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00km 전국일주 여행기
장소의 힘은 그저 단순히 관객으로만 머물지 않고 그 속에 잠기고 사방으로 가로지르며 관능적으로 소유하고 싶다는 열망을 불러일으킨다. 풍경은 그저 하나의 대상처럼 앞에 있지 않고 감싸기도 하고 스며들기도 한다. - 다비드 르 브르통 <느리게 걷는 즐거움>
통영은 여운처럼 남았다. 보석함에 담긴 보석처럼 통영 바다에 다채롭게 펼쳐진 섬들을 잊을 수 없다. 우리나라 남해는 끝 모를 수평선보다 섬들의 자태에 놀라는 바다다. 이제 남해군으로 간다. 나는 남해군을 이렇게 표현했다.
사람 손길이 닿지 않은 제주다
남해군으로 들어가려면 거쳐야 하는 관문이 있다. 바로 삼천포다. 지명인지도 몰랐다. 응답하라 1994를 보고 알게 됐다. 임진왜란 시절, 이순신 장군이 이곳 삼천포 비밀 항구에 거북선을 숨겨놓고 최초로 출정하여 승리를 했다. 이 해전 이름이 바로 '사천해전'이다. 삼천포 앞바다는 울돌목처럼 전국에서 손꼽히는 물살이 거친 해역이었다. 물사를 피한 곳이 늑도 앞바다였고 무역항으로 번성하게 되었다. 삼천포대교를 시작으로 초양, 늑도, 창선대교를 지났다. 섬을 이은 기다란 다리는 장관이다. 지붕 없는 미술관이 따로 없다. 대교 위 주황색 구조물은 액자가 되어 남해를 담는다. 섬을 지나면서 섬을 바라본다. 신도, 마도, 학섬 등 이리보고 저리 봐도 섬이 보인다. 푸른 바다 위에 자리 잡은 섬은 안방마님처럼 고개를 빳빳이 들었다.
장소의 힘은 관객으로만 머물게 하는 게 아니라, 관능적으로 소유하고 싶다고 했던가. 아니, 나는 풍경을 바라보는 게 아니었다. 감히 인간이 신을 소유할 수 있겠는가. 이 예술작품을 구성하는 점일 뿐이었다. 자연의 일부가 되어 살아갈 뿐이었다. 한없이 작아지는 기분에 왠지 모를 안도감이 들었다. 내가 걸으며 편안함을 느끼는 건 이 때문이지 않을까.
남해군에 도착했다. 주변으로 섬이 자리 잡았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은 가까운 거리만큼 친근했다. 걸을 때마다 보이는 풍경은 혼을 쏙 빼놓았다. TV프로 '먹보와 털보'에 나왔던 독일마을에 도착했다. 주황색 머리에 베이지 옷을 입었더라. 독일에 가본 적은 없지만, 그 나라 향기가 전해지는 느낌이었다. 아래론 물건마을과 방파제가 보였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아름답지 않은 적은 없었다. 더 즐기고 싶었으나, 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두 다리를 바삐 움직였다.
“근육이 긴장한다. 한쪽 다리가 기둥처럼 땅과 하늘 사이에서 몸을 지탱한다. 다른 쪽 다리가 뒤에서 휙 옮겨 온다. 발바닥이 바닥에 닿는다. 몸무게가 앞쪽 발볼로 쏠린다. 엄지발가락이 바닥을 밀어내면, 몸무게는 또 한 번 미묘한 균형을 찾아간다. 두 다리가 위치를 바꾼다. 그렇게 한 걸음, 또 한 걸음, 그리고 또 한 걸음이 이어지면서, 탁, 탁, 탁, 탁, 보행의 리듬이 생긴다.”
<걷기의 인문학>(리베카 솔닛, 반비, 2017)
두 다리는 오래전부터 이동을 책임졌다. 말과 마차를 시작으로 자동차, 지하철, 비행기 등 다양한 이동 수단이 탄생했지만, 여전히 두 다리의 중요성은 여전하다. 교통수단을 이용하려면 움직여야 하며, 그것이 지날 수 없는 길은 오로지 두 다리만을 요구했다. 빠르지 않더라도 훌륭한 이동 수단이다. 두 다리가 가진 자율성은 무한하여 어디로든 향하게 한다. 들로, 산으로, 바다로, 발이 닿는 곳이라면 어디로든 향하게 한다. 나는 두 다리로 이동한다. 두 다리로 여행한다. 두 다리는 나를 어디로 인도할까.