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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면에 대하여(1)

우리나라 국수는 메일국수가 원조다.

by 송지

"이야~ 한 그릇에 1만 5천 원!"

"왜? 파스타는 2만 원씩 하는데~"


얼마 전 을밀대에서 냉면을 먹으며 친구와 나눈 대화다. 친구는 파스타와 냉면의 원가가 다르다는 논리를 펼쳤다. 과연 다진 고기나 바지락, 토마토 혹은 크림소스보다 편육, 동치미, 육수의 원가가 더 쌀까? 파스타 면과 메밀면의 가격은 어떠한가? 냉면에 대한 몇 가지 팩트를 되짚으며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한민족의 전통 국수는 밀국수가 아닌 메밀국수였다. 메밀이 한반도에 전래된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8세기 무렵에는 재배가 이루어졌고 고려시대에는 일반적인 곡물로 자리 잡았다. 중국에는 한나라 시기에 전래되어 당나라 때부터 본격 재배되었으며, 일본에는 한반도를 통해 전해져 8세기 무렵부터 재배가 권장되었다.


메밀은 오곡(쌀, 보리, 조, 콩, 기장)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흉년이 들었을 때 정부가 내놓는 대표적인 구황작물이었다. 조선시대 태종, 숙종, 정조는 메밀 재배를 적극 장려했으며, 『조선왕조실록』에는 흉년을 맞아 정조와 신하들이 메밀 재배 문제로 논쟁하는 기록도 남아 있다.


메밀은 생육기간이 짧아 가장 늦게 심고도 가장 먼저 수확할 수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입추 전에 파종하여 서리가 내리기 전에 수확했다. 요즘은 여름 메밀을 5월 중하순에 파종해 7월 말에서 8월 초에 수확하고, 가을 메밀은 7월에 파종해 10월에 수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메밀은 주로 가루로 만들어 조리한다. 지금은 국수 하면 밀가루를 떠올리지만, 근대 이전까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익숙한 국수는 메밀국수였다. 조선시대에는 밀가루를 '진말' 혹은 '진가루'라 불렀으며, 매우 귀하게 여겼다.

밀은 고려시대부터 중국에서 수입했다. 한반도의 생태 조건에서는 밀의 생산량이 낮았고, 당시 고려인들은 약과 등 유밀과를 잔칫상의 필수품으로 여겼기에 밀은 귀한 재료로 취급받았다. 이 상황은 조선시대에도 이어져 밀은 일상 식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곡물이었다.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며 일본인들이 제분업을 도입했고, 조선총독부는 식량 증산을 목적으로 북한 지역에서 밀을 대량 재배하고 밀국수를 보급했다. 그러나 당시 조선인들은 밥을 중시했고, 메밀국수를 여전히 선호했다. 밀은 주로 빵이나 만두에 사용되었으며, 1915년 총독부 식량 통계에 따르면 밀가루 소비는 극히 적었고 국수 시장에서는 메밀국수가 주류를 이루었다.


한국전쟁 이후 미국의 무상원조로 밀가루가 대량 유입되어 기아 해결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1960년대 혼분식 장려운동을 통해 밀가루 소비가 촉진되었으며, 이 시기 라면이 한국인의 식생활에 본격 도입되었다.


최근 MZ세대의 평양냉면 사랑이 확산되면서 유명 노포들은 주중과 주말을 막론하고 북새통을 이룬다. 그러나 여전히 '평양냉면=물냉면, 함흥냉면=비빔냉면'이라는 단순화된 도식은 우리의 인식 속에 자리하고 있는 듯 하다. 실제로 평양 지역에도 비빔냉면이 존재했고, 함흥에서도 물냉면을 즐겼다.


『한식문화사전』에 따르면, 냉면은 메밀국수를 무김치나 배추김치, 육수에 말아낸 형태를 가리킨다. 반면 여러 재료를 넣고 비벼낸 것은 골동면이라 불렀으며, 여기에 사용된 기름장은 참기름과 간장을 섞은 담백한 양념이었다. 따라서 지금처럼 고추장 기반의 매운 비빔냉면과는 다소 다르다.


『계곡집』(1643), 『동국세시기』(1849), 『시의전서』(19세기 말)에는 "양지를 얹고 배, 밤, 고춧가루로 비빈 냉면"이 등장하는데, 이는 당시에도 일정한 형태의 비빔냉면이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다만 조선 후기부터 1970년대까지는 평양냉면의 주류가 물냉면이었으며, 비빔 형태는 보조적 위치에 머물렀다.


특히 전통 평양식 비빔냉면은 고추장이 아닌 고춧가루, 참기름, 간장, 식초로 삼삼하게 무친 담백한 형태였으며, 편육이나 배 등을 올려 소박하게 즐겼다. 오늘날의 자극적인 비빔냉면과는 조리법과 지향하는 맛이 다르다.

함흥냉면은 감자전분으로 만든 국수를 사용한다. 함경도 고원지대에서 감자가 풍부하게 생산되어 국수 재료로 자연스럽게 채택된 것이다. 회냉면은 새콤달콤하게 무친 참가자미 회와 매운 양념을 더한 것으로, 고춧가루와 식초, 설탕, 마늘을 많이 쓰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전후 월남민에 의해 서울에 소개되었고, 참가자미 대신 홍어가 사용되기도 했다.


메밀에는 찰기(글루텐)가 없어 반죽이 잘 뭉치지 않는다. 전통적으로는 녹두 녹말을 혼합하여 반죽했지만, 그마저도 단단하고 잘 끊어지는 특성 때문에 국수틀이 필요했다. 17~18세기경 중국에서 국수틀이 유입되었는데 평안도와 황해도에서는 가는 면발을 선호해 압출 방식 제면기가 보편화되었다.

19세기 김준근의 판화 「국수 누르는 모양」에서는 남자가 사다리를 올라 천장에 달린 줄을 붙들고 국수틀에 자신의 체중을 실어 누르는 장면이 묘사된다. 이는 메밀반죽이 무척 단단해서 국수를 뽑기 위해 얼마나 큰 압력이 필요했는지를 보여준다.

1960년대 이후 메밀국수는 메밀 수확량이 감소하고 가격이 상승하면서 감자나 고구마 전분을 많이 섞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전분 비율이 높아지면 면발이 질기고 늘어나며, 뚝뚝 끊기던 메밀국수와 달리 가위 없이는 끊기 어려워진다. 현대 냉면집 식탁에 가위가 등장한 이유다.


통계에 따르면 1980년대 이후 전통 메밀의 전국 재배면적은 계속 줄었는데 기후변화와 대체작물 증가가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또한 냉면 전문점에서는 메밀 100% 면의 끊어지기 쉬운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전분을 혼합하기도 한다.

냉면은 단순한 계절음식을 넘어 한민족 식문화의 층위를 드러내는 음식이다. 평양냉면과 함흥냉면, 그리고 국수 재료의 변화 속에는 역사, 산업, 기후, 정치가 얽혀 있다. 이번 글에서는 국수의 재료와 냉면의 기본 구분, 식탁 가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었다.


다음 글에서는 원래 겨울 음식이었던 냉면이 어떻게 여름철 대표 음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는지를 중심으로 지역별 냉면의 특징과 메밀국수 문화의 변화를 살펴보려 한다.


출처: 고려도경, 서경잡절(유득공), 백년식탁(주영하)


이범준 교수

미식유산연구소 소장

제주한라대학교 호텔조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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