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00km 전국일주 여행기
몸을 이리저리 뒤척였다. 찌뿌둥했다. 11시였다. 퇴실 시간은 12시, 부랴부랴 준비했다. 비가 내렸다. 다른 지역은 눈이 펑펑 온다는데, 주룩주룩 비가 내렸다. 분주하게 점심 먹으러 가는 사람들 사이로 전혀 다른 복장을 한 내가 서 있었다. 전국일주를 선택하지 않았다면, 나도 저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겠지. '나는 뭐 하고 있는 거지?' 무기력해졌다. 비가 내리면 괜히 힘이 없다. 누군가 에너지를 주사기로 뽑아가는 느낌이다. 이 비가 빨리 그치기를 빌었다.
마산에 가까워지자 비가 그쳤다. 숙소에 도착하면 어제 사놓은 컵라면을 먹어야지라며 좋아하는 나. 거울에 비친 나를 바라보았다. 한껏 웃음 지으며 라면 수프를 뜯고 있다.
"정말 좋은 거지? 그런 거지?"
밖에서 자기는 춥고, 숙소에서 자면 경비가 만만치 않았다. 여행경비를 줄이기 위한 방법은 식비가 유일했다. 이런 경험도 다 도움이 되겠지라며 긍정적으로 생각하지만, 갈수록 초라해졌다.
하고 싶다면 망설임 없이 쓰기로 해놓고 줄어가는 돈을 볼 때마다 불안했다. 혹여나 다시 채워놓지 못할까 봐 무서웠다. ‘겁쟁이, 뭐라도 다할 것처럼 이야기하더니 결국 이것저것 재기 바쁘잖아’ 타박했다. 상처 주는 사람도, 상처받는 사람도 나였다. 이때는 안정을 포기하고 도전했다는 의식에 강하게 사로잡혀 무엇이든 해내야 했다. 고난이 필요했고, 역경을 헤치는 멋진 사람이어야 했다. 추운 겨울에 야영하고, 겨울 바다에서 서핑을 배운 것도 사실 남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해냈을 때는 자신감이 올랐지만, 해내지 못했을 때는 마음이 괴로웠다. 도전하는 사람이라면 ‘해야 하는 일’이 있는데, 나는 ‘하지 말아야 할 일’로 회피했다.
‘해야 하는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왜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할까. 누가 우리에게 부족하다고 말하는가. 오쇼 라즈니쉬는 <장자, 도를 말하다>에서 자연 상태 그대로 살라고 말한다. 해야 하는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우리가 세운 기준일 뿐이다.
삶이란 무엇인가, 기준을 세울 수 있는가. 그 기준을 벗어나면 그것은 삶이 아니란 말인가. 아니다, 내가 살아가는 자체가 삶이다. 내가 삶이다. 기준을 세우면 우린 끊임없이 괴로울 것이다. 계속해서 증명해야 하며, 투쟁해야 한다. 나는 그만두기로 했다. 더 나은 내가 아닌, 그냥 나로 살기로 했다.
나는 평범한 사람이다. 붓다도, 예수도 될 수 없다.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