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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식 Jul 08. 2022

장마가 시작되었다.

7월 2일, 폭우가 남기고 간 상처들

7월 2일


며칠 전 일이다.

새벽 출근길부터 날씨가 심상치 않았다. 거센 빗발에 여기저기 물 웅덩이가 만들어졌고, 쏟아붓는 빗물을 걷어내려고 쉴 틈 없이 와이퍼가 움직여 보지만, 깔끔하게 비를 걷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장마가 시작된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이렇게 쏟아부을 줄은 몰랐다. 그 기세가 예사롭지 않다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오후가 되자 여기저기서 비 피해 소식이 전해졌다. 중고차 매매단지는 물이 차서 주차되어 있던 차들이 모두 침수되었다. 공사장, 도로 등 시내 곳곳이 침수되고 파손되어 아수라장이 된 모습이 카톡에 우후죽순처럼 올라오기 시작했다.


'우리 텃밭은 괜찮으려나?'


비 피해 소식을 보고 있자니 텃밭 걱정에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그리고 오늘 염려스러운 마음으로 텃밭으로 출발했는데,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우리 텃밭도 예외 없이 수마가 할퀴고 간 상처가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배수로 쪽에 옮겨 심은 부추는 비에 쓸려 온 토사들에 묻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앞줄의 상추와 강낭콩, 복수박은 흙탕물을 잔뜩 뒤집어쓴 채 초췌한 몰골로 간신히 서 있었다. 강낭콩은 지난주 주렁주렁 매달린 열매를 보고 수확을 할까 고민하다가 한 주만 더 지켜보자 했는데, 그 사이에 수마에게 당해버렸다. 후회해도 이미 늦은 일이고 지금이라도 서둘러 수확을 해본다. 가지에 붙어있는 강낭콩 열매를 모두 거두고 콩깍지를 벗겨내 멀쩡한 콩들만 담아본다. 물에 잔뜩 불은 콩깍지를 보고 있자니 다시 한번 후회가 밀려오지만 이것도 경험이려니 하고 생각하며 아린 마음을 위로해본다.

그래도 강낭콩은 조금이나마 건지기라도 했지 복수박은 아예 가망이 없어 보인다. 뿌리가 상했는지 잎도 줄기도 모두 힘을 잃고 시들시들하다. 복수박도 조금만 더 키우면 열매를 맺을 수 있었는데, 안타까울 따름이다. 아쉬운 마음에 차마 뿌리를 뽑지는 못하고, 그 자리에 두었다만 다음 주까지 별 차도가 없다면 뽑아내야 할 것이다. 그저 기적을 바라는 수밖에.

상추도 비슷한 상황이다. 아직 아삭이 상추는 건강하고 싱싱한 편이었는데, 이번 비 때문에 많이 상한 모습이다. 일단 상추도 회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일단 두기는 했다만, 회생이 가능할지는 잘 모르겠다.

방울토마토는 지지대가 쓰러져 버렸다. 흙이 쓸려 내려가며 지지대를 꽂아둔 땅이 무너진 듯하다. 그래도 완전히 쓰러지지는 않고 운 좋게도 서로 받쳐주고 버텨주는 형국이 되어서 가지가 꺾이거나 상하는 큰 불상사는 없었다. 천만다행이다.

오이와 옥수수, 고추, 대파는 크게 피해를 입은 모습은 아니지만, 안심하기는 좀 이르다. 비 온 뒤에는 병충해가 퍼지기 쉽기 때문에 앞으로가 문제이다. 특히 대파 같은 경우에 땅이 습하면 병에 잘 걸리는데, 제일 걱정된다.


쓰러지고 시들어버린 작물들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허해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망연자실한 채 손 놓고 있을 여유는 없다. 또 언제 내릴지 모르는 비를 생각하면 할 일이 많다. 우선 쓸려 내려온 흙으로 막힌 배수구부터 뚫어야 한다. 부추가 있던 자리를 크게 한 삽을 뜨니 흙 속에 묻혀있던 부추가 통째로 올라온다. 극적으로 구조에 성공한 부추는 다행히 아직 숨이 붙어 있었다. 다시 원래 있던 자리에 곱게 심어주며 무사 귀환을 축하해준다. 배수로도 다시 파 준다. 쓸려 내려온 흙을 걷어서 다시 원래 있던 자리로 옮겨준다. 방울토마토 지지대도 다시 세워준다. 쓰러진 지지대를 바로 잡아 땅 속 깊이 꼽고 그 위에 막힌 배수로에서 퍼온 흙을 뿌리고 발로 꼭꼭 눌러 단단하게 고정시킨다. 마지막으로 습한 날씨에 병충해가 생기지 말라고 정성껏 약도 뿌려준다.  


할 일은 다 했다. 당분간은 해가 쨍쨍해야 할 텐데.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하늘에게 간절한 마음을 담아 기원하는 것 밖에는 없다. 야박한 하늘이 또 어떻게 나올는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그래도 한 번 믿어보는 수밖에.


순조롭기만 하던 텃밭에 찾아온 첫 번째 시련이다.

어쩐지 일이 잘 풀린다 했는데, 역시나 호락호락한 일 따위는 세상에 없다.




초췌한 몰골의 강낭콩, 복수박과 상추. 방울토마토 지지대는 제멋대로 춤을 추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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