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5 안동->의성 31km
2,700km 전국일주 여행기
조식 시간에 맞춰 일어났다. 토스트, 사과, 고구마 등이 준비되어 있었다. 보통 시리얼과 토스트만 제공되는데, 후식까지 있어 만족스러웠다. 최근 경비 문제로 1일 1식 컵라면으로 생활 중이다. 게스트하우스 조식은 '빛'같은 존재다. 에너지원을 가득 채웠다. 5번 국도를 따라 걸었다. 좌측에선 자동차가 빠르게 지나갔다. 그것은 나를 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 가끔 눈이 마주칠 때가 있는데 입이 바삐 움직였다.
"어머! 저기 봐봐!! 걸어가고 있어!"
놀라움을 표현 중이었을까?
도로를 따라 걸으니 새로운 느낌이었다. 이전에는 자연을 거닌다는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자연을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광활히 펼쳐진 풍경에 가슴이 설렜다. 일직면을 지날 때였다. 자동차 한 대가 갓길에 섰다. 창문이 내려가고
"어디까지 가세요?"
운전자 얼굴이 보였다.
"의성까지요!"
대답을 듣고 가는 길이라 태워준다고 했다.
"마음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오직 두 발로 걸어가기로 약속해서요."
웃으며 정중히 거절했다. 운전자는 엄지 손가락을 치켜든 뒤 사라졌다.
정차하는 차를 볼 때면 그날이 떠오른다. 17년 8월, 첫 국토종주 때가 말이다. 비가 억수로 내리던 날이었다. 우비를 써도 소용없는 날씨였다. 그때도 좌측으로 자동차가 다녔다. 해골 무늬가 그려진 중형 차였다. 모든 것이 처음이었던 시절이라 호의를 거절했다. 그리고 두 번째 제안을 해주었을 때 차에 올라탔다. 대화를 나눠보니 너무나도 착한 형이었다. 덕분에 비를 피해 중간 지점까지 도착했다. 직접 재배한 귤도 받았다. 아직도 그 기억이 선명하다. 형 덕분에 경계를 풀고,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세상은 아직 따뜻하고, 사람은 정이 많다'라는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게 한 은인이다. 지금까지 연락을 하며 관계를 이어나가고 있다.
논밭이 자주 보였다. 겨울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따뜻했던 이유는 드넓게 펼쳐진 노란 논밭 덕분이었다. 햇빛까지 더해지니 노란빛은 금세 금빛으로 물들었다. 온기도 한층 강해졌다. 의성에 가까워질수록 해는 저물고, 땅에 가까워지니 흡사 가을 같은 붉은빛을 띠었다.
나의 세계는 진지하면서도 음흉하고 때론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유치해서 깜짝 놀라게 한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선과 악은 무엇일지 고민하다가도 예쁜 여성이 지나가면 눈은 그녀를 쫓는다. 그리곤 ‘와, 저런 여자랑 사귀면 어떨까?’라며 함께 있는 상상을 한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흐름인가 깨닫지만, 그녀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생각이 많다는 말을 장황하게 설명하고 싶었다).
생각이 많은 나는 잠을 제때 못 잤다. 잘못하거나 할 말을 못 한 날이면 밤을 지새웠다. 그러다 ‘걷기’라는 처방약을 만났다. 약효는 끝내줬다. 생각이 많아질 때면 밖으로 나가 걸었다. 생각 정리가 수월했다. 때론 걷기에 집중한 나머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잊어버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생각이 많다는 점은 더 이상 걱정거리가 아니었다. 부족함을 발견하고 해결책을 찾으면서 이치를 깨달았다. 다양한 상상은 삶의 의지를 단단하게 했다. 나는 여전히 생각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