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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달임의 인문학(2)

이열치열의 미학

by 송지
"복날엔 삼계탕이지!"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우리는,
그것이 조선시대부터 내려온 오랜 전통이라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익숙한 여름 풍경은 과연 몇 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을까요?


생각해 보면 이상하지 않습니까? 무더운 날씨에 땀을 뻘뻘 흘리며 뜨거운 국물을 먹는 일이, 정말로 우리의 '본능적인 지혜'였을까요? 사실 그 이면에는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문화의 교차점과 근대적 상업의 힘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보양이라는 공통 언어, 세계의 여름을 잇다

과거 도시 중심의 생활을 하기 전에는 병원을 가거나 약을 구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보양 음식을 통해 병을 예방하고 영양을 보충하는 방식으로 건강을 유지했죠. 따라서 세계 각 나라마다 이름은 달라도 비슷하게 닮은 보양식 문화가 존재합니다.

'레스토랑(restaurant)'이라는 단어의 어원은 프랑스어 restaurer, 곧 "회복하다"는 뜻입니다. 18세기 파리의 초기 레스토랑은 우리가 아는 외식 공간이 아니라, 병자나 허약한 사람들이 고깃국물이나 스튜 형태의 영양식을 통해 몸을 회복할 수 있는 '보양식 판매소'였습니다. 여행자와 환자들이 들러 기운을 되찾는 공간이었죠. 즉, 레스토랑의 어원 역시 '외식'이 아니라 '보양'이었다는 것입니다.

폴란드-러시아계 아슈케나지 유대인들이 동유럽에서 발전시킨 치킨수프는 "Jewish penicillin(유대인의 페니실린)"이라 불릴 만큼 감기 치료용 민간요법으로 여겨졌습니다. 중국에서는 "초복엔 교자, 중복엔 뜨끈한 국수, 말복엔 밀전병과 계란부침(头伏饺子 二伏面 三伏烙饼摊鸡蛋)"라는 고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속담으로 여름 내내 기력을 관리했습니다.

초복의 만두는 농경사회에서 여름 초입에 영양 보충을 위한 실용식으로 풍부한 영양과 개운함을 동시에 제공했고, 중복에는 뜨거운 면을 먹으며 땀을 내 체내의 습기와 열독을 배출하는 '이열치열'의 동양적 보양 개념을 실천했습니다. 말복의 밀전병과 달걀전은 만들기 쉽고 보존도 용이해 더위의 마지막 시기에 영양소 보충과 속을 편하게 해주는 음식으로 적합했습니다.

일본은 도요노우시노히에 장어간장구이를,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은 가스파초를 먹습니다. 스페인의 가스파초는 차갑게 마시는 토마토, 오이, 마늘 기반의 냉수프로 한여름 무더위에 올라간 체온을 낮추기 위한 대표음식입니다.


보양은 국적을 가리지 않습니다.
단백질로 열을 채우든, 차가운 수프로 열을 식히든,
방향은 달라도 목적은 같습니다. 몸을 회복하는 식사.


동양의 보양 철학 – 이열치열은 과학이었다

동양의 보양은 뜨겁습니다. 여름에 더 뜨거운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이열치열'의 개념은 한의학에서 '표 열 리 한(表熱裏寒)'이라는 진단으로 설명됩니다. 겉은 덥고 속은 차가운 상태가 병을 부른다고 본 것입니다. 찬 음식, 냉방기구, 잦은 샤워가 만든 속 냉기.


무더운 여름철 외부의 열기와 냉방·찬 음식 등으로 인한
몸속 온도 불균형을 조화롭게 맞추는 것이 보양식의 원리입니다.


이를 조절하기 위해 뜨거운 음식을 먹어 속을 데우고 땀을 내어 겉의 열을 배출하도록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체온이 일정하게 유지되고, 혈액순환과 신진대사가 활성화되어 면역력이 향상되는 것이죠. 이는 체온 유지가 면역계와 대사 기능에 긍정적 영향을 준다는 현대 생리학의 관점과도 일정 부분 통하는 바가 있습니다.


개장부터 육개장까지 – 잊힌 복달임의 풍경

복날 하면 떠오르는 음식은 단연 삼계탕이지만, 과거에는 '개장(개고기국)'이 그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조선 후기 민속 서사인 판소리 「수궁가」·「토끼전」 등에서는 복날 개장국이 "어혈, 속병, 중병, 기력 저하에 좋다"며 실질적 약 효과를 가진 음식으로 그려집니다. 이는 단순한 풍자나 서사 장치가 아니라, 당대 사람들의 실제 인식으로 "몸이 허하면 복날에는 개장국을 푹 고아 먹는다"는 의례적 식습관을 반영하고 있었습니다.

'개장'은 한자로는 '구장'이라고 하며, 1900년대부터 보신탕 혹은 사철탕으로 불렸습니다. 18세기 이래 개장은 한양 외식업에서 무척 유행했던 메뉴로 찌는 방법과 끓이는 방법으로 조리했는데 대개 찜을 먹고 난 다음 국으로 끓였습니다. '사돈이 오면 개를 잡는다'는 말처럼 개장은 오랫동안 귀한 접대 음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개 식용에 대한 사회적 논란과 보신탕 판매 금지 조치, 기호의 변화,
그리고 무엇보다 소고기 소비의 증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개장과 육개장이 일정 기간 공존하다가
점차 육개장이 보양식의 주류로 자리 잡게 됩니다.


