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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맛있는 음식을 위하여

맛있는 음식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by 송지

이 글은 순전히 도대체 건강식단이라는 굴레는 언제부터 생겨났으며, 왜 매번 새로 등장하는 건강식단은 이전식단의 기본 원칙을 부정하는가 라는 순수한 나만의 호기심에서 시작되었다.


맛에는 인간의 모든 욕망과 진화의 역사가 투영되어 있다. 동시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음식들은 인류의 욕망에 가장 충실한 것들이다. 그런데 이 욕망은 어디서 온 것일까? 바로 우리의 진화 과정에서 형성된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 무작정 폄하하지 말고 이들 뒤에 존재하는 인류의 욕망 코드를 한번 해석해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우리는 매머드 사냥에 최적화된 유전자를 가지고 현대 생활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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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1만 년 동안 인류의 생활환경은 급속도로 변화했다. 인간의 진화도 그에 비례해 가속화되었지만 환경의 변화에 완전히 적응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현대인들은 아직도 수렵과 채집에 더 적합한 신체와 정신으로 현대사회를 살아간다. 이는 낚시, 모닥불, 송이버섯 채집, 조개잡이, 고사리 캐기 등에서 우리가 느끼는 본능적 즐거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바베큐와 같은 구운 고기를 왜 이리 선호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찾으려면 우리는 진화론을 살펴봐야 한다. 우리의 몸은 실질적으로 원시인 시절과 아무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구운 고기 맛에 집착하는 이유는 원시인 시절의 기억 때문이다. 불의 발견과 요리는 원시인에게 강력한 생존 수단이었다. 고기는 매우 귀한 음식이었고, 그 시절에는 굽는 것이 유일한 요리법이었다. 고기를 구울 때 나는 향도 우리의 유전자에 각인되기에 충분했을 것이라 추정된다. '맛의 원리(최낙연)'에서는 지금도 사람의 후각 중 로스팅 향기 물질에 대해서는 개의 후각만큼 민감하다고 한다. 평균적인 후각의 민감도가 개에 비해 수백에서 수천 배나 둔한 것에 비하면 놀라운 일이다.


그러니 우리 유전자에 각인된 인간의 욕망을 이해하지 않고
무작정 구운 고기가 몸에 해로우니 삶아 먹으라고
권장하는 것은 실효성을 거두기 어렵다.
이성보다는 언제나 유전자에 새겨진 욕망이 더 힘이 세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음식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그러나 흔한 음식에는 즐거움과 감사보다 편견과 증오가 너무 많은 편이다. 나는 우리 몸이 어설픈 과학이나 의학보다 더 믿을만하다고 생각한다. 단, 이는 몸을 건강한 판단이 가능한 상태로 유지한다는 전제 하에서 말하는 것이다.


이번 칼럼에서는 오해와 구박이 심한 음식들에 대한 설명을 통해 우리의 몸과 감각이 크게 잘못되지 않았음을 말하고자 한다. 세상의 모든 맛있는 음식들에 대해서 알아보면서 이들에 인간의 욕망과 진화가 어떻게 반영되어 있는지, 우리의 인체가 얼마나 신비로운지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한다. 이전 칼럼에서 탄수화물에 대한 편견에 대해 이야기했었는데, 이어서 이번에도 탄수화물과 깊은 관련이 있는 음식들을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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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콜라를 살펴보자. 콜라는 완전한 음식의 세계화를 달성한 음료로, 12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미국 금주령 시기에 소다수가 인기를 끌면서 콜라의 탄생이 촉진되었다. 탄산수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소화기능과 신진대사를 촉진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맥주, 샴페인, 김치, 커피 등도 발효과정의 산물인 이산화탄소를 포함하고 있다. 특히 발효식품에 익숙한 한국인에게 탄산의 톡 쏘는 맛은 친숙하게 느껴진다.

콜라의 독특하고 창의적인 향은 자연과는 다른 특별함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는 천연의 향이지만 인간의 식별력의 한계로 인해 낯설게 느껴지는 것이다. 대개 이런 새로운 향은 생소함으로 실패하기 쉬운데 콜라가 약으로 개발되었기에 낯선 향에 대한 거부감이 적었던 것도 성공 요인이다.


