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단은 어떻게 권장되고 부정되는가?
요즘 식사하실 때, 여러분은 무엇에 가장 신경을 쓰시나요? 저는 최근 들어 **‘혈당 스파이크’**에 유난히 민감해졌습니다.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관심조차 없던 개념인데 말이죠. 심지어 저는 ‘무늬만’이긴 해도 식품영양학 박사입니다. 학부 시절부터 식품과 영양을 공부했는데도, 정작 혈당 스파이크란 단어는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SNS와 영상 콘텐츠, 건강 유튜버들 사이에서
혈당을 천천히 올리는 식사법, 식사 순서의 중요성 같은 이야기가
들불처럼 번지기 시작했습니다.
사과를 먹기 전 땅콩버터를 바르거나, 채소→단백질→탄수화물 순서로 식사하면 혈당 스파이크를 줄일 수 있다는 식이요법들이 일상 대화에까지 들어왔습니다. 그런 식단 실천자들은 내 주변에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누구는 마이크로바이옴 식단, 또 다른 이는 스위치온 식단을 고수합니다. 저는 최근 저속노화 식단을 참고해 식사 선택을 조정하고 있죠.
그런데 문득 생각해 봅니다.
지금 우리가 ‘건강식’이라 부르며 따르는 이 식단들, 과연 새로운 걸까요?
사실 시대마다 ‘이게 건강하다’는 식단은 계속 바뀌어왔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중 많은 것들이
이전 식단을 정면으로 부정하거나 모순됩니다.
건강한 식사에 대한 정보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보의 양이 늘어난다고 해서 우리의 판단이 더 명확해지는 건 아닙니다. 어느 순간, 지금 내가 따르는 식단이 나중엔 ‘틀렸다’고 평가받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 스며듭니다. 그래서 우리는 물어야 합니다.
식단은 왜 시대마다 달라지고, 왜 그토록 자주 번복되는가?
이 칼럼은 그 물음에서 출발합니다. 우리는 18세기 이후 등장한 주요 영양 패러다임들을 살펴보며,
식단의 과학이 사실은 그 시대의 사회, 문화, 이념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보여주려 합니다.
미래의 식단이 어떤 모습일지 예측하는 것은 어렵지만, 과거 수백 년 동안 바뀌지 않았던 것들을 찾아내는 건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19세기 중반, 독일의 화학자들은 음식이 단백질, 지방, 탄수화물, 미네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이후 미국의 '윌버 오린 애트워터'는 이들 성분이 몸에서 얼마나 많은 열량을 낼 수 있는지를 실험을 통해 수치화했습니다.
탄수화물 1g은 4kcal, 단백질 1g도 4kcal, 지방은 9kcal.
이 단순한 열량 공식은 현대 식품 성분표의 근간이 됩니다. 애트워터는 식품의 가격과 영양 품질은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최소 비용으로 최대 에너지를 확보하는 식사법을 소개하려 했고, 그 중심에는 ‘칼로리’라는 개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1910년대, 비타민이라는 이름조차 생소했던 미세한 영양소가 발견되면서칼로리에 기반한 식사 평가 기준은 도전을 받게 됩니다.
사람들이 영양실조에 걸리는 이유가 열량 부족이 아니라
비타민 결핍이라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죠.
1920년대 미국에서는 ‘비타민 풍부한 식품’이 건강식의 기준이 되었고, 그레이프 넛츠(Grape-Nuts), 웰치스 포도주스, 플레이쉬만 이스트 같은 기업들이 이 개념을 앞세워 기능성 식품 마케팅을 선도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사회는 결핍에서 과잉의 문제로 이동합니다.
비만, 당뇨, 심혈관 질환 같은 만성질환의 시대가 열리면서 영양학은
“얼마나 먹느냐”보다 “무엇을 얼마나 자주 먹느냐”에 초점을 맞춥니다.
어떤 식품은 피하거나 적게 먹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습니다.
1969년 미국 영양 권장안에는 고칼로리 식품, 지방, 콜레스테롤, 소금, 설탕, 알코올 섭취 제한이 권고되었습니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일상생활의 더 많은 부분이 건강과 직접적으로 연결되기 시작했고, 건강은 더 이상 의학적 처치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이 끊임없이 학습하고 실천해야 하는 삶의 태도로 간주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새로운 건강의식을 바탕으로, 식습관은 건강과 관련된 중요한 행동의 하나로 주목을 받게 되었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탄수화물은 죄가 없다'가 계속됩니다.)
출처 : 옥스퍼드 음식의 역사
이범준 교수
미식유산 연구소 소장
제주한라대학교 호텔외식경영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