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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6~49 부산->김해 23km

2,700km 전국일주 여행기

by 조삿갓

친구들이 부산에 놀러 왔다. 2박 3일간 함께 타고 다녔던 지하철은 그들이 떠나고 달라졌다. 홀로 회색 문으로 들어섰다. 입은 움직임을 멈추고 침묵을 지켰다. 적막이 싫었다. 잠시 쉬고 있던 이어폰을 외투 주머니에서 꺼냈다. 시끄러움과 고요함. 한 글자 수 차이일 뿐인데, 감정의 거리감은 왜 이리도 먼 걸까. 즐거움이라는 감정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었다. 차가운 철문을 열고 모텔에 들어왔다.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곧장 침대로 쓰러졌다. 다시 혼자다. 사람과의 만남 이후 반복되는 감정 롤러코스터. '혼자'의 무게는 거대했다. 아직 한없이 작고 연약한 나로선 견디기 힘들었다. 언젠가 가벼워지는 날이 찾아오겠지.

나는 감정이 잘 보이는 사람이다. 얼굴에 티가 난다.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고 생각했다. 내가 생각하는 어른은 감정을 잘 숨기고 덤덤하게 넘어가는 사람이었다. 생각해 보니 이런 어른이 된다는 건 슬픈 일이었다. 기쁠 때, 슬플 때, 화날 때, 즐거울 때, 감정을 충분히 드러낼 수 없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감정을 드러내고 숨기고가 아니었다. 감정표현을 어떻게 할 것인지가 중요했다.

나는 감정을 얘기할 줄 몰랐다. 얼굴에 티가 나도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특히 화날 때나 피곤할 때 그랬다. 감정이 보이는 건 어른답지 못하다는 바보 같은 생각 때문이었다(사실, 부정적인 감정으로 생각해서 들키기 싫었다). 감정표현을 잘하는 사람은 감정을 숨기는 사람이 아닌 말해주는 사람이다. 나 이래서 기뻐, 나 지금 매우 기분 나빠처럼 말이다. 감정을 보여주기 위한 행동이 아닌 그대로의 상태를 전달하는 말이 필요하다. ‘기쁘다, 화났다, 슬프다, 즐겁다’ 단어만으로 충분히 전달할 수 있다. 그렇다고 터져 나오는 감정을 무조건 참으라는 말이 아니다. 가령 눈물 같은 거 말이다. 감정은 분출이 아니라 전달이다.

다음날이 되었다. 내 편, 항상 걱정하는 아버지의 안부 인사를 받았다.

아들친구들과잘놀고잘쉬웠나오늘은어디까지가니눈길조심하고건강조심하고숙소정해서자라

띄어쓰기 하나 되어있지 않은 서툰 솜씨였다. 철없는 아들은 이 안부 인사가 싫증 났다. 다 컸는데 매일매일 오는 안부 인사가 귀찮았다. 오히려 싫었다. 자기는 안부조차 못 묻는 겁쟁이면서 말이다. 무뚝뚝함에 표현이 서툴렀던 아버지가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 담은 마음이었다. 나는 그 덕분에 지금까지 안전하게 여행 중이다. 감사합니다,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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