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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친아 단백질, 문제아 지방(2)

지방이 다 같은 지방이 아니다?

by 송지

최근의 식단 트렌드는 지방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있다. 한때 비만과 심혈관 질환의 주범으로 간주되던 지방은 이제 혈당 조절과 뇌 기능 향상에 기여하는 중요한 영양소로 재조명되고 있다. 나 역시 이러한 변화된 인식을 실천하며,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오일을 구매하고, 첨가물이 없는 피넛버터를 장바구니에 담는다. 아침을 거른 채, 아메리카노에 기버터와 MCT 오일을 넣은 방탄커피 한 잔으로 하루를 시작하며 글쓰기를 이어간다. 이러한 지방에 대한 태도 변화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영양학과 문화가 만나는 지점에서 형성된 새로운 합의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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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지방은 단일한 개념이 아니다. 특히 올리브오일과 피넛버터 같은 지방은 혈당 상승을 어느 정도 완화하는 기능을 한다. 탄수화물은 체내에서 포도당으로 분해된 후 혈액으로 흡수되는데, 이 과정이 빠를수록 혈당이 급등한다. 반복되는 혈당 급증은 인슐린 저항성과 체중 증가, 당뇨병 위험을 높인다. 하지만 지방은 소화를 느리게 하고 포도당의 흡수 속도를 조절함으로써 혈당이 급격히 상승하는 것을 막아준다. 같은 탄수화물 섭취라도 지방과 함께 먹으면 혈당지수가 낮아지고 상승 폭이 줄어드는 이유다. 이처럼 지방은 음식이 체내에 미치는 영향을 보다 서서히, 안정적으로 조율하는 역할을 하는 생리학적 조력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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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지방에 대한 새로운 이해는 단순히 혈당 반응에 머무르지 않는다. 기버터와 MCT 오일은 지방의 기능에 대한 관점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기버터는 인도 전통 의학에서 오랜 기간 약용으로 사용된 정제 지방이다. 일반 버터를 낮은 온도에서 천천히 끓이면 유당과 카제인이 가라앉고 맑은 기름이 떠오르는데, 이 상층을 걸러 굳힌 것이 바로 기버터다. 유당 불내증이 있는 사람들도 소화에 무리가 없으며, 항산화와 장 건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반면, MCT 오일은 코코넛 오일에서 추출한 중쇄지방산만을 모아 만든 식물성 오일로, 간을 거치지 않고 직접 흡수되어 빠르게 케톤을 생성하며 뇌 에너지로 전환된다. 무색무취이며, 실온에서도 액체 상태를 유지해 조리와 섭취가 편리하다.


이 두 지방은 2010년대 중반 실리콘밸리에서 유행한 ‘방탄커피(Bulletproof Coffee)’를 통해 대중에게 알려졌다. 블랙커피에 기버터와 MCT 오일을 넣어 만든 이 음료는 공복 상태에서의 식욕을 줄이고,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며 집중력을 높인다. 방탄커피는 티베트의 야크버터차에서 영감을 받아 데이브 아스프리라는 기술 창업자가 만든 것으로, 단순한 건강 음료를 넘어 현대인의 시간 활용과 식사 방식에 대한 문제의식을 반영한다.


지방에 대한 인식 전환은 단지 과학적 발견의 결과만이 아니다. 이는 현대인의 생활 방식, 만연한 대사질환, 그리고 변화하는 식이요법 패러다임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기도 하다. 20세기 중반까지 지방은 풍미와 열량을 더하는 귀중한 자원이며, 회복의 상징이었다. 전후 빈곤 시대에는 기름에 조리한 음식이 영양 공급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미국 정부와 심장학회 중심으로 지방에 대한 부정적 담론이 확산되면서, 지방은 체중 증가와 심장병의 원인으로 몰렸고, 대신 정제된 탄수화물과 트랜스지방이 가공식품 시장을 지배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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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21세기에 들어 저탄수화물, 케톤 다이어트가 인기몰이하며, ‘지방을 섭취하면 살이 빠진다’는 주장이 퍼지면서 상황은 역전되었다. 새로운 관점은 지방을 단순히 ‘에너지 저장’이라는 관점에서 넘어, 뇌 기능, 세포 안정성, 혈당 조절에 기여하는 복합적 자원으로 재평가하고 있다. 특히,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 오메가3, MCT 오일, 기버터와 같은 ‘좋은 지방’은 노화 방지, 대사 안정성, 인지 기능 향상 등 다양한 목적과 연결되어 재조명되고 있다.


이와 같은 변화는 지방이 단지 급격한 혈당 반응을 유발하지 않으며, 단백질과 달리 성장 신호를 과도하게 자극하지 않는 ‘조용한 연료’로서 인식되는 데 기여하고 있다. 물론, 지방이 혈당에 도움을 주는 것과 동시에 섭취량이 과도하면 체중 증가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결국, 건강한 식단은 언제나 섭취 양과 균형, 그리고 맥락에 따라 달라지며, 절대적 진리나 유행을 무조건 따르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삶과 몸 상태에 맞게 유연하게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19세기에는 육식을 제한했거나 금기시하는 식습관이 있었고, 20세기 중반에는 육식을 장려하며 고기 중심의 식문화가 성행했다. 그리고 21세기 들어 다시 육식을 제한하고, 지방을 섭취하는 식단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과거의 영양 패러다임이 반복적으로 변화하는 가운데, 현대 식단은 ‘지방과 탄수화물 모두 종류와 맥락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는 균형적 사고를 점차 받아들이고 있다.


이런 변화의 흐름 속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과거의 유행이나 일시적 트렌드에 휘둘리지 않고, 내 몸과 삶의 조건을 바탕으로 유연하게 판단하는 태도다. 건강한 식습관이란 결국, 시대와 과학, 문화적 맥락 속에서 지속적으로 재해석되고 발전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언제든 변화하는 정보를 참고하며, 자신의 건강과 행복을 위한 맞춤형 식사 철학을 세우는 데 힘쓰는 것이 가장 현명한 태도일 것이다.


출처: 옥스포드 음식의 역사 외


이범준 교수

미식유산 연구소 소장

제주한라대학교 호텔조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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