비만의 주범으로 자주 지목되는 콜라에
첨가된 설탕 자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설탕은 훌륭한 에너지원이자 가장 효과적인 피로회복제다.
진짜 문제는 현대인이 지나치게 많이 섭취한다는 점이다.


미국과 영국에서는 1870년에 현재 한국인의 평균 섭취량인 1인당 25킬로그램을 훌쩍 넘었지만 당시에는 비만이나 당뇨가 문제되지 않았다. 이는 설탕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총 섭취량과 생활 패턴의 차이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에게는 설탕을 듬뿍 넣은 밀크티가 최고의 피로회복제였고, 우리나라에서도 1960-70년대에는 설탕물을 손님에게 대접하곤 했다. 흥미로운 것은 우리나라의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이 67킬로그램인데 미국인은 설탕과 과당을 합해 90킬로그램을 넘게 먹는다는 사실이다.

대부분의 음료에 구연산이 사용되는 것과 달리 콜라에는 인산이라는 독특한 산이 사용된다. 인산은 몸에서 칼슘과 함께 뼈를 만드는 중요한 미네랄로, 콜라를 마시면 뼈가 삭는다는 오명과는 달리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콜라의 부작용은 성분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콜라를 마시느라 우유와 같은 유제품을 마시지 않아서 생기는 영양소 부족 때문이다. 일부 인산의 과잉이나 카페인 등으로 인한 칼슘 부족이 발생할 수는 있으나, 다른 음료에 비해 그 영향이 더 높다고 보기는 어렵다.

콜라는 케첩, 스팸과 함께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의 가장 중요한 병참 물자 중 하나였다. 다양한 영양성분과 함께 세균이 절대 자라지 못하는 안정성을 갖추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정신적 위로의 역할을 했다. 돌아가야 할 고향과 집을 추억하게 해 전쟁의 긴장과 죽음의 고통을 극복하도록 도왔으며, 낯선 곳에서 느낀 익숙함의 편안함은 현대의 모든 여행자들에게도 같은 의미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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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 역시 마찬가지로 흥미로운 사례다. 피자는 기본에 충실하게 오감을 자극한다. 곡식으로 만든 밥, 빵, 국수에 고기나 양념의 조합이라는 전 세계음식의 가장 공통적인 공식을 따른다. 타코, 만두, 햄버거, 부침개, 그리고 피자가 모두 이 공식을 따르는 음식들이다. 피자는 시각적 풍성함을 자랑하며, 많은 나라에 유사한 형태의 요리가 존재하기 때문에 친숙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모두가 좋아하는 구이 방식을 사용하며, 토핑, 크러스트, 크기, 도우의 두께 등 다양한 변형이 가능하다는 점도 선호되는 이유 중 하나다.


피자가 강력한 매력을 갖는 이유는 감칠맛 덩어리이기 때문이다.
밀가루의 단백질 중 30% 이상이 글루탐산이고,
토마토, 치즈, 버섯도 감칠맛이 풍부하다.
고기, 특히 숙성육은 감칠맛이 배가된다.
이 모든 재료들이 합쳐져 피자는 강력한 감칠맛 덩어리가 되는 것이다.


우리에게 친숙한 떡볶이도 살펴볼 만하다. 냉면, 라면, 떡볶이, 자장면, 파스타는 형태와 표현이 다를 뿐 성분상으로는 아주 다른 음식이 아니다. 떡볶이 양념은 고추장, 간장, 설탕 등을 비롯한 여러 재료에서 나오는 단맛, 짠맛, 감칠맛이 풍부한 조화를 이룬다. 떡의 쫄깃한 식감은 쌀을 주식으로 하고 제례음식이나 축제음식으로 떡을 즐겨온 한국인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떡볶이는 떡의 종류, 두께, 소스, 부재료 등 다양한 변주가 가능하다. 사람들은 한 가지 종류를 다양하게 변화시키는 것을 좋아하는데, 자신이 충분히 마스터한 맛을 변형해가면서 즐기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단순하고 익숙한 음식에 새로운 깊이가 느껴질 때 우리는 감동한다.


