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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6 의성->대구 34km

2,700km 전국일주 여행기

by 조삿갓

눈이 내렸다. 자세히 보아야 보일 만큼 작았다.
금방 그친 눈을 보고 첫눈이라 부르고 싶지 않았다.

의성읍내를 지나 금성면에 도착했을 때였다. 겨울이 안부 인사를 전해왔다. 서울을 먼저 찾았던 흰 눈이 이제야 찾아왔다. 펑펑 내리지는 않았지만 존재감은 충분했다. 첫눈을 보고 나서야 겨울이 실감 났다. 세상이 곧 하얗게 뒤덮이겠지. 상상만으로 설레었다. 흰 눈을 맞으며 겨울을 걸었다. 바람이 거세지니 형태를 바꿨다. 눈은 오른쪽 볼때기를 살살 건드렸다. 싸라기눈을 맞으니 따끔따끔했다. 얼마나 반가우면 이리도 붙으려 할까 싶어 왼쪽 볼때기도 기꺼이 내줬다.

눈이 오면 아무 생각 없이 소리 지르며 나가던 시절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눈이 온다는 사실만으로 얼굴 가득 함박웃음 지으며 나가던 꼬맹이는 어디로 사라졌는가. 이젠 눈이 오면 얼굴부터 찡그린다. 아무 생각 없던 꼬맹이는 생각 많은 어른이 되었다. 지하철이 지연되진 않을지, 차는 안 밀릴지, 평소보다 일찍 나가야 할지, 옷은 어떻게 입어야 할지 너무나도 많다. 그래도 눈이 오면 좋다. 어렴풋이 그려지는 어린 시절이 보이니까. 눈 온다며 엄마 손을 그렇게 잡아대는가 하면, 눈을 열심히 뭉쳐서 던지고, 귀여운 눈오리를 만든다. 눈사람은 손길이 더해져 진짜 사람이 되어 간다. 우산을 잠시 내려본다. 머리 위로 펑펑 내리는 눈. 흐릿한 하늘에서 하얀 눈이 내린다. 시커먼 마음에도 아직 동심은 살아있다.

의성금성산고분군에서 거대한 고분을 보고 모산리로 들어왔다. 농경지를 정리하고 있는 부부가 보였다. 외부인이 거의 없는 시골에서 나는 관심 대상이었다. 전국일주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은 아저씨는 작은 주머니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두유였다. 줄 건 없지만 먹고 힘내라며 건네준 두유였다. 역시 시골 인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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