으로 향한다.

오후의 텃밭은 참으로 한가하다.


오늘은 잡초들과 한바탕 전쟁을 치를 마음을 단단히 먹고 왔다. 몇 주째 잔뜩 벼르고 있었다. 이것들이 이제는 텃밭 주인 행세를 할판이다. 지난주는 무릎이 안 좋아서 한 번 넘어갔는데 이제는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는 지경이다. 목장갑을 단단히 끼고 호미 한 자루 손에 쥐니 장팔사모 한 자루 꼬나쥐고 장판교를 홀러 막아섰던 장비의 기운이 솟아난다. 고랑고랑마다 잡초들은 가득하지만 한 움큼 잡초들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연신 호미로 땅을 내리치면 이를 당해낼 잡초 따위는 없다. 내가 지나간 자리에는 추풍낙엽처럼 스러진 잡초들과 휑해진 고랑만이 남을 뿐이다. 아직 성치 않은 무릎이 아리아리하긴 하지만 한번 잡아당김에 뿌리까지 쑥 뽑혀 올라오는 잡초들을 보면 속이 다 시원하다. 

내 더 이상 너희들을 묵과하지 않으리라!


할 일이 많다. 한바탕 잡초와의 전쟁을 치렀지만 완두콩도 수확해야 하고 빼곡히 자라난 상추 잎도 뜯어야 하고 다 자란 오이와 고추도 따 줘야 한다. 땀 식힐 새도 없이 부지런히 하고 나니 허리도 뻐근하고 무릎도 시큰거린다. 그래도 완두콩 정리는 한 군데 엉덩이 깔고 앉아서 하면 되니 다행이다. 아내가 방울토마토와 고추밭에 순치기를 하러 간 사이 텃밭 한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콩깍지를 열자 초록 완두콩들이 앙증맞게 줄지어 들어있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모습이 참 우애가 좋아 보인다. 그런 완두콩을 한 톨도 흘리지 않게 조심스럽게 비닐봉지에 담아주기만 하면 된다. 이건 오늘 했던 일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일이다. 한량처럼 쉬엄쉬엄 하면 된다. 사부작사부작 콩깍지를 까고 있으니 등줄기를 타고 바람이 스쳐 지나간다. 오랜만에 허리도 펴고 고개를 들어 하늘도 올려다본다. 어느새 해는 서쪽하늘 구름 사이에 걸려있을 만큼 내려앉은 채 조금씩 붉게 변해가고 있었다. 그리고 붉은 볕이 비스듬히 내려앉은 오후의 텃밭은 한가로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오후 출근도 나쁘지 않군'

혼자 그런 생각을 했다.





고놈들 참 탐스럽기도 하다!
어느덧 해는 기울어지고...
그래도 오늘은 꽤 짭짤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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