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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커피는 우유를 싣고

우연이 아닌 커피와 우유의 만남

by 송지
"커피는 과거의 늙은 자신에게 속해 있는 시간을 훔지는 하나의 방법이다"
(테리 프래쳇, 영국의 소설가)

커피는 900년경 에티오피아 지방에서 처음 발견되어 오늘날에 예맨으로 알려진 아라비아 지방에서 최초로

경작되었다. 커피라는 단어는 와인을 의미하는 단어인 '카화kahwa'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다. 이 단어는 다시 '식욕이 없다'는 의미의 단어에서 파생되었다고 한다. 우리가 식욕이 없을 때 커피 한잔으로 식사를 대신하는 것이 괜한 일이 아니었음을 뒷받침하는 그럴싸한 이야기다.

아리비아 여성들은 생리통을 가볍게 하려고 커피를 마시는 등 커피는 약용의 의미로도 음용되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커피 열매를 볶지 않고 마셨으나, 13세기 말경 아라비아인들이 최초로 커피를 볶아서 마시기 시작했다. 볶은 원두를 끓는 물로 우려내면 최고의 풍미가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때부터 커피가 진짜 맛으로 먹는 기호 음료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1600년 경에 커피가 유럽에 최초로 소개되었고 카페의 등장도 이 시기부터다. 기독교에서는 커피를 '영혼에 대한 악마의 위협'이라며 한때 비난한 적도 있었으나, 교황 클레맨스 8세가 커피 애호가여서 '기독교인의 음료'로 공식 지정했다.

19세기는 증기력이 대유행한 산업화 시대다. 1896년 베를린 만국박람회장에 수증기로 커피를 우려내는 커피머신이 등장했다. 이 기계는 시간당 3천잔의 커피를 만들어냈다고 한다. 그러나 이 기계는 끓는 점 바로 아래서 만들어야 하는 커피를 수증기로 우려냈기에 소비자의 외면을 받았다. 사실 뜨거운 물이 곱게 간 커피가루를 통과하게 하는 더 우수한 커피머신은 이미 1822년에 프랑스인 루이 베르나르 라보가 발명을 했었다. 그러나 이 방법이 실제 유행을 하기까지 80년이 더 걸렸는데, 이를 대중화시킨 주인공은 프랑스인이 아닌 이탈리아 사람이었다. 1901년에 이르러 최종 형태의 머신이 이탈리아 발명가 루이지 베체라에 의해 설계되었고 그 후에 에스프레스가 비로소 카페의 대표 메뉴가 되었다. 에스프레소는 '빠르다'라는 의미다. 그러나 에스프레소가 자리잡는데 이리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은 다소 역설적이 아닐 수 없다.

프랑스에 커피가 막 들어왔을 때에는
독성이 있다고도 하고, 색도 검고,
무엇보다 기독교 신자인 그들에게
이슬람 사람들이 마시는 음료라는 것 등이
마시고 싶으나 망설이게 하는 부분으로 존재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장애물을 넘어서게 하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우유'였다.
풍요와 순결의 상징으로 일컬어지는 우유를
커피에 함께 넣으면 커피의 독성이 중화된다고 그들은 믿었다.

이렇게 혼합한 '흰 커피'를 마신 후 4시간 정도 식사를 하지 않으면 커피가 위에 깊게 스며 신체에 매우 좋다고까지 생각했다고 한다. 현대의 영양학에서 보자면 어처구니 없는 생각이지만 당시에는 이에 대한 굳은 신념이 있었던 듯 하다.

우유와 설탕을 커피에 넣어 마시게 되면서 커피는 프랑스에서 가히 폭발적으로 확산되었다. 순식간에 모든 계층에서 커피를 마시기 시작하게 된 것이다. 우유를 넣은 프랑스식 커피인 '카페오레'의 유래에 대해서도 몇가지 설이 있다. 그 중 하나는 프랑스 귀족 세비녜 후작의 부인 마리 드 라부탱샹탈(1626-1696)이 원작자라는 것이다. 그녀가 딸에게 보낸 편지에 '우유를 설탕과 맛있는 커피와 섞는 것을 생각했다'라는 내용 때문이다.


1780년대에 쓰여진 <파리의 정경>(루이 세바스티엥 메르시에)의 한 대목이다.


