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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식 Jul 08. 2024

감정의 세계 #7

평온함과 불안의 전쟁 2

황급히 자리를 피한 뒤 정신없이 내빼기 바빴다. 빼곡한 융털 사이를 헤집으며 이 무시무시한 곳을 탈출하려 했다. 더 이상 이곳은 아름답고 평화로운 융털의 숲이 아니다. 피비린내 진동하는 전장처럼 이 곳은 공포의 공간이다. 


얼마나 지나온걸까?

어찌나 허겁지겁 달려왔는지, 온 몸의 점액이 다 빠져나가 반건조 오징어처럼 쭈글쭈글해진 해괴한 모습이다. 잠시 점액도 보충하며 쉬기로 했다. 


"너희는 누구니?"

우리는 또 '평온함'과 마주친 줄 알고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봤지만, 그 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어딜 보는거야? 여기야! 여기!"

우리가 처음 시선이 향했던 곳 아래 쪽에서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 곳에는 자그마한 미생물이 있었다.


"우린 '기쁨'이야. 아래 대장에서 건너왔어."

"기쁨이라고? 왜 여기까지 온거야? 아무튼 여기는 조심히야 돼. 평온함은 아주 사납거든."

"그러는 넌? 누구인데..."

"나? 난 '불안'이라고 해. 아무튼 여기는 보기와 달리 위험한 곳이야. 지금은 융털들이 모두 빛을 잃어서 숨어있기 좋지만, 언제 다시 융털들이 빛을 되찾을지 몰라."

"숨어지낸다고? 평온함은 너희들이 감정의 나무를 점령하고 있다고 하던데?"

"점령? 그런 일이 가능할 것처럼 보여? 감정의 나무는 우리가 점령한게 아니라 그들이 못찾고 있는거라고! 평온함은 항상 이기심으로 가득 차 있어서 감정의 나무를 서로 공유하지 않아. 그래서 융털들이 빛을 잃는 순간이 오면 그들은 감정의 나무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어. 이 빼곡한 융털의 숲에서 혼자 감정의 나무를 찾는다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거든. 하지만 우리는 달라. 우리는 작고 보잘 것 없어 보이지만, 서로가 서로를 돕지. 그래서 어두운 융털의 숲 속에서도 감정의 나무가 어디있는지 쉽게 찾을 수 있어."

"그럼 혹시 너도 감정의 나무가 어디있는지 알겠네? 우리를 좀 데려다줄 수 있어?"

"물론이지. 잘 쫓아오라고."

'불안'은 매우 상냥했다. 우리는 그들의 안내를 받으며, '불안'의 나무가 있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곳에는 수많은 '불안'들이 나무를 에워싸고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감정의 나무와 소통을 할 수는 없었다. 그들의 나무도 우리들의 것처럼 '봉인'되어 있었다.


"너희도 우리랑 사정이 같네. 혹시 왜 이런일이 일어났는지 짚으는 거 없어?"

"사실 이상하긴 해. 우리한테는 유리한 일이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융털의 숲의 어둠이 이어진 적은 없었거든. 원래 이 곳은 항상 밝은 곳이었어. 간혹 어둠이 찾아오는 정도였지. 하지만, 몇 달전부터 시작된 어둠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어. 처음에 우리는 좋았지. 평온함들에게 걸릴 일도 없고, 그들은 아둔해서 감정의 나무 근처에도 못 오니깐, 감정의 나무는 순전히 우리 차지가 되었고. 하지만 일주일 전부터 봉인이 시작되었어. 갑자기 시작된거야. 그 일은. 이 두 가지 일이 연관이 있는 것 같지만, 정확하게는 모르겠어."


'그래! 이렇게 착한 아이들이 감정의 나무에 해코지를 하지는 않았을거야."

나는 어느 정도 확신을 할 수 있었다.


"그럼 우리는 다른 곳에서 가서 더 알아봐야 될거 같아. 도움줘서 고마워."

우리는 발길을 위쪽으로 돌려 위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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