육개장은 19세기(1800년대 말) 문헌(규곤요람)에 조리법이 처음 등장합니다. 조선시대의 우금정책이 사라져 소고기 식용이 합법화된 영향이 컸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이승만 대통령의 영향 아래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개장국이라 부르지 않고 보신탕으로 부르게 되었고, 1950년대 이후에는 개장 판매 금지 행정조치가 수시로 시행되면서 개장 대신 육개장이 남성들의 보신음식으로 인기를 끌게 됩니다.

주재료인 쇠고기는 소화기관을 편안하게 하며 기운을 올려주는 효과가 있고, 육개장 끓일 때 쇠고기와 함께 넣는 고사리는 단백질 함유량이 높아 여름철 기력을 북돋아 줍니다. 쇠고기와 고사리, 마늘, 고추기름으로 끓여낸 얼큰한 국물은 복날의 '뜨거운 미학'을 계속 이어가는 역할을 맡게 됩니다.


삼계탕은 발명된 전통입니다

그렇다면 삼계탕은 어떨까요? 조선시대에도 있었던 음식일까요? 사실 닭은 귀한 고기였습니다. 조선시대부터 19세기까지 닭고기는 비싼 고기였고, 사냥해서 잡는 꿩고기가 오히려 더 저렴했습니다. 17세기 조리서 '음식디미방'에 꿩요리가 많이 등장하고, 조선시대 문헌에 닭고기 음식이 많이 등장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조선후기 농서인 『산림경제』나 『임원경제지』 등에 따르면, 가정에서 기르는 닭은 계란이나 제사용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았고, 실제 식용은 잦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닭고기가 일상적으로 대량 소비되기보다, 특정 계층이나 목적에 따라 제한적으로 소비되었음을 보여줍니다.

본격적인 변화는 1920년대, 식민지 조선총독부가 양계 산업을 장려하면서 시작됩니다. 계란 생산을 목적으로 농촌에 양계사업을 권장했고, 그 결과 1920년대에 닭고기 생산량이 유례없이 증가했습니다. 해방 이후 닭고기는 가장 손쉽게 먹을 수 있는 고기가 되었습니다.


삼계탕의 진화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1921년: 조선요리제법에 실린 닭국 조리법에 뱃속에 찹쌀과 인삼가루(백삼가루) 한 숟가락을 넣는다고 기록
1924년: 조선무쌍신식 요리제법에 '연계백숙' 등장 (연계는 부드러운 닭, 즉 지금의 영계)
1950년대 중반: '계삼탕' 등장하여 대중적인 음식으로 판매 시작 (백삼가루를 넣은 닭국이지만, 영업상 '계삼탕'이 유리)
1960년대: 계삼탕이 '삼계탕'으로 개명 (닭고기보다 인삼을 전면에 내세우는 전략)
1960~70년대: 냉장기술 발달, 인삼 마케팅, 양계업 성장, 삼계탕 전문점 등장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냉장고 보급으로 수삼 보관기간 연장, 인삼 재배 자율화로 인한 전국적 수삼 보급률 증가, 양계업 성황으로 인한 닭고기 수급 개선 등이 있었습니다. 특히, TV 매체를 통한 음식 프로그램 확대가 맞물리며 "복날 = 삼계탕"이라는 공식이 자리 잡게 됩니다. 특히 관광진흥 정책과 지역특화 음식 육성 정책도 삼계탕의 전국적 이미지 고착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는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이 말한 '발명된 전통'의 전형입니다.
삼계탕은 오랜 전통의 보양식처럼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근현대에 새롭게 만들어진 전통입니다.


국민적 보양식이라는 상징적 의미는 시간이 만든 게 아니라, 시장과 제도, 상업이 만들어낸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우리가 복날을 기다리는 진짜 이유

그러나 전통의 연대가 꼭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누군가는 그날, 뜨거운 삼계탕 한 그릇으로 여름을 견딜 힘을 얻고, 누군가는 시원한 오이냉국과 수박, 우무묵 한 점으로 어릴 적 외할머니의 부엌을 떠올립니다.


이렇듯 보양식은 단순히 부족한 영양소를 채우는 것만이 아닌
기후와 같은 지역의 자연조건과 그 사회가 믿는 회복의 철학이 반영된
문화적 산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양식은 크게 고기, 닭, 장어 등의 고단백질 재료로 만들거나 제철 과일과 채소 등 비타민, 무기질이 풍부한 재료로 만듭니다. 조리 방식에 따라서 뜨거운 음식으로 몸을 뜨겁게 하거나, 새콤하고 차가운 음식으로 입맛을 돋아주어 몸을 보호해 줍니다.


복달임은 '뜨거운 음식'이 아니라, 내 안의 온도를 회복하는 시간입니다. 지친 여름 한가운데, 우리는 그저 음식을 핑계 삼아 스스로를 보듬고 있는 건 아닐까요.(다음 편에서는 복양식의 대안이라는 주제로 현대인들에게 더 적합한 보양식에 대해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범준 교수

미식유산 연구소 소장

제주한라대학교 호텔외식경영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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