"9시에 물 탄 우유가 보급된다.
사람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커피의 맛에 열광하면서부터
우유 소비가 엄청나게 증가했다.
파리의 '레알' 시장에서 청어 파는
거친 아낙네나 생선 파는 가게의건장한 여점원들도 모두 아침에는
마치 자신이 후작 부인이나 공작부인이라도 된 양
카페오레(cafe au lait)를 홀짝거리며 마신다."


이렇듯 카페오레는 서민층 사이에서 매우 광범위하게 정착된 음료로, 작업장에서 일하는 파리 육체 노동자들의 영원한 아침 또는 점심식사가 되었다. 그들은 카페오레가 저녁까지 능히 버틸 수 있는 힘을 제공한다고 말하면서 상당량을 마시곤 했다. 마치 우리나라 시장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상인들이 믹스 커피를 마시는 장면과 흡사하다. 카페 라떼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는 카페오레! 나는 사실 카페오레를 더 좋아한다. 추출식 커피에 거품이 아닌 우유를 넣어 우유 맛이 더 진해 부드럽고 무엇보다 이 메뉴는 '커피우유' 라는 어릴 적 추억을 소환한다.


그 밖에 또 다른 커피우유인 '카푸치노', '카페라떼'와 '플랫화이트' 까지 짚고 넘어가려고 한다. 카페오레는 프렌치 프레소, 즉 침출식 추출을 한 커피에 우유를 희석한 음료다. 프렌치 프레스 커피는 에스프레소에 비해 핸드드립에 가까운 커피로 양도 많아 카페오레를 마시는 잔은 일반 잔보다 2배 정도 크고 상대적으로 맛이 좀더 부드럽다. 성인이 되어 접하게 된 '카푸치노'는 독특한 우유 거품층을 얹은 커피우유로 기독교와 관련성이 높다.


'카푸친'은 카톨릭 교단 창시자인 성 프란치스코가 실행한 고독과 기도의 삶으로 귀환하고자 한 수도사들의 모임으로 1520년에 시작되었다. 당시 교회가 이들을 이단으로 몰아가자 성직자들은 '카말돌리은수자회'의 도움을 받았다. 새 교단의 승인을 받기 전까지 이들은 나폴리에 정착했다. 은신 중에 있던 수도원에서 아침으로 먹던 차가운 커피를 따뜻하게 하기 위해 염소젖을 데워 거품을 붓는 방법을 카푸친회 수사들이 발견했다고 한다. 카푸치노는 에스프레소:우유:거품이 1:1:1로 만들어진다. 그래서 카푸치노의 컵은 200ml 용량이어야 한다. 일반 커피잔(드립커피용 250ml)보다 작고, 카페라떼 잔(320ml)보다는 더 작다. 카푸치노는 스팀밀크보다 우유 거품을 더 많이 올리는 커피다. 1/3가량을 우유 거품으로 채운다고 보는게 맞다. 이때 우유 거품의 품질이 매우 중요한데. 쫀쫀하면서도 부드러운 질감의 우유 거품이 올라가야 진정한 카푸치노가 된다. 따라서 대부분의 카페에서 카페라떼를 찾아보기 쉽지만 카푸치노를 제대로 만드는 곳을 찾기는 쉽지 않다.

가장 대중적인 커피와 우유의 조합은 카페라떼일 것이다. 카푸치노와 마찬가지로 이탈리아가 고향인 카페라떼는 에스프레소에 우유와 우유 거품을 올려서 만드는 메뉴이나 우유 거품보다는 우유를 더 많이 넣는다. 그래서 카푸치노보다는 큰 용량의 컵에 제공한다.

마지막으로 플랫화이트는 호주출신! 호주에서는 커피와 우유가 조합된 음료를 '화이트'라고 부른다. 플랫 화이트는 풍성한 거품이 올라가 동그란 모양을 하고 있는카페라떼나 카푸치노와는 달리 거품의 상단이 평평한 모습을 하고 있다. 또한 8온즈 잔에 서빙된다.



출처 : 맛있게 읽는 세계사, 미식 인문학, 미식가의 어원사전


제주한라대학교 호텔외식경영학과

미식유산연구소 소장

이범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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