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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친아 단백질, 문제아 지방(1)

완전무결했던 영양소의 진실과 위기

by 송지

단백질은 늘 엄친아 같은 영양소였습니다.

건강을 위해 챙겨야 하고, 근육을 위해 더 먹어야 하며, 성장기에는 반드시 충분히 섭취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그래서 단백질은 '많이 먹는 게 좋은 것'이라는 공식을 거의 의심해본 적이 없죠.


그런데 요즘 충격적인 이야기가 들려옵니다. 단백질이 오히려 노화를 촉진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특히 저속노화 식단이나 항노화 의학 분야에서는
단백질이 mTOR(세포 성장 경로)를 자극해
세포 노화를 앞당길 수 있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어요.
성장은 좋지만, 과잉 성장은 세포에게 독이 된다는 관점입니다.

중년 이후에는 단백질을 무조건 더 먹기보다는, '언제, 얼마나, 어떤 출처에서 오는 단백질인가'를 정밀하게 조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어요.

한때는 더 먹으라던 단백질이 이제는 조절해야 할 영양소가 된 시대.

우리는 무엇을 믿고 식단을 결정해야 할까요?


단백질은 국가의 자산

194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단백질은 말 그대로 국가 성장의 상징이었습니다.

어린이의 키, 군인의 체력, 노동자의 생산성—이 모든 것이 단백질 섭취량과 직결된다는 믿음이 사회 전체를 지배했어요. 국가 차원의 식생활 캠페인도 모두 단백질 중심으로 짜였습니다.


그 시절의 영웅은 고기, 우유, 계란이었습니다.
이들은 '완전 단백질'이라는 황금 딱지를 달고,
건강한 국민을 만드는 음식으로 떠받들어졌죠.

이 시기에는 단백질을 '덜 먹을까 봐' 걱정했지, '너무 많이 먹는 건 아닐까'라는 질문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습니다.동물성 단백질만이 진짜 단백질이라는 인식도 확고했어요. 두부나 콩은 '보조 식품' 정도로 취급받았고, "가난한 사람들의 단백질"이라는 서글픈 편견도 있었습니다.


단백질은 단순한 영양소를 넘어 애국심과 연결된 상징이었어요.

"우리 아이에게만은 단백질 부족을 겪게 하지 말자"는 절절한 정서가 한국 사회 전체를 관통했습니다.

결핍의 쓰라린 기억과 맞물린 단백질은 그야말로 절대적인 위치에 있었던 거죠.


흔들리는 단백질의 신화(1980년대 후반~)

1980년대 후반, 단백질의 완전무결한 명성에 첫 번째 금이 갔습니다.

가장 먼저 도마에 오른 건 붉은 고기였어요.
심혈관질환, 고지혈증, 콜레스테롤과의 연관성이 속속 밝혀지면서,
미국심장협회와 WHO는 소고기와 돼지고기 섭취 제한을 권고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단백질 자체는 여전히 성역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대안을 찾아야 했죠. 그 해답이 바로 저지방 고단백 식단이었습니다. 닭가슴살, 흰살 생선, 저지방 유제품이 새로운 스타로 떠올랐고, 단백질을 강조한 식사법이 헬스 문화와 만나면서 폭발적인 성장을 이뤘습니다.


보디빌딩 식단, 고단백 간편식, 단백질 보충제 시장이 우후죽순 생겨났어요.

이 시기는 '얼마나 많이' 보다 '어떤 단백질이냐'에 주목하기 시작한 전환점이기도 합니다. 미국의 영양섭취 기준도 한층 정교해졌어요. 체중 1kg당 0.8g, 전체 칼로리의 10~35% 안에서 단백질을 조절해야 한다는 세밀한 기준이 마련됐습니다.


그리고 이 무렵부터 사람들이 조심스럽게 묻기 시작했어요.

단백질을 많이 먹는 것만이 능사일까? 그 단백질은 어디서 온 걸까? 그리고 이 방식이 지속가능할까?

이런 질문들은 곧 새로운 패러다임의 등장을 예고했습니다.


식물성 단백질의 시대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단백질을 보는 시각 자체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이전에는 단백질의 '양'이 전부였다면, 이제는 "어디서 왔는가", "지속가능한 방식인가", "환경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가 핵심 기준으로 떠올랐어요.

이런 흐름의 중심에는 식물성 단백질이 있었습니다. 두부, 콩, 렌틸콩, 퀴노아 같은 식재료가 재조명받기 시작했고, 식물성 단백질도 아미노산 조합만 맞추면 '완전 단백질'이 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잇따라 나왔어요.

비건 식단, 플렉시테리언 식단이 확산되면서, 단백질은 더 이상 '고기'와 동의어가 아니게 됐습니다. 기후 위기, 동물복지, 대량 축산의 환경적 비용 등이 식생활 선택의 새로운 잣대로 등장하면서, 사람들은 단백질의 출처와 의미를 근본적으로 다시 묻기 시작한 거죠.


동시에 단백질 과잉 섭취에 대한 경고도 본격적으로 제기됐습니다.
신장 부담, 장내 미생물 불균형, 세포 성장의 과잉 문제 등
단백질이 항상 안전한 영양소는 아니라는 인식이 퍼졌어요.
이제는 무조건적인 섭취량보다
개인의 상태, 나이, 건강 목표에 따른
맞춤형 단백질 관리가 대세가 됐습니다.


지방은 정말 문제아였을까?

요약하자면, "단백질은 언제나 옳다"는 철칙은 무너졌습니다. 대신 "누구에게, 언제, 어떤 방식으로"라는 복합적인 질문이 대두됐어요. 단백질은 더 이상 '무조건 좋은 영양소'가 아니라, 누가, 언제, 얼마나, 어떤 방식으로 섭취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지는 선택의 대상이 됐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단백질을 먹기 전에 생각합니다.

이게 어디서 온 건지, 지속가능한 방식인지, 내 생애 주기에 맞는 건지,
섭취 방식과 윤리적 맥락은 어떤지까지 말이에요.
더는 "단백질은 정답"이라고만 할 수 없는 복잡한 시대가 된 거죠.


그렇다면 단백질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혐오와 경계, 그리고 오해의 중심에 서 있었던 영양소는 어떨까요? 바로 '지방'의 이야기가 궁금해집니다.(다음편에서는 문제아 지방에 대한 오해를 다룹니다.)


이범준 교수

미식유산 연구소 소장

제주한라대학교 호텔외식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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