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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식 Jul 02. 2022

반가운 손님

6월 26일, 청개구리가 다시 찾아왔다.

6월 26일


어지러이 뻗은 호박넝쿨 사이를 뒤지다가 어린 수박만한 호박을 발견했다. 마치 자신의 알을 품고 앉아 옴짝달싹 않는 어미새처럼 호박은 자신의 넝쿨을 어지러이 뻗쳐 이제 갓 잉태한 열매를 지키려 했던 것일까? 그랬다면 호박의 계획은 실패한 것이지만, 난 그리 악랄한 약탈자는 아니니 운이 좋은 편이라고 해두자. 너의 열매는 신줏단지 모시듯 예쁘게 의자 위에 모셨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좀 더 크면 다시 보자꾸나!


방울토마토는 '잭과 콩나무'의 콩나무처럼 되고 싶은 것일까? 하늘을 찌를듯한 기세이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키가 내 눈높이 정도였는데, 오늘 보니 내 머리 위로도 한 뼘은 더 자란 듯하다. 안 되겠다 싶어서 지지대를 이어주긴 했지만, 이 정도로는 어림도 없어 보인다. 상황을 봐서 옆으로 뻗도록 지지대를 이어주던지 아니면 위로 솟은 가지를 좀 정리해줘야겠다. 키가 알맞하게 자라주면 참 좋으련만. 어떤 녀석은 너무 안 자라서 고민이고 어떤 녀석은 너무 커서 문제이다. 집에서 키우는 사람이나 텃밭에서 키우는 작물이나 내 마음 같지 않은 것은 매한가지인데, 어쩌면 그게 더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이런 수고로움은 수확의 기쁨이 있기에 하나도 아깝지 않다. 아직 시퍼렇게 덜 익은 방울토마토가 태반이긴 하지만 그래도 가지 아래쪽은 얼추 빨갛고 노랗게 익어가고 있으니 이제 더 이상 마트에서 과일코너 기웃거릴 일은 없을 듯하다. 잘 익은 녀석들로만 골라서 꼼꼼하게 따주니 얼추 비닐봉지가 가득 찬다. 그래! 바로 이 맛에 텃밭을 하는 거지!  


옥수수 주변에는 벌들이 무성하다. 좋은 징조이다. 아니나 다를까 운치 있게 수염을 기른 옥수수 열매가 한 주마다 하나둘씩 매달렸다. 이게 다 열심히 벌들이 수정을 도와준 덕이니 참으로 고마운 손님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옥수수 밭에는 또 다른 반가운 손님도 와 있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청개구리가 찾아왔다. 차갑고도 풍미넘치는 새벽 공기를 재료 삼아 옥수수 잎으로 내린 신선한 아침이슬 한잔하러 온 것일까? 아마도 저 옆집 논에서 왔을 것 같은데 이렇게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여기까지 온 걸 보니 여기가 아침이슬 맛집이 맞나 보다. 커다란 옥수수 잎 위에서 태평하게 아침이슬을 음미하는 청개구리의 한량스런 팔자가 살짝 부럽기는 하다. 새벽부터 등덜미에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일하고 있는 처지에서 보면 말이다. 그렇다고 나는 먼 길 오신 손님을 박하게 쫓아낼 만큼 인심이 박한 사람은 아니다. 기왕 여기까지 온 거 편하게 천천히 놀다 가슈!


어느덧 여름의 텃밭은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다.

봄의 드문드문 심어졌던 녹색의 기운들이 이제 사방으로 뻗쳐 흡사 정글이라 해도 믿을 만큼 무성해졌다. 생동하는 모든 것들로 인해 텃밭은 싱그러운 기운이 역동하는 그런 곳이 되었다. 특히 막 아침이슬이 내린 새벽에는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일까? 한 시간 조금 넘게 머물다가 돌아가는 길. 차창 너머로 들어오는 신선한 아침 공기가 등덜미의 맺힌 땀을 식혀 주고 나니 잠시나마 느꼈던 노동의 고단함은 사라지고 상쾌하고도 활기찬 에너지로 충만해진다. 나의 주말 아침은 그렇게 활기차게 시작되었다.




넝쿨 속 호박 한덩이, 끝없이 위로 뻗어 올라가는 방울토마토, 그리고 멋진 수염을 가진 옥수수
꿀벌은 텃밭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손님이다. 청개구리 양반은 온김에 잘 놀다가슈!
아침 이슬로 목욕 중인  무당벌레와 거미
오늘의 수확물. 큼지막한 비트 두 덩이, 허리브레이커 고추, 그리고 깻잎과 상추와 방울토마토, 가지는 딱 한개만 있어도 충분하지만 오이는 많을수록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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