떡볶이는 음식의 차원을 넘어 하나의 정서다.
허기를 달래는 음식이 아니라
입시지옥에 찌든 학생에게 허락된 유일한 탈출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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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에는 사회적인 유행이 있다. 1974년 바나나 우유가 등장했을 때 바나나는 선망의 대상이었기 때문에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중세의 음식에서 후추를 많이 첨가하면 고급 음식으로 여겨졌던 것도 희소성 때문이었다. 후추는 지상낙원에서 자라는 나무의 열매라는 전설까지 있었지만, 가격이 저렴해지자 기피되었고 버터가 부상했다. 버터는 북유럽과 동유럽 일대에서만 인기있던 식재료였지만 결국 프랑스 엘리트들에 의해 후추를 대신해 유럽 본토에 진출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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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은 항상 세트로 작동한다. 아메리카노가 우리나라에서 성공한 이유는 우리 식단이 서구화되어 커피가 자연스럽게 우리의 입맛에 편입되었기 때문이다. 반면 해외여행에서 맛있었던 프랑스 와인이 김치를 먹는 한국 식탁에서는 그 섬세한 풍미를 제대로 느끼기 어려운 것도 같은 이유다.


음식에 대한 기호는 시간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며,
맛은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유행처럼 함께 흐른다.


음식, 즉 맛에 대한 기호가 시대에 따라 변화해 왔듯이, 이상적 식사에 대한 믿음도 그러하다. 우리는 이상적 식사가 영양학적 진실을 객관적으로 반영한 것으로 믿기 쉽다. 그러나 실제로 그것은 사회적 이상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상적 식사가 좋은 사람 혹은 좋은 시민이 되는데 중요하다는 합의가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듯하다.

건강식이라는 개념이 역사적으로 미국 중산계급의 정체성과 특성을 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음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책임 있고 좋은 식습관을 가진 중산계급과 몸에 해로운 식사로 늘 주시와 개입이 필요한 하층계급이 끊임없이 대조되었다.


우리가 어떤 식사를 선택하느냐는 의학적인 이해관계보다
정체성, 도덕성, 신분과 같은 사회적 이해관계에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건강식에 대한 담론에서 중요한 것은
식이요법 권고가 문화적, 정치적, 이념적 내용을 전혀 담지 않은
과학적 사실만 반영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정확히는 화학적 분석과 수치 계량화와 같은 과학적 분석 틀로 인해 사회적, 문화적 내용이 배제된 객관적인 것으로 보이는 것뿐이다.


그러나 식품은 특별한 효능이 있는 것보다 즐거움이 큰 식품이 좋은 식품이다. '맛있다'는 것은 만족스럽다는 것이다. 우리가 음식을 먹는 목적에 가장 부합하는 음식이 가장 맛있는 음식이다.


일상의 음식은 편해야 한다.
소화가 편하고, 기분도 편하고, 경제사정에도 편한 음식이 좋은 음식이다.

우리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안전하고, 맛있고 건강한 식생활을 누리고 있다. 한국은 채소와 해산물, 특히 해조류 소비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있으며, 과일 또한 꽤 많이 소비되는 나라다. 소득이 늘어도 채소 소비량이 줄지 않은 유일한 나라이기도 하다. 떡볶이나 라면 같은 탄수화물에 탐닉하면서도 채소도 가장 많이 먹을 줄 아는 우리의 건강한 식습관은 자랑할 만한 일이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이상적인 건강식단을 추구하는 것은
아마도 먹거리에서 정답을 찾으려는 국민성 때문이 아닐까 한다.


완벽한 식단은 존재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우리 몸의 신호에 귀 기울이고, 수만 년 진화 과정에서 각인된 본능을 부정하지 않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사랑하는 음식에는 반드시 그럴 만한 이유가 있으며, 우리는 그 맛을 죄책감 없이 즐길 권리가 있다. 세상의 모든 맛있는 음식들이 오늘도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참조: 맛의 원리(최낙천), 옥스퍼드 음식의 역사


이범준 교수

미식유산 연구소 소장

제주한라대학교 조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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