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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식 May 21. 2022

우주의 탄생

5월 15일, 열무 새싹이 올라왔다.

5월 15일


텃밭에 와보니 반가운 일이 있다.

도랑 옆 자투리 땅 조그마한 둔턱, 그곳에 열무 새싹들이 살포시 돋아났다. 저번 주에 뿌린 열무 씨앗이 싹을 틔운 것이다. 열무는 앙증맞은 잎사귀를 세상을 향해 뻗은 채 한가로이 봄볕을 쪼이고 있다. 좁쌀처럼 자그마하고 보잘것없던 씨앗들이 이렇게 싹을 틔워낸 것이 하도 신통방통하여 앞에 쪼그리고 앉아 한참을 쳐다보았다. 씨 뿌린데 열무 나는 것이 당연하지 뭐 그리 호들갑이냐 할 수도 있지만, 겨우내 단단하고 메마른 껍질 속에 고이 웅크리고 있다가 봄날이 온 것은 또 어찌 알고 마침맞게 뿌리를 내리고 잎을 내밀었으니 어찌 신기하지 아니한가! 그 작은 몸집 속에 뿌리가 되고 잎이 되고 줄기가 되는 모든 것들을 어찌 다 담고 있었단 말인가! 도라에몽의 호주머니처럼 그 안에는 또 하나의 우주라도 있는 것인가? 그래! 이건 또 하나의 소우주이다. 빅뱅(Big Bang)! 가수 말고 우주가 하나의 특이점에서 거대한 폭발로 시작됐다는 이론 말이다. 지금 경이로운 소우주 탄생의 순간을 지켜보는 중이다. 그 소우주는 우리 우주처럼 엄청난 속도로 팽창하고 있을 것이다. 비록 내 눈에는 미동조차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소우주 속 수많은 별들 중 어느 한 행성에 사는 누군가에게는 엄청난 속도일 것이다. 이 세상 모든 생명의 탄생이 그러하듯 생각할수록 상상할수록 신비롭고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는 중이다.

지난주에 뿌리 열무 씨앗에서 새싹이 돋아났다.


그나저나 다른 식구들은 어떠한가? 다들 한 주 동안 무탈히 잘 보냈는지 궁금하여 텃밭을 한 바퀴 둘러본다.


완두콩은 한주 사이 훌쩍 커버렸다. 키가 한 뼘은 큰 것 같다. 근데 단지 키만 큰 게 아니다. 어여삐 핀 꽃에 시선을 뺏겨 가만히 들여다보니 웬걸 벌써 여기저기 콩깍지가 매달려있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꼬맹이인 줄 알았는데 어엿한 어른이 되어 있었다. 콩깍지는 아직 홀쭉하니 콩이 실하게 들어차지는 않은 모양이나, 그래도 그렇지 이리 빨리 클 줄이야! 그런데 성숙한 아이들이 또 있다. 방울토마토도 질세라 꽃을 피웠고 아직 작고 새파랗지만 방울토마토 열매 하나를 잉태했다. 한 주 사이 도대체 여기서는 얼마나 많은 일들이 벌어진 것인가? 마치 이곳의 시간만 빨리 흘러가도록 누군가 조정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상추의 시간은 거꾸로 갔다. 분명 지난주에 먹을만한 잎은 다 뜯었을 텐데, 오늘 보니 딱 지난주 잎을 뜯기 전 모습 그대로이다. 덕분에 오늘도 소쿠리 한가득 싱싱한 상추 잎을 담아간다. 아마 다음 주도 다다음주도 그럴 것이다. 역시 봄 텃밭에는 상추만 한 게 없다.

완두콩은 에쁜 꽃을 피우더니, 콩깍지가 대롱대롱 매달렸다.
방울토마토도 빠른 아이들은 벌써 꽃 피고 열매를 맺었다.
아낌없이 주는 상추는 언제나 효자다.


오늘의 가장 큰 거사는 오이 집 짓기이다. 스멀스멀 담을 기어오르며 자라는 오이를 위해서 지지대에 그물을 걸어줘야 한다. 먼저 종묘사에서 산 그물을 꺼냈다. 그물은 아주 정신 사납게 말려있었다. 자칫 아무 데나 잡고 쥐어뜯다가는 도저히 풀 수 없게 엉켜버릴지도 모른다. 어찌해야 할지 도저히 엄두가 안 나는 상황인데, 아내는 차분하게 그물 끄트머리부터 확인한 다음 가지런히 바닥에 그물을 펼쳐낸다. 아내는 이런 일에서는 나보다 백배는 낫다. 그리고 적당히 그물을 잘라서 미리 세워둔 지지대에 걸고 케이블 타이로 동여매니 뚝딱 오이 집이 완성이다.

오이들이 타고 올라갈 그물을 설치했다!


마지막으로 잡초들 정리하고 상추랑 방울토마토만 따로 물을 챙겨주었다. 봄볕이 나른하게 내리쬐는 오월의 텃밭은 이제 아장아장 걸음마를 시작한 열무부터 갓 성인식을 치른 완두콩과 방울토마토까지 저마다 속도는 조금씩 다르지만 하나같이 변신을 준비 중이다. 태양의 열기와 땅의 지력을 머금고 각자의 우주를 확장하고 있다. 다음 주 이곳에는 또 어떠한 우주가 펼쳐져 있을까? 감히 상상하기 어렵다.


오월의 텃밭은 혼돈의 카오스이다.

다음 주에는 또 어떤 모습으로 나를 놀라게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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