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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식 Jun 26. 2022

텃밭은 지금 전쟁 중

6월 19일, 세상에 쉬운 삶은 없다.

6월 19일


여느 때처럼 편안한 마음으로 텃밭에 왔지만, 오자마자 기분이 영 탐탁지 않다.

끝없는 욕심에 각자의 영역을 넘어선 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정해놓은 질서를 무너트리고 선을 넘었다.  복수박은 분명 바로 옆에 지지대를 세워주었음에도 끈적한 넝쿨을 강낭콩을 향해 뻗었다. 덕분에 애꿎은 강낭콩은 한쪽으로 쓰러졌다. 호박넝쿨은 옥수수 밭을 지나 오이 집까지 손을 뻗쳤다. 그게 다가 아니다. 호박의 이기심에 한쪽으로 밀려난 깻잎은 간신히 잎을 펼치고 목숨만 연명하고 있는 신세가 되었다. 이름 모를 잡초들은 고랑들을 모두 점령한 뒤 둔턱 위 비닐 사이의 작은 틈을 비집고 올라와 있다. 대파밭에 있는 잡초들은 은신술의 달인이다. 바로 옆에 착 달라붙어서 마치 대파 인양 눈속임을 하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을 바로잡기 위해 두 팔을 걷어붙였지만, 마음 같이 안 되는 일도 있다. 방울토마토의 문제는 어찌할 방도가 없다. 나란히 세줄을 심었는데, 남쪽 방향 첫째줄은 벌써 나보다 키가 커졌을 만큼 쭉쭉 자라고 있지만, 마지막 줄은 앞줄의 절반도 크지 못했다. 너는 이제 충분히 컸으니 햇빛 좀 양보해라 타이를 수도 없고 그렇다고 강제로 모가지를 비틀 수도 없는 노릇이니 아마도 앞으로도 이런 불균형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이렇게 가만히 보면 텃밭은 마치 전쟁터 같다. 텃밭 안의 식물들끼리 벌이는 소리 없는 전투는 무시무시하다 못해 살벌하다. 패자에 대한 관용도 승자의 여유도 찾아볼 수 없다. 철저하게 강자만이 살아남고 계속 자신의 영역을 확장해 나간다. 그들에게는 '만족'이란 개념도 없다. 무한한 생존의 욕구. 이것만이 텃밭에 존재하는 단 한 가지 원칙이다. 그렇다고 그들의 이기심과 욕망을 탓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원래 그러한 것이니깐. 무한경쟁의 틈바구니에서 이기면 살아남고 지면 도태되는 아주 자연스러운 이치니깐. 이 텃밭에사  그 이치를 거스르려고 하는 것은 오직 나와 아내뿐이다.


그래! 우리의 삶이 경쟁의 연속이라고 너무 불평하지는 말자!

태어날 때부터 경쟁을 해야 하는 우리의 삶이 가엽다고? 배부른 소리 하지 말자! 적어도 인간으로 태어난 덕분에, 대한민국이라는 OECD 국가에서 태어난 덕분에 눈뜨자마자 생사를 건 싸움을 해야 하는 신세는 면하지 않았는가? 조금 못해도 조금 덜 잘 살뿐이다. 삶과 죽음 사이를 오가지는 않는다. 우리는 남들보다 좀 뒤처져도 다시 역전할 기회가 있지 않은가? 뒤줄의 방울토마토는 절대 앞줄의 방울토마토를 이길 수 없다. 어떠한 노력을 할지라도 말이다. 잡초의 인생을 생각해보자. 작은 틈새를 비집고 올라와 겨우 삶을 연명하는가 싶었지만 내 눈에 띄는 순간 뿌리째 뽑혀나가는 비극을 피할 수 없다.


그들의 치열함에 나의 고단함을 비할 수 있는가?

행복에 겨운 투정은 잠시 거두어두자!

이 세상에 쉬운 삶은 없다. 그게 우리의 숙명이다.




방울토마토는 이제 익기만 하면 되고, 비트는 언제 뽑을지 고민이고, 대파는 보기만해도 흐믓하다.
옥수수는 이제 나보다 키가 크고, 고추는 막상 잘 되고보니 따느라 허리가 아프고, 오늘도 아내는 열심히 일 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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