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복과 복달임 음식 이야기
매년 여름이 되면 어김없이 돌아오는 복날.
그리고 자동처럼 등장하는 음식, 삼계탕.
그런데 궁금하지 않으세요?
우리는 언제부터 삼계탕을 먹었을까요?
정말 예부터 삼복더위엔 삼계탕이 정답이었을까요?
오늘은 조선의 민어, 장어, 수박, 참외까지. 복날 음식의 숨겨진 문화 코드, 같이 뜯어보겠습니다.
올해 복날은 초복이 7월 20일, 중복이 7월 30일, 말복이 8월 9일입니다. 삼복은 소서(양력 7월 8일 무렵)에서 처서(양력 8월 23일 무렵) 사이인 음력 6월에서 7월 사이의 절기로 복날은 10일 간격으로 들기 때문에 초복에서 말복까지는 20일이 걸립니다.
기원전 7세기경 중국 진나라 덕공 때 시작된 풍속으로,
여름철의 극심한 더위를 이겨내기 위해 개를 잡아 열독(熱毒)을 막았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따라서 삼복(초복·중복·말복)은 원래 음력 절기가 아닌, 기후에 따라 설정된 ‘기후 대응형 절기’로 양기가 지나치게 강한 시기에 '인체의 균형을 되찾기 위한 민속 의례'로 지켜온 풍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전통은 한반도에서도 삼국시대 무렵부터 점진적으로 유입되어 고려시대에도 일부 실천되었고, 조선에 이르러서는 '복날'이라는 이름과 함께 세시풍속으로 자리잡았습니다.
"복달임에 민어탕이 으뜸이고, 도미는 이품, 보신탕은 삼품이다"
복날 음식에도 사실 계급이 있었던 거죠.
조선시대 양반들은 삼복더위에 민어국을 먹었습니다. 왜 하필 민어였을까요?
『자산어보』를 보면 "맛은 담담하고 좋으며, 비늘과 쓸개를 빼고 모두 먹을 수 있는 물고기가 민어다. 날 것이나 익힌 것이나 모두 좋고 말린 것은 더욱 몸에 좋다"고 기록되어 있어요. 민어는 첫 호박이 날 때쯤, 즉 양력 6~7월이 제철입니다. 늦여름 산란을 위해 몸을 보양하는 시기라 삼복에 가까워질수록 살에 기름이 올라 맛이 절정에 이르죠.
허균의 『도문대작』에서는 "가장 흔한 물고기 중 하나"라고 했지만, 1미터가 넘는 큰 몸집에 7킬로그램 이상은 되어야 제맛이 나는 민어는 교통이 불편하고 냉장시설이 없던 조선시대 도성에서는 귀한 생선이었습니다. 바닷가에선 흔했기에 "민의 생선"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도성 양반들에겐 희소성 있는 별미였던 거죠.
양반들은 민어를 먹고, 민초들은 개장국을 먹으며 몸을 보했다는 전승도 전해집니다. 음식으로도 신분이 나뉘던 시절이었던 거죠.
장어 하면 일본의 '가바야키' 떠오르시죠?
하지만 고려시대 왕실에서 이미 '임진강 장어'가 유명했습니다.
조선시대엔 장어가 뱀을 닮아 왕의 상징인 용과 겹친다 하여 왕실에서 기피되었다는 해석이 있습니다. 또한, 조리의 번거로움이나 생식 위생 문제도 작용했을 것이라 추정됩니다. 하지만 『산림경제』, 『동의보감』 등의 기록을 보면 조선시대에도 장어는 건강에 도움을 주는 음식으로 인식되었습니다.
장어는 사실 여름철 보양 어종 중 가장 다양한 스펙트럼을 자랑합니다.
민물과 바다를 오가는 뱀장어, 바다의 붕장어(아나고), 연안의 갯장어(하모).
특히 갯장어는 일본 교토 여름 별미로 통하지만, 고흥에서는 지금도 갯장어 통탕, 유자회무침, 젓갈까지 다양하게 활용합니다. 고흥산 유자를 넣어 만드는 갯장어 회무침, 시래기와 된장, 들깻가루, 고춧가루에 머위대를 더 넣어 끓이는 갯장어 통탕은 마치 추어탕 같은 구수함을 자랑하죠.
오늘날 논란의 중심에 있는 보신탕도 과거엔 기력을 보충하고 허약함을 다스리는 '보양'의 자원이었습니다.
조선의 한의학은 '이열치열', 즉 더위를 열로 다스린다는 철학을 따랐고,
복날 개장국은 이를 실천하는 음식이었죠.
개는 오늘날의 반려 개념이 아니라 생존과 실용의 일부였고, 복날 음식 역시 그런 시대의 질서 속에서 자리 잡은 겁니다. 음식은 언제나 시대의 가치관과 생존 방식이 반영된 결과물인 만큼, 당대 사람들의 문화적 질서 안에서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요.
복날 하면 뜨거운 국물만 떠오르셨죠?
그런데 『열양세시기』와 『조선왕조실록』 같은 고문헌에는 수박과 참외도 복날 음식으로 등장합니다.
윤기의 『반중잡영』에는 이런 표현이 나옵니다:
"초복의 개장국이 중복의 참외보다 낫지만, 말복의 수박이 가장 시원하다."
성균관 유생들에게도 수박이 더위를 잊게 하는 별식으로 나갔다고 하니, 차가운 과일도 몸을 달래는 복달임 음식이었던 셈이죠.
참외는 조선시대 여름철 가장 흔하게 먹던 과일로, 어른들의 숙취 해소에 도움이 되는 좋은 약으로도 인정받았습니다. 몇 개만 먹어도 포만감이 크고 달콤하며 수분이 많아 땀을 많이 흘리는 여름에 적합했기 때문이죠.
복날 음식, 보양이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그건 계절을 함께 견디는 의례였고, 공동체적 회복의 풍속이었죠.
복날과 복달임 음식은 고대의 기후 대응 사유에서 출발해, 조선의 세시풍속과 결합되어 여름을 지내는 문화적 적응 장치이자, 공동체적 유산으로 발전해온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삼복(三伏)'이 농경사회에서 계절 전환기의 생리적 적응을 돕기 위한 식풍속이었기에 조상들은 “제철 재료로 만든 음식을 먹어 건강을 유지하고 더위를 이겨내고자" 했습니다.
따라서『동국세시기』와 『열양세시기』 같은 고문헌이 전하는 복날 음식들은
단순히 더운 날에 고단백 음식을 먹는 행위가 아니라,
기력이 떨어진 시기에 몸과 마음을 함께 보듬는 집단적 실천이자
해마다 반복되는 의례적 행위였습니다.
한 그릇의 민어국, 한 조각의 수박, 장어탕 한 모금이 당신의 여름을 지켜주기를 바랍니다.
올여름 복날, 당신은 무엇으로 몸을 보양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의 복날 음식은 무엇인가요?
(다음편에서는 20세기에 일어난 복달임 음식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이범준
미식유산 연구소 소장
제주한라대학교 호텔외식경영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