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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6~57 통영

2,700km 전국일주 여행기

by 조삿갓

1박 2일, 귀한 손님이 놀러 왔다. 퇴사한 기관에서 함께 일한 동료들이었다. 어제 혼자 돌아다닌 장소를 다시 찾았다. 확실히 달랐다. 함께 보고 느끼는 행위는 인간에게 행복 그 자체이며, 굉장한 도파민을 안겨준다. 좋은 일이 생겼을 때 가장 가까운 누군가를 떠올리는 게 바로 증거다.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옆에 있다면 어떨까? 그냥 미치는 거다. 얼씨구 좋구나, 얼싸안고 난리부르스가 되는 거다. 이곳에 있는 셋은 발랄한 성격은 아니었기에, 서로 보며 웃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혼자일 땐 그렇게 가지 않는 시간이 함께일 땐 왜 이렇게 빠른지 모르겠다. 어둠이 찾아왔다. 저녁시간에 맞춰 배에서도 알람이 울렸다. 우리는 서호시장으로 향했다. 긴 밤을 즐기기 위해 시장 곳곳을 둘러봤다. 감정에 충실할 땐 해결이 가능한 장소를 지나지 말라했던가.

"사장님! 3명이서 먹을 건데요~"
"5만 원어치 사가! 그럼 딱이야!"

흥정 따윈 필요 없었다. 사장님 추천에 군말 없이 오케이를 외쳤다. 이왕 놀러 온 김에 팍팍 쓰는 거지! 어느새 두 손엔 닭강정과 떡볶이가 들렸다. 충동은 위험하나, 여행에서 이 정돈 눈감아줄 수 있는 애교다. 과소비가 전혀 아니다(내 기준에선 말이다). 숙소에 들어와 간단히 짐을 푼 뒤 모였다. 복지관 근황부터 시작했다. 둘은 아직도 복지관에 있었기에 복지 이야기가 술술 나왔다. 가뜩이나 술에 취하면 감정적이게 되는데, 노래까지 잔잔하게 들리니 주체할 수 없었다.



사회복지사로서 가장 슬펐던 건 해준 것이 별로 없는데 감사하다고 해주시는 주민분들을 볼 때였어요. 내가 뭐라고… 정말 원하는 건 못해주는 나였는데 뭐가 감사하다고…


사람을 돕겠다는 당찬 포부를 가지고 사회복지사가 되었다. 그렇지만 현실은 이상과 달랐다. 마음만으로 해결되지 않았다. 누군가를 돕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며, 오만한 생각인지 더욱 깨닫게 했다. 받는 사람을 고려하지 않는 제공은 쉽다. 내가 주고 싶은 대로 주면 그만이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진정한 도움이란, 받는 사람 입장에서 생각한 도움이어야 했다. 나는 주고 싶어도 못 줬다. 받는 사람 입장을 이해하기란 더욱 어려웠다. 나는 힘도 없고 부족한 사회복지사였다. 할 수 있는 거라곤 들어주는 일 그리고 “죄송합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라는 무책임한 말뿐이었다. 더 이상 마을주민 얼굴을 쳐다볼 수 없었다. 그럼에도 감사하다는 그 말을 듣기 힘들었다. 아무것도 못 하는 내가 무능하고 싫었다. 그래서 난 도망쳤다.

누군가를 돕겠다는 마음은 거짓이 아니었다. 그저 허무맹랑한 이상주의자였다. 마음만 있으면 이상은 현실이 된다는 오만한 사람이었다. 대다수의 ‘이상주의 폄하’에 대해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 나를 보고 알았다. 말만 번지르르한 이상주의자가 많기 때문이다. 진정 이상을 꿈꿨다면,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능력을 키워야 했다. 어떻게든 대변해서 싸우고, 닥치는 대로 주변에 도움을 구해야 했다. ‘도망쳤다’고 표현하는 이유는 책임의 무게를 견디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려움을 겪지도 않았으면서 지레 겁먹고 달아났기 때문이다. 꿈을 위해 떠난다고 말했던 퇴사 사유는 알량한 자존심이라도 지키고 싶었던 겁쟁이의 변명이었다.

겁쟁이는 도망쳤지만, 여전히 사회복지를 위해 힘쓰는 많은 이들이 있다. 분명 그들이 선택했으니 스스로 책임져야 함은 맞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그들의 노고를 알아줬으면 좋겠다. 누군가를 돕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빠지지 않게, 무능력한 자신을 탓하며 도망치지 않게 말이다. 책임의 무게를 당당히 질 수 있게 응원해 줬으면 좋겠다. 나에게 사회복지사는 영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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