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00km 전국일주 여행기
간절곶에 태양이 떠야 한반도에 아침이 찾아온다는 말이 있다. 일출을 꼭 보고 싶었다. 일출시간은 7시 23분. 10분 전에 일어나 창문 앞에 섰다. 태양을 보여주지 않을 것처럼 구름이 잔뜩 꼈다. 다행히 구름이 걷혔다. 아침이 밝았다. 그리고 부산 해운대로 출발했다. 부산은 이름만으로 설렜다.
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았다. 기분이라도 낼 겸 캐럴을 들었다. 서울에는 눈이 펑펑 내린다는데, 같은 하늘이 맞는지 이곳은 화창했다. 눈을 감았다 떴다. 흰 눈이 보였다. '뽀드득.. 뽀드득..' 바다를 봤다. 흐린 하늘 아래 짙은 남색 바다가 보였다. 귀로 들려오는 캐럴에 따라 풍경이 재생됐다. 이 길은 눈길이다. 딱딱한 아스팔트 길이 아니었다. 낭만을 노래했다.
따뜻한 이불속에서 듣는 TV 소리보다 춥더라도 자연이 내는 소리가 좋다. 여름에 살이 타는 더위가 당연하고, 겨울에 동상 걸리는 추위가 당연하다. 누군가 불편하다고 말하는 것이 내겐 숨통을 트여준다. 제주 광치기해변에서 하룻밤을 보낸 날이었다.
텐트는 필요 없었다. 평평한 바닥과 깊은 숙면을 도와줄 파도 소리면 충분했다. 태양이 땅과 입을 맞추자 환하게 빛났다. 그리고 꺼졌다. 마치 촛불처럼. 고기잡이배와 달이 유일한 빛이었다. 사방에 깔린 어둠과 마주했다. 무서웠다.
사람 한 명 없는 이곳에 괴한이 나타나 위협하면 어떡하지?
자는 새에 칼에 찔리면?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위험한 상상에도 나는 낭만을 노래했다.
무서워 눈감기보다 어둠 속에서 고고히 빛나는 달을 찾기를. 고통에 신음하는 소리보다 파도 소리가 귓가에 가득 맴돌기를 바랐다.
미친 게 분명했다.
낭만. 아, 낭만이여. 평생 내 곁에 머물러주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