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경험이 있는가.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날이다. 출근하러, 친구 만나러, 운동하러, 쇼핑하러 가고 있다. ‘하늘 좀 올려다볼까?’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문득 하늘을 올려다본 적 있는가. 하늘이 부른 것처럼 말이다. 마치 홀린 것처럼.
영주호가 그랬다. 걸으면서 수없이 봤던 호수 중 하나였다. 평소처럼 호수를 바라보며 걷는데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눈을 떼지 못했다. 마치 홀린 것처럼. 그게 아니라면 허버트 조지 웰스의 소설 <투명인간>의 그리핀이라도 나타난 걸까. 정신이 딴 곳에 있는데 똑바로 길을 갈 수 있나. 방향을 잃었다. 목적지로 가려면 멀리 돌아가야 했다. 36KM의 거리는 47KM로 불어버렸다.
자연 앞에 선 인간은 따를 수밖에 없었다. 산과 바다와 땅은 단순히 초록색과 파란색과 갈색으로 표현할 수 없다. 빛에 따라 달라지고, 눈과 비와 바람을 만나면 달라진다. 자연은 그대로 있지 않는다. 오늘 본 하늘은 어제와 다르다. 변화무쌍한 자연을 어찌 거부할 수 있으랴(거부할 수 있는 인간이 있다면 꼭꼭 숨길 바란다. 흥미로운 연구 대상이 되기 싫다면 말이다). 자연에 대한 거부는 앞으로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어느새 어둠이 깔렸다. 휴대폰 플래시와 헤드라이트에 의존했다. 넓게 펼쳐진 논두렁을 보니 괜히 영화 <살인의 추억>이 떠올랐다. 상상은 몸집을 부풀려 공포에 떨게 했다. 발걸음은 빨라지고, 나약한 인간은 그저 기도드릴 뿐이었다. 하늘에 떠 있는 달과 별에게. 그리고 가족에게.
'제발 무사히 살아서 갈 수 있게 해 주세요.'
1시간 정도 걸으니 멀리서 반짝이는 빛이 보였다. 안동역과 주변을 지나는 자동차였다. "살았다!"를 외치며 빠르게 걸었다. 무사히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다. 47km였다. 20kg 배낭을 메고 걷다니, 믿기지 않았다. 역시 걸으니까 걸어진다. 하니까 된다. 어려운 일이라도 덜컥 겁부터 먹기보다 일단 해봐야겠다. 하다 보면 길이 보이고, 끝내 해결할 것이다.
무엇이라도 계속하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의미 있지 않을까요?
어제의 만남이 내게 강렬히 다가왔는지 함께 나누었던 대화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실패를 겪고 포기하더라도, 계속 시도한다면 분명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확률은 0퍼센트지만 무엇이라도 한다면 확률이 생기고 점차 높아질 것이다.
12월 3일, 월드컵 조별예선 3차전이 있었다. 우승후보 포르투갈과의 경기였다. 16강 진출이 걸린 중요한 경기였다. 1,2차전 잘 싸웠지만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 국민들의 의심은 점점 커져갔고, 도 넘은 비난과 조롱이 선수들의 SNS 속에 표현되었다. 선수들도 사람이다. 간절하지만 강국 포르투갈을 상대로 이길 수 있다는 확신 속에 의심이 자리 잡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경기가 시작되었다. 경기 휘슬이 울리고 3차전 경기가 끝났다. 결과는 대한민국의 2:1 승리, 결국 16강에 진출했다.
간절함이 의심을 보기 좋게 잠재웠다. 그 누구보다 16강 진출을 원했을 선수들의 눈물, 환호. 특히 슈퍼스타로서, 국가대표 주장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짊어진 손흥민 선수의 몸짓은 그가 얼마나 간절했는지를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여러분은 어떤 감정을 느꼈는가? 벅차오르는 감정을 어찌할 줄 몰랐다. 선제골을 먹혔을 때, 그들은 더욱 투지를 쏟아냈다.
"넣을 수 있다!"
"계속 두드리고 두드리면 골은 들어간다!"
"우린 충분히 할 수 있다!"
기적을 우리에게 선물했다.
간절히 원하고 절실하다면 불가능한 것도 해낼 수 있다. 국가대표팀에게 정말 감사했다. 그들 덕분에 나 또한 용기를 얻었다. 나에 대한 의심보다 원하는 목표를 이루겠다는, 이룰 수 있다는 간절함으로 더욱 열심히 살아가야 함을 깨닫게 되었다.
할 수 있다! 나는 할 수 있다! 충분히 해낼 수 있다!
대한민국의 16강 진출을 위해 최선을 다해준 축구 국가대표팀에게 감사를 전한다. 당신들의 열정이 꿈꾸는 수많은 사람에게 큰 용기를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